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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3면] 日, 망언의 정치학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침략에 대한 정의는 확실하지 않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침략이라고 규정한 것은 자학이다(이사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종군 위안부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올해 들어 내뱉은 ‘망언’들 중 일부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말들이 쏟아지다보니 이제 웬만한 표현은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쯤 되면 망언은 말실수가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였던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가 ‘감춰왔던 악마적인 국수주의의 가면을 벗어던졌다’고 비난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망언이 끊이지 않는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부강한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와 정치인들의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日 망언은 국내정치용?=올 상반기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이 잇달았을 때 한국에서는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국내정치용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과거사와 영토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한다는 것이었다.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원하지 않는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근거로 선거 이후에는 다소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관측도 있었다.

실제 아베 총리가 몸담고 있는 일본 자민당은 극우적인 망언과 행보 덕분에 선거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자민당은 지난 7월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를 통해 84석에서 115석으로 몸집을 불렸다. 반면 이전까지 86석으로 다수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민주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59석의 2당으로 전락했다. 2016년 7월까지는 선거가 없어 적어도 3년 동안은 아베 정권의 독주체제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우익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국내정치적으로 전쟁에 참여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려야한다는 정서가 짙어졌다”며 “외교적으로 치르는 비용보다 선거에서 얻는 국내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국익을 위한 의도된 우경화=문제는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이 중단될 기색이 없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 뒤 헌법 해석을 담당하는 내각법제국 장관에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외무성 출신의 적극적인 집단적 자위권론자인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를 기용했다.

독일 나치식으로 은밀하게 개헌하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와 축구 한일전 때 등장한 한국 응원단의 플래카드 문구를 빌미로 민도(民度)를 운운한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의 발언도 선거 이후의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본의 의도를 보다 면밀히 분석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우경화 행보가 전술적으로 국내정치용이었다면 전략적으로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그리고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도록 한 헌법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국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의 우경화는 인류 보편적인 시각에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국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며 “과거 일본 경제력에 대한 향수와 부흥, 그리고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국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는 전쟁경험세대뿐 아니라 오랜 경기침체로 불만과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동참하고 있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해법으로 부강했던 일본으로의 회귀가 주목받으면서 우경화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뿌리 깊은 우익의 역사=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가족사도 되풀이되는 망언에 일조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후반 총리까지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기시 전 총리는 군부 파시즘의 적극적 지지자로 일본 괴뢰정부였던 만주국에서 일한 경력으로 인해 전후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또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내각에서 외무상 등을 역임한 우익의 거두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말로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일본 극우파의 망언과 망동이 대를 이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나치식 개헌을 운운했던 아소 부총리 겸 재무장관의 증조할아버지는 한국인 1만여명이 강제징용당한 아소탄관의 창업주다. 태생적으로 일본의 침략이나 착취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이종국 연구위원은 “아베 총리나 아소 부총리 개인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씻어내고 그들만의 ‘역사정립’을 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에는 이처럼 가족사부터 시작해 국내정치적 목적,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정상국가화까지 복잡다단한 요인들이 얽혀 있다.



신대원기자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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