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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국내 미술품 컬렉터들의 모임 ‘호요미(好樂美)’를 가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 2015년 10월 12일 저녁 6시 삼청동 학고재갤러리. 호요미(好樂美)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호요미는 사업가, 변호사 등 미술을 사랑하는 국내 아트컬렉터 13인으로 이뤄진 사교 모임이다. 헤럴드경제는 이날 단독으로 호요미 모임에 초대됐다.

한달만에 만난 이들은 가벼운 샴페인과 함께 인삿말을 주고 받았다. 6시 반이 되자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의 강연이 시작됐다. 멤버들은 학고재가 진행 중인 추사 김정희와 우성 김종영 전시에 관한 우 회장의 전문적인 설명에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 때 한 멤버가 우성의 추상적인 자화상 조각을 보더니 “고구마 닮았네”라고 말했다. 조용했던 장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호요미 멤버들이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추사 김정희와 우성 김종영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2. “이번에 호요미 송년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꼭 좀 오셔서 좋은 말씀 해 주십시오.”

가방브랜드 0914의 플래그십스토어 VIP 오프닝이 있던 지난 19일 저녁. 한국화랑협회 관계자가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에게 건넨 말이다. 김순응 대표는 국내 ‘큰 손’ 컬렉터로 꼽히는 미술애호가다. 그리고 호요미의 주요 멤버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대한 김 대표의 따가운 질책이 이어지자 화랑협회 관계자가 쩔쩔 매는 모습이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이 호요미 멤버들에게 추사의 글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미술시장 선순환을 꿈꾸는 컬렉터들=호요미는 최정표 건국대학교 교수(경실련 공동대표)와 김순응 대표, 박은관 시몬느 회장, 김낙회 전 제일기획 대표,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 김신배 SK그룹 고문, 지동현 삼화모터스 대표(전 국민카드 부사장), 임영철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이동규 김앤장 고문, 홍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장), 김도균 주한아르메니아공화국 영사관 명예영사, 조태훈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그리고 고승덕 변호사의 부인 이무경(전 경향신문 기자) 씨까지 13명이 주축이 된 미술 사교모임이다.

2007년 미술 공부를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모임인데, 3~4년 전부터는 프라이빗 경매를 열어 미술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재계, 학계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사들로 이뤄진 모임이라 갤러리들은 이들을 VVIP로 모신다. 학고재갤러리는 10월 호요미 모임만을 위한 경매 소책자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한달에 한번 정기모임에서 갤러리스트를 초청하고 미술을 공부하고 프라이빗 경매를 연다. 거래되는 작품 가격은 비싸지 않다. 200만원선에서 비싸봐야 700만원 안팎이다. 컬렉터들이 직접 나서 좋은 작가들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모임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싼 작품보다는 좋은 작품, 의미있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조금 늦게 왔더니 제일 후진 자리를 줬네.” 상석에 안게 된 김순응 대표는 “학고재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한국화랑”이라며 “서예와 현대미술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학고재 밖에 없다”며 우 회장을 추켜 세웠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최종 낙찰자는 가위바위보로 정합니다”=호요미는 13명의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호스트가 돼 모임을 주최한다. 이날 호스트인 홍준형 교수는 아내와 동석했다. 0914 런칭 준비로 바쁜 박은관 회장은 불참했다.

우 회장이 전시 최대 화제작으로 꼽은 추사의 ‘순로향’ 글씨 앞에선 “와” 하는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는 최 박사님 집에 걸어놔야 겠다”, “집 한채를 팔아야 살 수 있을 걸”이라며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았다.

저녁 7시가 되자 멤버들이 갤러리에 마련된 저녁 만찬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끝나자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경매에는 강요배, 이명호, 장종완, 윤석남, 정현, 마리킴, 마류밍의 작품 18점이 나왔다.

“이 작품은 에디션이 3개인가요?” (이무경)

“키아프에 있던 건 저것보다 조금 더 크던데.”(홍준형)

“그림을 치우지 말고 저 쪽에 차례대로 놔 주세요. 계속 볼 수 있게.”(임영철)

“이 작가 작품은 곧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될 거라면서요?”(김순응)

“(마류밍의 작품을 보며) 오늘 그림은 너무 심오해서 뒷골이 땡기네요. 하하” (이동규)

멤버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경청하며 도록에 메모를 하고, 때론 작가 관련 ‘1급 정보’를 먼저 알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면 즉석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했다.

이날 최고 경합은 마리킴(4명)과 윤석남(3명)의 작품. 최종 낙찰자는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결국 마리킴 작품 2점은 안경태 회장과 김신배 고문에게, 윤석남 작품 1점은 홍준형 교수에게 돌아갔다. 최고가 작품(720만원)이었던 장종완 작가의 ‘최후의 나무’는 김도균 명예영사가 낙찰받았다. 박은관 회장은 ‘전화 응찰’로 장종완의 가죽 작품 2점을 가져갔다. 

▶미술로 맺은 우정,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나누다=사실 호요미의 미술 경매는 장난같은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경매 열기가 과열(?)되면 치열한 가위바위보 전쟁을 치르지 않고 먼저 양보하기도 한다.

호요미 멤버들은 모임을 통해 미술계 전반에 대해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교환한다. 외국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오게 되면 어떨지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단색화 열풍에 대한 심도있는 전망도 내놓는다.

이슈는 미술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전반으로 확장된다. 현대자동차 사외이사와 키아프 자문을 동시에 맡고 있는 이동규 고문은 최근 자동차 업계의 핫 이슈인 폴크스바겐 사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모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어떻게 하면 호요미 멤버가 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종종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빈 자리가 나야 채워질 수 있는데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현 멤버들이 100%에 가까운 출석율을 기록하며 모임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태훈 교수는 호요미를 “미술을 매개로 한 우정 모임”이라고 말했다. 이동규 고문은 “그림을 잘 몰랐는데 편하고 즐거운 모임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굳이 알리지도 않지만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는 박은관 회장의 말처럼, 호요미 모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둔의 모임도 아니다.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를 국가기밀인 것 마냥 쉬쉬하는 국내 미술시장이기에 이들의 존재는 더욱 각별하다.

작품 값이 얼마인가, 고가의 미술 작품을 살 수 있는 자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는 이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시장의 선순환을 위한 역할을 순전히 ‘미술이 좋아서’ 하고 있는 컬렉터들이기 때문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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