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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홍익문고 존치의 의미
이해준 문화부장

포르투갈 제2의 도시,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전성기를 누렸던 항구도시 포르투는 와인으로 유명한데, 이곳의 명소 가운데 하나가 렐로(Lello) 서점이다. 1869년 설립된 후 몇 세대에 걸쳐 소유권이 이전됐지만, 지금도 유명서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포르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클레리구스 타워와 가까이 있어 이곳 여행의 필수코스다. 현대식 건물 틈에 끼어 있는 2층짜리 신고전주의 건물과 서점 내부의 ’붉은 계단’은 귀중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배낭여행자의 바이블인 론리플래닛은 이를 세계3대 서점으로 선정했다. 필자가 방문했던 올 4월에도 상당수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도 서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100년 전통의 지베르 조셉(Gibert Joseph)은 주민은 물론 유학생과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이다. 노트르담 사원에서 세느강을 건너 소르본느 대학으로 향하는 대로변에 있는데,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이 서점에는 책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책을 구경하거나 아예 구석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도 많다. 서점 옆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데, 항상 만원이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벌이는 대학생, 시민, 가족 등이 끊이지 않는다. 올 3월 이 서점에 들러 책을 산 후 인근 카페의 빈자리를 찾았지만 모두 초만원이어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 구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는 렐로 서점.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세계 3대 서점이다.

서점은 단순히 책이라는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과 지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며, 지혜를 나누는 공간이다. 이렇게 형성된 정신이 당대인들의 삶과 어울어질 때 문화가 피어난다. 이를 귀중히 여기고 즐길 줄 아는 사회가 보다 성숙한 사회, 풍요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그 사회의 매력도와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동네서점은 인터넷 서점의 등장과 유통구조의 변화, 스마트폰 바람 등으로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1995년 5400여개에 이르던 동네서점은 이제 1700개로 70% 가까이 줄어들었다. 중고생용 참고서를 제외하고 단행본 출판사들이 신간서적을 깔 수 있는 서점이 500~800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점의 종말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앞에 있는 질베르 조셉 서점. 학생과 주민, 유학생, 관관객 등으로 붐비는 파리의 명소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사라질 뻔했던 50년 전통의 서울 신촌 홍익문고가 인근 주민들과 대학,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개발 바람과 경제적 효익만을 따지던 사회 분위기에서 정신적ㆍ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으로 경제와 문화의 균형적 시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홍익문고는 물론 지역과 시민사회는 이곳을 새로운 삶의 가치를 생산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그러지 못한다면 홍익문고를 고수하는 의미가 없다. 지역서점을 문화와 정신이 살아숨쉬는 공간, 풍요로운 삶의 발신기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이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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