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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해, 대한민국 ‘3무(無)’에 빠지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지난달 인천공항 내 8개 서점을 운영하고 있던 GS문고가 부도나면서 출판계 전체로 불똥이 튀고 있다. 출판사마다 수천만원씩 물려있지만 받아낼 길이 막막한 상태다. GS문고가 부도 전 선납한 3개월치 임대료라도 돌려달라고 인청공항 측에 요구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공항서점의 부도는 여행객들이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이용하면서 매출이 감소한 게 주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출판계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일반서점보다 훨씬 낮은, 거의 정상가의 반값에 해당하는 55%에 책을 공급해야 했다. GS문고의 부도엔 출판계 구조적 문제의 단면이 드러난다.
올해는 정부가 출판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국민독서율 제고를 위해 제정한 책의 해이다. 2011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0명 중 3.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2007년 2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대한민국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며, 지금 책은 ‘3무(無)’에 빠져 있다.

▶‘새책’이 없다=‘아프니까 청춘이다’ ‘은교’ ‘빅 픽처’ ‘노는 만큼 성공한다’. 현재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라있는 책들이다. 지난해 출간된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2010년에 출간된 책이다. 베스트셀러에서 신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 출판계는 구간이 출판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구간(출간된 지 18개월 이상) 도서는 현재 인터넷서점에서 판매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할인 폭이 큰 구간에 치중하다 보니 벌어진 파행적인 모습이다. 높은 할인에 맞추기 위해 출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원가 이하까지 책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래도 많이 팔면 ‘그게 그거다’는 판단에서다. 싼 맛에 중독된 독자들은 인터넷서점에서 오픈마켓으로, 또 중고샵을 떠돈다. 최근 중고샵은 중고책들만 있는 게 아니다. 신간들도 올라있다. 구매한 책을 읽고 바로 되파는 시스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는 신간들이 적지 않다. 중고샵은 매월 20%씩 성장하며 활황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막 서점에 내놓자마자 중고샵에 올라 있는 경우도 있다”며, 절망감을 나타냈다. 중고책은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규제할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간 발행종수가 준 건 당연하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주요 출판사 180곳을 대상으로 신간 발행종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1년 2473종으로 2008년 대비 23%나 줄었다. 할인의 덫에 갇힌 것이다.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던 인터넷 서점들도 과다 할인경쟁 등으로 최근 영업이익이 줄면서 제로 성장시대로 돌입했다.

▶‘문학’이 없다=요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이들이 많다. 특히 문학의 경우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찾아볼 길이 없다. ‘나는 꼼수다’ ‘달려라 정봉주’ ‘주기자의 정통시사활극’ ‘남자의 물건’ 등 사회 이슈가 되는 인물과 관련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외부효과’가 출판시장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4/4분기 이후 베스트셀러 동향을 보면 ‘완득이’ ‘도가니’ ‘엄마를 부탁해’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등이 올라있다. 소위 ‘스크린셀러’들이다. 출간된 지 몇년 지난 뒤 드라마나 영화로 방영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특수현상이 이젠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면 지난해 4/4분기 이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작품은 지난해 10월 출간된 김훈의 장편소설 ‘흑산’ 정도다. 문학의 몰락이라 부를 만하다. 종래 서민생활이 불안정할 때 문학은 위로의 통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멘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직접적 위안이나 위로를 주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쏠리는 것이다. 그나마 장르문학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이채롭다. 정유정의 스릴러물 ‘7년의 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등 반추리문학이 큰 인기를 끌면서 문학계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추리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동네서점’이 없다=동네서점의 몰락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중소서점은 2000년대 초 3500개에서 2010년 1800개로 줄었다. 이 중 소형서점, 즉 동네서점은 600~700개 정도다. 동네서점의 생존 기반의 붕괴는 무엇보다 인터넷서점보다 15~30% 비싸게 공급받는 출고가 구조에 있다. 가격경쟁에서 애초에 지는 게임인 셈이다. 이에 따라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학습서 고객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최근 지역고객 밀착형 동네서점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쉽지 않다. 소형 서점들은 무엇보다 출고가를 5~10% 정도만이라도 낮춰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자책의 보급도 동네서점에 위협적이다. 전자책 시장은 출판생태계의 가장 큰 변수다. 지난해 400억원 규모에서 올해는 600억원으로 크게 늘 전망이다. 2015년께엔 책 시장의 30%까지 육박할 것으로 출판계는 보고 있다. 이는 비단 동네서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보문고는 매출이 3~6%씩 늘고는 있지만 영업이익률 하락으로 긴축 경영에 돌입, 오는 6월엔 광화문 본사를 파주로 이전한다. 영풍문고도 신장률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영풍문고 손용주 마케팅팀장은 “기존 지점들은 매출이 떨어지는 반면 동네서점이 문을 닫은 곳에 들어선 신규 지점들은 그나마 동네서점 고객들을 흡수해 매출이 좋다”며, 전체적인 책 수요가 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출판은 국가 지식생태계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책의 바른 유통과 확산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출판계의 목소리다. 정부의 획기적인 독서진흥책과 함께 책의 붕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요인인 할인경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중심에 완전도서정가제가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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