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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엌데기 같은 鐵 덕에…짙푸른 ‘바다의 로망’을 맛보다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편견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바다와 기계는 사내들의 로망이다. 바다는 곧 유혹이며 땀과 근육으로 빚은 철과 선박은 항해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매개체다. 하지만 바다와 우리의 삶은 동떨어져 있고 우리의 앎은 구체성이 부족하다. 해서 대개 로망은 달뜬 환상에 그치기 쉽다.

이에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길이 363m, 높이 65m에 달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페가서스’에 올랐다. 이 계량화된 수치가 아득하다면 “배의 모든 것을 만져보는 데만도 1년이 걸린다”는 기관장의 말로 크기를 어림잡아 보는 것은 어떨지.

‘페가서스 10000마일(워크룸 프레스)은 저자가 페가서스를 타고 대양을 횡단하며 기록한 견문록이자 기계비평서다. 미술이나 음악뿐 아니라 기계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삼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기계비평가로서 저자의 관심은 바다-기계-인간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에 영점 잡혀 있다.

사실 결론은 명확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연과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인간이 자연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것은 철과 기계 덕분이다. 해서 저자에게 철은 단순한 쇳덩어리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철은 사회의 토대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부엌데기’ 같은 존재다. 또 철은 콘크리트와는 달리 토대를 이루면서 스스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유기체에 가깝다.

트롤리, 스프레더 등 선박의 근육, 혈관, 신경을 살피는 저자의 시선에서는 경외감과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얼핏 보기 엔 밋밋한 구조물에서 ‘안복(眼福)’ 즉 눈이 누리는 호사를 언급하는 장면에선 되레 저자가 쇳덩어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듯하다.

항구의 생태계와 뱃사람들의 삶이 인문학과 버무려져 진한 바다 내음을 전한다. 간결하고 단단한, 뱃사람처럼 뚝심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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