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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획일적인 형광등빛이 싫어 낡은 조명기기로.."

서울 경복궁 앞 사간동의 금호미술관(관장 박강자)에서는 요즘 이색적인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디자인가구와 생활오브제를 수십년간 수집해온 12명의 컬렉터를 초대해 그들의 안목과 열정, 남다는 수집품을 바탕으로 오늘의 삶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디자인 형태에 대해 점검해본 ‘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전이 그것이다.

12명의 디자인 컬렉터 중 20세기 초중반 인터스트리얼(산업용) 빈티지 조명기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배상필 Chimera Industrial Vintage Lighting 대표로부터 수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빈티지 디자인 컬렉션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 경우는 형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형님은 파푸아뉴기니 아트 컬렉션을 하셨는데요, (상업적 판매의 목적이 아닌) 종교적 의미를 지닌 이 예술품의 가치를 일찌기 알아보셨지요. 사람이 죽으면 악어나 새 등등이 된다고 믿는 그네들은 이 동물들을 숭배하고, 작품으로 만들었죠. 원래 해외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지만 1920년대부터 외부로 조금씩 나온 것들이 소더비나 크리스티에서 경매로 나왔던 것이지요. 형님은 20대초 때부터 뉴욕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사오시곤 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벼룩시장 가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주로 형님과 동행했는데 제게 용돈으로 100달러쯤을 주시면 그 걸로 고물같은 것들을 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형님께서 "네가 정말 컬렉션을 하고 싶다면 한가지 아이템으로 한정해서 하라"는 조언을 들었죠. 그것이 시계든 성냥갑이든 한가지만 집중해서 모으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조명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능적인 아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보기에도 좋고, 기능성도 있어서지요.


=조명이라는 아이템으로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시작하신 후 첫번째 컬렉션은 무엇이었나요?

▶맥크로스키(Mc Crosky)라는 조명입니다. 1910년에서 30년대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모델이 두개죠. 맥크로스키라는 드릴 만드는 공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생산한 조명이었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고물로 보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조형적으로 너무 아름답고 그 기능과 효율성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전선을 안에 두는 게 아니라 밖으로 꺼내놓았고, 디스크가 두 개 있어서 좌우 여러 방향으로 조명의 방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심플한 조명이었죠. 이 때부터 인더스트리얼이 지닌 미(美)를 발견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생각 보다 인더스트리얼 조명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맥크로스키에 대한 역사를 찾기 위해 펜실베니아로 직접 갔었죠. 제가 수집한 조명을 그 곳에 가져갔는데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직접 사용될 목적으로 자체 제작된 이 조명은 판매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는 아무도 모르는 그 물건만의 역사를 찾고, 개척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인더스트리얼 조명에 대해서 여전히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어, 이름없는 조명 명작에 관해 책을 쓰는 게 꿈입니다.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조명 컬렉션


= 배 대표의 인생에서 컬렉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철학적으로 저는 오너쉽(ownership)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물건을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었을 때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다고 봐요. 즉, 세상에서 가치와 필요를 잃어버린 것들일지라도 저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 걸로 컬렉션의 의미가 이뤄지는 거예요. 옛날 물건은 혼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걸 믿기 때문에 제가 그 물건들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물건이 나를 컬렉팅한다고 생각해요.

잃어버린 가치를 재탄생시키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파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제가 만든 이 곳의 이름도 ‘키메라’라고 지었어요. 산업용 조명을 작품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이런 재활용과 재구성에 있어서 인더스트리얼 만큼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도 드물죠. 예를 들어, 티파니 같은 아이템의 경우 오리지널 유리가 깨진다면 재사용이 쉽지않거나 값어치가 반으로 뚝 떨어지는 반면, 공장에서 나온 인더스트리얼 조명은 나사 하나가 빠져도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고 리폼이 아주 쉽다는 점에서, 즉 구성의 다양함에서 재미가 더 크죠. 물론 철로 만들어져서 내구성도 굉장히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구요.



= 현재 주력하는 컬렉션 대상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1970년대이후 만들어진 조명은 수집하고 있지 않아요. 그 무렵부터는 플라스틱같은 재료를 사용한 조명이 많았고, 반영구적인 소모품을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20, 30년대 인더스트리얼 조명이고, 특히 프랑스, 독일, 벨기에 조명을 선호해요. 미국의 경우 1950년대 동쪽지역인데, 이곳에 산업이 발달해서 좋은 조명이 많았어요. 버지니아나 펜실베니아 쪽에 큰 공장이 많았거든요. 유명한 디자이너, 예를 들면 장 푸르베와 같은 거장 디자이너에게는 큰 관심이 없어요. 물론 이론적으론 그들의 작업세계를 인정하지만 오히려 이름 없는 명작들을 찾아다니는 것에 흥미가 더 크죠. 왜냐하면 거장의 반열에 오른 디자이너들도 대부분 이런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에 크게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 배 대표는 컬렉션 뿐 아니라 조명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시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조명을 제작하거나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이런 제작과정을 한번도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스스로 배워가면서 하고 있어요. 감전도 자주되었죠(웃음). 한국에 온지 6년쯤 되었는데, 한국만의 정서로 인해 처음에는 다양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한국에 와서 플로어 램프를 하나 만들었는데, 열을 가해 피막을 입히는 과정에서 착색을 시켰었죠. 그런데 을지로에 가서 맡기니까 쇠를 깍아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검정 피막을 모조리 벗겨놓았더라구요. 한 1년동안 욕을 먹으면서 을지로에서 배웠더니 이젠 그분들이 제 편이 되어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계시지요.




= 결정적으로 조명을 제작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 바(Bar)를 운영하던 시절, 옛날 조명을 갖고 공간을 꾸몄어요. 예전 조명을 리폼해서 바꿔가며 실험했던 게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집에 달린 형광등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형광등을 다 떼어버리고, 뉴욕에 있던 조명을 가져와 달았어요. 형광등은 사람들의 입체감을 없애고 너무 플랫하게 보이게 하거든요. 그 직접적인 붗빛이 싫었던 거죠, 그러면서 2007년도에 ‘키메라(Chimera)’라는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고, 제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조명을 재디자인하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거에요.

저는 책상스텐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다른 불은 다 꺼놓고 봤을 때, 책상스텐드는 비추는 공간이 플랫하지 않고 입체감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줘요.

뉴욕에서 와인바를 하면서 테이블 공간 하나하나를 비춰주는 조명을 제가 직접 만들면서부터 이같은 시도는 시작됐어요. 저는 뉴욕대 영화과를 다녔는데 당시 연극활동을 하던 때에, 조명공부를 한 게 큰 도움이 되었죠. 공간 안에서의 조명빛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아 차츰 공부하게 된 거죠. 



= 컬렉션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조언할 부분이 있을까요?

▶돈을 보지말고 컬렉션을 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투자가 아닌, 자신이 와닿는 물건을 찾는 게 중요해요. 옛날 물건이 안맞는 사람이 있고, 저처럼 잘 맞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 체질인가 아닌가를 찾아야한다는 거죠. 그리고 뭐든지 한 가지만 콜렉션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5년, 10년 하다 보면 그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서 커리어가 쌓이거든요. 한 분야만 전문화시켜서 컬렉션을 하다보면 그것이 나중에 보물이 되죠.



= 앞으로의 컬렉션의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는 조명디자인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어요. 또 유럽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조명을 역수입하도록 하고 싶고요. 중국에도 진출해보고 싶고요. 증국은 시장이 크기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걸릴 듯하지만 꼭 해보고 싶습니다. 인스트리얼 조명으로 다시 구성한 조명작품은 자기표현의 일종기이 때문에 계속해서 추구해보고 싶은 멋진 영역입니다.
 

<인터뷰 진행=금호미술관 학예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제공=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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