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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색 짙은 1500년전 무덤, 주인은 누구?
[헤럴드경제=박동미 기자]삼국시대 한반도와 왜(倭)의 교류가 활발했던 전남 고흥에서 외색이 짙은 갑옷과 투구 등 유물들이 묻혀있는 5세기 전반 무렵 무덤이 발굴됐다. 왜계(倭系) 인물, 혹은 왜와 밀접하게 교류한 인물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최장락)는 고흥군 풍양면에 소재하는 전남문화재자료 218호인 고흥 야막리 야막고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이 무덤이 왜계 석실(石室ㆍ돌방)과 계통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왜색이 강한 갑옷과 투구 등의 유물 150여 점도 수습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무덤은 서남해안 일대의 고대 연안항로 상에서 확인되는 ‘왜계(倭系) 석실’ 형식의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구릉에 1기만 조영(造營)한 독자성과 분구(墳丘) 표면에 돌을 깔아 마무리하는 형식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드물지만, 일본에서는 고분시대(古墳時代ㆍ일본의 고고학적인 시대구분으로 3세기 후반~7세기 말)에 일본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무덤형식이다.


출토유물은 중국제 청동거울, 왜계 철제 갑옷과 투구 그리고 검(劒), 대도(大刀), 창(矛), 화살촉 등 무기류, 광구소호(입구가 크고 몸통이 작은 항아리) 그리고 환옥(環玉)과 곡옥(曲玉) 등 장신구류를 포함하여 150여 점에 이른다.

연구소측은 “갑옷과 투구는 삼각판혁철판갑(三角板革綴板甲ㆍ삼각형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이어 붙여 만든 갑옷)과 삼각판혁철충각부주(三角板革綴衝角付冑ㆍ삼각형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정수리에서 이마 부분까지 각이 진 투구) 형식으로 제작 시기는 5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다” 며 “제작지에 대해서는 국내산과 일본산으로 주장이 나누어져 있지만, 출토사례를 비교하면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수량 또한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청동거울은 뒷면에 쌍두용문(雙頭龍文)이라는 문양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위지삼공’(位至三公ㆍ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문구)이라는 문자가 새겨져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3~4세기 중국 위(魏) 말에서 서진(西晉) 대에 낙양을 중심으로 한 북방지역에서 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소측은 이같은 발굴결과에 대해 “당시 연안항로를 통행한 교역주체들의 세력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며 “특히 일본적 요소로 볼 수 있는 유물과 무덤양식으로 인하여 그 계보와 무덤의 주인에 대한 논란이 국내학계는 물론 일본학계에서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06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고분(雁洞古墳)에서도 야막고분과 유사한 외래계(外來系)의 양상들(입지의 독자성, 분구의 즙석시설, 무덤방 구조, 왜계 갑옷과 투구, 중국제 청동거울)이 확인된 바 있다. 또 남해안과 서해안의 고대 연안항로 상에 위치하는 일부 지역에서도 그 지역의 전통과는 다른 가야, 왜, 백제, 중국 등 외래계의 양상들이 확인되는 사례가 있었다.

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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