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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하버드대 출신 교도소 도서관 사서에게 무슨 일이?
‘하버드대 출신의 교도소 도서관 사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아비 스타인버그가 미국 보스턴 교도소 도서관 사서로 지내며 겪은 일들을 담은 ‘교도관 도서관’(이음)은 이런 아이러니한 조합으로 미묘한 긴장이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교도소와 도서관의 존재이유가 만들어내는 역설이기도 하다. 살인범, 갱단, 폭력배, 포주, 마약밀매자 등의 집합소인 교도소는 폐쇄된 공간이며 공유하는 게 금지된 장소지만, 도서관은 정보를 공유하는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책이나 잡지를 비롯해 사실 일반 도서관과 다름없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교도소 도서관 사서의 흔들리기 쉬운 위치를 보여준다. 



책은 방황하는 한 청년, 저자가 건강보험 때문에 교도소 도서관 구인광고를 보고 취직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유복한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한 저자 아비 스타인버그는 엘리트로 주목받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유대교에도 회의를 느끼면서 유대인공동체에서도 멀어진다. 그를 쓰려는 곳은 없고 프리랜서 부고 기자로 생계를 이어가다, 그는 어느 날 운명적으로 보스턴 교도소 도서관 사서가 되면서 재소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바뀐다.

여기엔 무엇보다 재소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타고난 이슬람교도로 흑인 사회운동가들 사이에서 자라난 패트캣, 재소자 가운데 가장 많은 법률적 지식을 갖고 있으며 카트리나 구호모금운동을 기획한 쿨리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감방 동료 베트남 여인을 위해 해우 토템으로 검정리본을 선사한 제시카 등 험악하기만 할 것 같지만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다.

교도소 도서관은 그저 책 읽는 장소가 아니다. 재소자들의 만남의 장이다. 이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장르는 단연 범죄물. 모든 재소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것은 잡지나 신문이다. 교도소의 독서 취향 역시 미국인 대다수의 독서 취향의 기준이랄 오프라 윈프리의 독서 클럽이 선정한 책들로 채워진다. 제임스 패터슨, 댄 브라운, 제임스 프레이의 책들은 꽂히기 무섭게 사라졌다. 재소자들이 부동산이나 소규모 창업에 관련한 책, 꿈 해몽에 관한 책, 점성술에 관한 책도 인기 아이템이다. 



교도소 도서관도 책을 빌려주긴 한다. 빌릴 수 있는 책은 문고본으로, 책장이 딱딱한 양장본은 무기로 돌변할 수 있어 대출 금지다.

교도소에서 책은 활용도가 높다. 여러 권을 겹친 뒤 테이프로 둘러 아령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금지품을 숨기는 일에도 사용된다. 물물교환 수단으로 드물게는 책 존재 자체를 위로로 삼기도 한다. 순수하게 읽기 위해서 책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교도소 도서관에도 북클럽이나 시를 읽는 모임, 침묵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모임 등이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재소자들이 도서관 어딘가에 쪽지를 남길 소지는 충분하다. 아무리 순수한 내용이 담긴 편지라도 이는 일종의 금지품. 저자는 책 속과 서가 사이를 조사하고 컴퓨터 디스켓 본체, 메일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어려움을 얘기한다. “남의 메일을 삭제하는 짓은 수상쩍은 쪽지를 주고받는 일보다도 더 나쁜 짓 같았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일상인들과 다름없는 범죄자들의 삶의 고민 앞에 인생상담사 역할까지 떠맡은 사서, ‘벌’하기 위한 공간인 교도서 안에서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저자가 처한 윤리적 딜레마 등은 일상 속에서 잊혀진 가치들을 환기시킨다. 때론 우습고 황당하며 때론 따뜻한, 인간사의 축소판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때 도서관 사서를 꿈꾼 젊은 소설가 한유주의 번역이 깔끔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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