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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그레이트 헝거와 감자전쟁의 교훈
영국 옆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아일랜드. 1600년대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어느 나라 못지않게 슬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보다 미국에 더 많이 살고 있다. ‘그레이트 헝거(The Great Hunger)’로 불리는 감자 대기근(1845~1851년)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ㆍ민족 대이산)’를 겪은 탓이다.

아일랜드 날씨는 안개가 많고 비가 잦아 감자 재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한다. 1845년부터 아일랜드에는 엄청난 비가 내려 감자가 썩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먹을 것이라곤 감자밖에 없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굶주림과 역병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유례를 찾기 힘든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국민 약 800만명 중 100여만명이 사망하고, 150여만명이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2006년에 와서야 그때 당시 인구를 회복했다고 하니 대기근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아일랜드를 떠나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아일랜드인 후손들은 현재 미국에만 3400여만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44명의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우드로 윌슨,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부자 등 15명 이상이 아일랜드계 혈통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을 ‘7년전쟁’이라고 하고 ‘감자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전황은 프로이센에 불리했다. 식량부족과 군사력에서 밀리던 프로이센은 지구전으로 맞섰다. 승리는 프로이센의 것이었다.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에 호감이 있었던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가 도와준 덕분이었지만 ‘감자’도 한몫했다.

두 나라는 적의 주요 식량인 감자 공급을 차단해 병사들을 굶주리게 하는 작전으로 전쟁에서 이기려고 했다. 마침 바이에른 지방에 주둔해 있던 오스트리아군이 그 지방 감자를 모두 먹어치우는 바람에 식량이 바닥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쟁을 포기했다고 한다.

필자는 감자를 무척 좋아한다. 감자가 들어간 음식은 무조건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요즘 저녁 식탁에 감자가 사라졌다. 아내는 “너무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감자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올 초 이상저온으로 수급문제가 발생해 그렇고, 다음달까지는 예년보다 높은 가격이 유지될 것이라는 게 물가당국의 설명이다.

지난 25일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도 감자가 이슈였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도입 물량 700t을 신속히 풀어 감자 가격을 잡겠다고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3월과 4월 연속 2%대 흐름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물가안정 노력에 힘입어 소비자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수치다.

감자가 주식(主食)이 아닌 이상, 감자 없이도 밥은 먹을 수 있다. 다만 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싸서 못 먹는다는 현실이 좀 서글플 따름이다.

지금도 독일 사람들은 감자를 심어 민초들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프리드리히 2세를 ‘감자대왕’으로 부르며 칭송한다. ‘날씨 때문에 감자 가격 오른 게 왜 정부 탓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민심일 걸 어떡할 건가.

신창훈 경제부 정책팀장/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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