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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로 변신한 고문기술자 이근안...“심문은 일종의 예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별세 소식으로 그를 수차례 고문한 이근안 목사(73)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26년전 김 고문을 고문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김전무’, ‘박중령’으로 불리며 재야 운동권 사이에서 악명이 떨쳤다. 당시 ‘반달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관절뽑기’, ‘볼펜심문’ 등 각종 고문에 통달해 다른 기관에 ‘고문출장’을 다니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고문은 지난 1983년 9월 전두환 정권 최초의 저항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고, 이를 이유로 85년 구속되면서 이근안을 만나게 된다. 1985년 9월 4일 비내리는 새벽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로 끌려간 이근안 경감에게 16일동안 10여차례에 걸쳐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이근안 경감은 10년10개월간의 도피생활을 했다. 그의 도피생활을 모티브로한 ‘생강’이라는 소설이 쓰여지기도 해다.

도피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수하면서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는 7년간 복역을 거쳐 2006년에 출소했다. 그러던 중 김 고문은 2004년 이근안씨를 직접 면회하며 “용서한다. 건강하시길 빈다”라며 역사적 용서를 하기도 했다.

출소 뒤 이근안씨는 2008년 10월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임직 예배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당시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며 “교정선교 활동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이후 그의 목회 활동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출소 뒤 수십차례에 걸친 간증에서 “빨갱이를 잡았을 뿐인데, 정권이 바뀌자 죄인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한 말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고문 활동에 대한 사죄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모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심문의 일종의 예술이며, 당시 시대상황에선 애국’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고문에 대한 진정한 사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도제 기자 @bullmoth>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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