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핫’하게 떠오는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그를 최근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실제 마주한 그는 거침없는 발언과 호탕한 웃음으로 인터뷰 내내 기자를 웃게 만들었다.
-“최민식, 더 때리라고 하더라”
‘범죄와의 전쟁’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조검사와 최익현의 강렬한 대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조검사가 최익현을 죽도로 인정사정없이 구타하는 모습은 극 초반, 극도의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곽도원이 ‘영화계의 대부’ 최민식을 상대로 ‘구타신’을 연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정말 대 선배님이고, 보기도 힘든 분이죠. 이렇게 어려운 분인데, 최민식 선배님은 다 받아주시더라고요. 맞아서 좋은 사람이 어딨겟어요. 그런데 선배님은 오히려 ‘더 때려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은 촬영 전 단역배우들에게도 힘을 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제 부담감이 어느 정도일지 다 파악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는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선배 최민식에 대한 극찬을 늘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최민식은 주인공의 덕목을 모두 갖춘 배우였다.
“연기를 잘 한다고 다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에요. 얼마만큼 사람들을, 그리고 스태프들을 얼마나 품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주인공이 갖춰야 할 덕목이나 마찬가지죠. 최민식 선배님은 정말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으시는 분이에요.”
남자들로 똘똘 뭉친 ‘범죄와의 전쟁’ 촬영 현장은 에너지가 넘쳤고, 시끌벅적했으며 사람 냄새가 풍겼다. 그야말로 ‘남자들만의 공간’ 이었다.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고.
“제가 주량이 뭐 그리 센 편은 아니에요. 술자리를 자주 가졌는데, 최민식 선배님은 특히나 약주를 드시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러브픽션’, 그리고 전계수 감독과의 인연
그는 ‘범죄와의 전쟁’ 속 비열한 검사의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러브픽션’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비추며 또 한번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전계수 감독님하고는 미장센 단편 영화제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다른 섹션의 심사위원이셨죠. 그날 ‘감독의 밤’ 때 절 불러주셔서, 친분을 쌓았죠.”
곽도원과 전계수 감독은 이후 오랫동안 친분을 쌓았다. ‘러브픽션’ 속 곽도원이 분한 황 감독은 애초부터 전계수 감독이 그를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라고.
“한 무명 배우가 정식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일 때, 정신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죠. ‘러브픽션’은 제작되려다가 몇 번 엎어진 적이 있는 작품이에요. 순탄하지 않았죠. 그런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실 때 작품 속 황 감독을 절 생각하고 쓰셨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고마웠어요.”
극중 황 감독과 구주월(하정우 분)이 희진(공효진 분)을 두고 대립하는 장면이 있다. 술이 걸쭉하게 취한 황 감독과 구주월은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댄다. “실제로도 나 혼자 술을 먹고 촬영했다”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서 딱딱하고 냉철한 조검사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범죄’와 ‘러브픽션’에서 맹활약을 떨친 것도 모자라 CF까지 접수했다. 최근 모 통신 브랜드에 등장해 큰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동네 어머니들은 제가 영화에 출연한 것도 모르세요.(웃음) CF만 보시고, ‘너 TV 나오더라? 좋겠다’ 이러시죠.(웃음)”
-배우 인생의 버팀목, 조영진
무명시절을 거치지 않고 인기를 얻은 배우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많은 배우들이 극단 출신이며, 그 과정 동안 고난의 시기와 슬럼프를 겪는 것이 사실이다. 곽도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장 힘들 때, 붙잡아준 버팀목은 누구였을까.
“조영진 선배님이에요. 최민식 선배님에게도 많이 배웠지만, 제 무명시절 때부터 조영진 선배님이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하심, 평상심, 평정심을 갖추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죠. 사람은 본디 한결 같아야 하고, 점잖아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초심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잘 한다 잘 한다’ 하니 금방 우쭐해지고, 어깨가 올라가더라”며 씁쓸한 속내를 털어놨다.
“‘범죄’ 때 무대인사를 엄청 많이 다녔죠. 관객들이 다 열광해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니 우쭐해지더라고요. 사실 같은 신을 계속 반복해서 촬영하고, 가장 잘 나온 걸 화면에 옮긴 것일 뿐인데 말이죠. 전 절대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시대 어머니를 웃게 할 드라마
그는 ‘유령’에서 소지섭과 콤비를 이루는 형사 역을 맡았다. 영화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으로 저명한 그이지만, 브라운관은 첫 도전이다. 그래서일까. ‘유령’을 논할 때만큼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막연하게 고민이 돼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뭐 하나 잘못 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 있죠? ‘나 잘못하면 다 죽었다’ 이런 마음이요.(웃음) 소지섭 씨와는 뭐 영화 ‘회사원’도 같이 해서 호흡에 대한 걱정은 없는데, 제 모습이 너무 걱정되네요.”
이미 스크린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어마어마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범죄’ 속 검사처럼, 형사 역도 그렇게 잘 하길 바라더라고요. 정말 어깨가 무겁죠. 보통 형사처럼 해도 욕먹을 것 같고. (웃음) 김은희 작가한테 다른 촬영 현장 아는데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 했어요. 드라마 촬영은 어떤지 보고 싶어서요.”
이토록 드라마 출연에 부담을 느끼는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간단했다. 그는 “우리 어머니들이 행복했으면 좋겟다. 제 드라마를 보시면서 조금이라도 웃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명예와 부가 아닌 어찌 보면 소탈하기 그지없는 그의 소망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무엇이든 관통하는 화살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바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이였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죠. 선악부터 시작해서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음탕한 모습까지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제게 ‘배우를 해서 좋겠다. 여러 사람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으니’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파악해야 되고, 정말 힘들죠. 그래도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끄집어 내고, 확장시키다 보면 ‘착한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죠. 그때는 참 뿌듯하더라고요.”
달콤한 로맨스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곽도원. 하지만 그에게도 꼭 한가지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었으니 바로 ‘파이란’ 속 최민식이다. 가슴 절절한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 사진 김효범 작가(로드포토스튜디오) hyobeomkim@m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