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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스타 경제학자가 ‘경쟁’을 다시 꺼내 든 이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로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스타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철 지난 유행어처럼 느껴지는 ‘경쟁’이란 말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질주의 시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깃발처럼 나부꼈던 경쟁이란 말은 사실 금융위기 이후 꼬리를 감췄다. 무모한 경쟁 탓에 행복하지 못했다며 ‘느리게 살기’가 화두인 시대다. 과연 행복은 경쟁이 없어야 가능한가. 부크홀츠의 무모해보이는 도전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부크홀츠는 ‘러쉬’(청림출판)를 통해 일과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것이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21세기 행복전도사들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신경경제학과 진화생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영역의 최신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나하나 논박해 나간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외치는 에덴주의자들과 행복전도사들을 향해 그는 “진화의 DNA 사다리를 거꾸로 내려오려” 하는 사람들이라고 몰아간다. 초기 인류는 포식자, 그것이 짐승이건 다른 인간이건, 눈폭풍이건 호우건 도망쳐야 할 일이 많았다. 인정사정없는 이 지상의 삶과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으려면 경쟁을 해야 했고 다른 인간과 협력해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이 협력을 낳았으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토대라는 것이다.

행복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행복의 장애물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면 그 존재가 보인다. 저자는 행복과 무기력, 권태, 통제권 등이 어떤 연관을 갖는지 따져나간다.

특히 부크홀츠는 ‘긍정심리학’의 대부 마틴 셀리그먼의 초창기 연구인 학습된 무기력실험을 통해 동기와 학습력을 박탈할 경우 어떤 정서적 피폐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통제권을 더 많이 가질수록 우리는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사례도 있다. 이는 심지어 죽음을 늦추기도 한다. 1976년 심리학자 엘렌 랭어와 주디스 로린은 360개의 병상을 보유한 뉴잉글랜드 소재 양로원을 방문, 한층을 골라 각 방에 화초를 두고 간병인들에게 화초에 물을 주게 하고 4층은 노인들이 직접 물을 주도록 했다. 18개월 뒤 4층의 노인들은 절반만이 세상을 떠났다.

에덴주의자들의 장황한 주장과 달리 일을 많이 하는 것은 탐욕 때문이 아니며 심리적 혹은 신경학적 충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뇌과학을 통해 이미 입증된 바다. 일을 하면 새로운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며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성공이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순수한 쾌락과 자신의 재능을 실현하는 데 얻어지는 황홀경, 남을 돕는 데서 오는 충만감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부크홀츠는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부탄을 예로 들며, 국가에서 정한 똑같은 옷을 입고 모든 관광객은 똑같은 여행지와 음식을 제공받고 종교적 자유가 없는 천편일률적인 곳이 과연 행복한 곳인지 묻는다. 또 현대인들의 이상향쯤으로 여겨지는 소로의 월든 호숫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경우 정작 휴대폰 따위를 버릴 생각을 하거나 눌러앉기보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가 강조하는 경쟁은 누가 더 빨리 뛰느냐, 잡아먹히느냐, 제로섬 사회 논리가 아니다. 진정한 경쟁체제는 인간적 차원의 경쟁이라는 것. 세상의 문제를 요령껏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이웃으로부터 배우고 이방인과 어울리며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한 경쟁체제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자존감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시험을 없애고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고 성적이 향상된다거나 폭력행위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모든 학생에게 상을 주거나 A학점으로 도배하는 식의 과도한 포상은 오히려 아이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없도록 만든다고 경고한다.

책의 제목 ‘러쉬’는 경쟁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인디밴드 이름이기도 하다. 이 밴드는 1978년 ‘나무’라는 곡을 녹음했다. 떡갈나무가 볕을 더 많이 필요로 한 탓에 단풍나무가 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압제’라고 외치며 서로 동맹을 맺는다. 그런 다음 정부가 도끼와 톱을 사용해 모든 나무의 키를 똑같이 만들라는 ‘고결법(noble law)’을 통과시킨다. 이 가사의 교훈은 경쟁을 없애는 일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부크홀츠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기업, 경제, 복지,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막연한 개념들을 명쾌하게 구분 짓고 인간의 본성과 행복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역사, 철학, 문화를 아우르며 펼쳐내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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