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유럽, K-아트에 아주 특별한 시선
박은선의 기하학적 조각 伊매료 · 엉뚱한 발상의 설치미술가 김성환 런던 최고 미술관 초대…동양적 미감 담긴 혁신적 실험에 깊은 관심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5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스포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K-팝(Pop) 역시 그 열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문화예술에서의 코리아 열풍 또한 그에 못지않다. 특기할 점은 문화예술에서의 ‘K-아트’ 선풍은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유럽에 불고 있는 ‘K-아트’ 바람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조각가 박은선과 미디어 아티스트 김성환의 활약이다. 스포츠에서의 금메달 못지않게 큰 성과를 올리며 ‘코리아’의 이름을 드높이는 두 작가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세계적인 조각 메카에서 ‘톱’을 달리는 박은선=‘피에타’로 유명한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작업했던 이탈리아 중서부 도시 피에트라 산타는 ‘세계 조각의 메카’이다. 산(山) 전체가 몽땅 대리석 덩이인 카라라 시(市)와 인접해 있는 이 도시는 미켈란젤로가 머물며 작업했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그가 들렀던 카페도 성업 중이다.

빼어난 독창성을 무기로 한 K-아트가 유럽을 사로잡고 있다. 조각가 박은선(왼쪽)은 이탈리아 체류 20주년 특별전을 이탈리아 유명 휴양도시 초대로 열었으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김성환(오른쪽)은 세계 정상급 현대미술관인 영국 테이트 모던 초대로 색다른 영상설치전을 열고 있다.
피에트라 산타는 카라라의 질 좋은 대리석이 운집돼 각국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스튜디오를 두고 작업하고 있다. 영국의 작고 작가 헨리 무어, 스페인의 호안 미로가 이곳을 거쳐갔으며, 남미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 등 쟁쟁한 스타들이 작업 중이다.

그 세계 거장들 틈바구니에서 한국 출신 조각가 박은선(47) 씨는 ‘미술한류’를 이끌며 정상을 달리고 있다. 올해로 이탈리아 활동 20주년을 맞은 박 씨는 피에트라 산타와 인접한 아름다운 휴양도시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시 초청으로 20주년 특별전을 개막했다. 마르미 시의 빌라 베르텔리 미술관에서 오는 22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는 이탈리아의 고급 휴양도시가 한국 작가의 체류 20주년 전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씨는 “작가가 직접 공간을 대여해 열어야 할 20주년 기념전을 마르미 시 초대로 열게 돼 큰 영광”이라며 “이탈리아 작가들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별대우라며 부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베르텔리 재단의 너른 야외정원과 유서깊은 미술관 내부에 대리석, 화강암 소재 조각 75점을 출품했다. 전시는 1990년대에 제작한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망라돼 20년 궤적을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됐다. 개막식에는 마르미 시의 시장을 비롯해 현지 관계자 및 애호가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또 이탈리아 언론과 미술전문지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경희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유럽을 무대로 활동 중인 박 씨는 “그동안 수백명의 한국 작가가 조각가에의 꿈을 안고 이곳으로 건너왔으나 대부분 유학을 마치곤 돌아갔다”며 “나 역시 이곳에서 작가로 승부를 걸려고 하자 ‘과연 몇 년이나 버티나 보자’며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그간 피를 말리는 순간이 많았으나 이제는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 스위스 벨기에의 미술관 및 화랑에서 전시 제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또 유럽 각국의 기업과 개인 컬렉터도 다수 확보해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조각실험을 거듭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혼신을 다해왔다. 그 결과 기하학적인 세련미와 함께 음과 양, 직선과 곡선이 한 작품 안에 유기적으로 숨쉬어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작품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균열(틈)을 만들어 ‘숨통’처럼 생명의 호흡이 교차케 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들어 그의 작업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하나의 창문처럼 이뤄진 조각들은 그 창을 통해 안과 밖, 나와 타자, 현실과 이상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나로 어우러져 신선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박 씨는 지난 2007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피에트라 산타 시 초청으로 해변공원에서 대규모 전시를 가졌고,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미술관 마리노마리니, 알마 시 등에서도 초대전을 여는 등 정상급 작가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혁신적인 작업을 펼쳐 K-아트 확산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런던 최고 미술관에 초대된 김성환의 영상작품=거대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센터와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이 미술관은 개관 초기 200만명이었던 연간 관람객이 500만명으로 늘자 약 3850억원을 들여 미술관 공간을 대폭 확장 중이다. 그 첫 작업으로 발전용 석유를 보관했던 높이 7m, 지름 30m의 거대한 탱크를 세계 최초의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라이브아트 전용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리곤 지난달 18일 지하의 이 설치미술 전용전시장 ‘탱크1’ 개관전에 한국의 젊은 미술가가 초대돼 화제다. 그 주인공은 뉴욕을 무대로 활약 중인 김성환(37) 씨로, 그는 신작 단편영화 네 편을 선보이고 있다.

테이트 모던으로부터 거대한 탱크 하나를 송두리째 할애받은 작가는 이 어둡고 장중한 공간에 신비로운 빛으로 휘감을 영상작품을 설치했다. 그간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음악, 회화를 융합한 장르통합적 작업을 펼쳐온 김 씨는 ‘탱크1’에서 ‘Temper Clay(진흙 개기)’, ‘From the Commanding Heights(기간산업)’ 등 낯선 제목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들은 작가의 내밀한 개인사와 판타지, 소문, 정치와 문화 등이 어우러진 것으로, 기름 냄새가 남아있는 지하 탱크에서 색다른 미감을 뿜어낸다. 서울의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독재자와 여배우 사이의 스캔들을 미묘하게 다루는 등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발상으로 한국 아티스트의 역량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대에서 건축과를 전공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 씨는 수학을 전공하다가 MIT에서 시각미술로 전공을 바꿨다. 지난 2007년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영상작품으로 에르메스미술상을 받은 그는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한국미술은 K-팝에 이어 한국의 문화예술적 경쟁력을 널리 알릴 장르로 세계 곳곳에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