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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경제총량 극대화 정책 폐기할 때 됐다
숫자 얽매인 경제 정책 기조

국민 대다수 성장 체감못해

전 사회적 소득불균형 초래

구태의연 발전모델 포기해야



숫자가 주는 마력이 있다. 목표는 대부분 숫자로 설정된다. 목숨 걸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는 쾌감…. 이른바 ‘매직 넘버’다. 

일단 눈 앞에 목표 숫자가 제시되면 수단과 방법은 하부 개념이 된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기한 내 목표치를 달성해야만 한다. 그래야 숫자를 제시한 자의 성과나 리더십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끼워맞추기도 그래서 나온다.

약 35년 전인 1977년 우리나라는 100억달러 수출, 1000달러 국민소득이란 목표를 3년이나 앞당겨 달성하고 감격스러워했다. 현재 우리는 ‘무역 1조달러’ 목표 달성을 앞두고 2만달러를 넘어선 1인당 국민소득에 뿌듯해하고 있다.

역대 모든 정권은 경제성장의 목표를 숫자로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매직넘버는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이었다. 비록 달성하기 어렵게 됐지만, MB정부 경제정책 방향의 모든 것이 이 숫자 안에 들어 있다.

글로벌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의 화두로 떠오르자 정부는 균형재정 목표를 당초 2014년에서 1년 앞당긴 2013년으로 제시했다. 이 역시 국민들에게 제시한 ‘목표 수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그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숫자로 표시된 목표량은 달성됐지만 질적인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계속된다는데 기업과 가계, 개인과 개인 간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수출과 내수의 성장 격차는 점점 심해져 ‘이대로 가다간 절름발이 경제’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장을 체감할 수 없다면 국민들은 그동안 큰 착각 속에서 살아온 게 아닐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가고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면 왠지 내 살림살이가 풍성해진 것처럼 느낀다. 사실은 정부가 제시한 성장의 목표 달성과 내 삶은 별로 상관이 없었는데 말이다.

경제성장과 체감경기 간 괴리는 지난 50여년간 유지해온 ‘경제총량 극대화’ 발전모형과 이를 뒷받침해온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결과다. 일종의 노폐물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지탱해온 한국경제 유지모델은 곳간을 채우는 것이었다. 당시 IMF 구제금융을 수용한 정부는 경상수지 흑자를 내서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게 지상과제였다. 환율, 금리, 재정지출 등 정부가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카드가 수출과 경상수지 흑자에 맞춰졌다.

그 결과물은 가계와 기업 간 소득불균형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국민처분가능소득(NDI)을 보면 1997년에는 NDI 중 법인 몫은 3.4%였는데 2010년엔 13.8%로 확대됐다. 반면 개인 몫은 같은 기간 73.6%에서 63.2%로 떨어졌다.

성장의 목표를 던져놓고 국가 자원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시대는 끝났다. 경제총량 극대화의 구식 모델은 더 이상 국민들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양극화 고령화 속의 대한민국’이란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20세기형 당국자가 지난 50여년의 정책 매뉴얼을 그대로 답습하며 19세기적 자유시장 만능주의에 따라 경제를 처방한다면 21세기형 고질병은 더욱 심화된다. 치료의 시작은 숫자로 제시되는 경제총량 극대화 모델의 포기다. 힘들겠지만 거기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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