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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윤재섭] 금융권 新관치가 성공하려면…
17세기 프랑스의 지성 파스칼은 “힘 없는 정부는 미약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포악하다”고 말했다. 불의의 절대권력을 경계하면서 힘 있고 의로운 정부를 갈망한 그의 명언은 세월의 무게가 더할수록 빛을 발한다.
4세기가 지난 지금 파스칼의 명언은 적어도 금융시장에서만큼은 ‘관치(官治)의 달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에 의해 발현되는 듯싶다. 2010년 12월 31일 그의 부임 이후 관치는 놀랄만치 세졌다. 금융당국은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한 대출재원 출연을 요구하더니, 서민금융 실적이 미미한 금융회사는 경영평가에 반영해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가계부채발 신용대란을 우려한 당국은 반발을 무릅쓰고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며 대출을 줄이라 했다. 카드사의 중소가맹점 수수료 부과체계와 각종 은행 수수료의 합리적 개선을 요구해 요율인하를 유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되자, 외화유동성 부족사태 예방을 위한 선제적 외화자금 확보를 촉구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제도개선을 통한 것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구두개입이나 지침에서 비롯됐다. 관치가 세졌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김 위원장은 재정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일하던 2004년 카드사태 당시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발언한 일화로 유명하다. 카드사태의 조기 수습을 이유로 관치가 강화된 것을 문제 삼자, “관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라며 정당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그의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시장자율에 의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면야 굳이 관치가 필요하겠느냐”며 “지금은 위기상황이고, 관의 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의 먼 미래를 위해서는 고용의 87% 이상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이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자금중개라는 공적기능의 은행들이 담보가 아니라 기술력과 성장성을 잣대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평소 주장도 잊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또 “지금의 관치는 정부가 직접 시장가격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개발경제시대 관치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지적한 뒤 “가격에 손댈 생각은 없다. 돈이 제대로 흐르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김석동의 관치가 힘을 발휘하면서 은행은 다시 금융기관으로 회귀하고 있다. 은행도 이윤을 추구하는 하나의 회사라는 의미에서 금융회사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불과 3년 만이다.
하지만 그의 관치는 여전히 도전받고 있다. 이익이 크게 불어났다는 이유로 은행이 배당잔치를 벌일 것을 우려한 금융당국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배당 자제를 권고하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배당이 적으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떠나고, 해외자금 조달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어 회장은 지난해 8월 김 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과 가진 간담회 때도 똑같이 발언한 바 있다. 은행의 민영화 추세에 발맞춰 1995년 배당이 자율화됐는데, 주인 있는 은행의 배당문제까지 당국이 간섭하는 게 어 회장은 못마땅했을지 모른다.
의롭고 힘 있는 관치가 요구되는 지금, 관치의 끝과 한계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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