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퓨전 사극의 열풍을 가져온 ‘다모’ 이후 MBC는 ‘대장금’ ‘주몽’ ‘선덕여왕’ 등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으로 한동안 ‘사극 제국’의 아성을 이어갔다. MBC 사극의 특징은 정통 사극의 핵심적 요소였던 평면적 캐릭터, 뚜렷한 선악 대립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예상된 갈등 전개 등을 넘어섰다는데 있었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KBS ‘추노’ , ‘성균관 스캔들’ 등과 함께 ‘사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MBC의 내공은 어린아이 같은 말투와 인간적인 면모를 크게 드러내 화제가 됐던 ‘동이’ 속 지진희표 임금님을 통해 갈등 전개보다는 개성있는 캐릭터만으로도 사극이 충분히 ‘된다’ 는 것을 보여줬다. 이같은 캐릭터 부각은 사극뿐만 아니라 현대물에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제 ‘막장’까지 간 드라마 스토리가 어지간한 갈등으로는 시청자들의 환심을 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물에 비해 역사적 사실로 엄연히 존재하는 ‘예상된 갈등’ 을 가지고 있는 사극에서, 스토리보다 캐릭터에 집중하게 된 것은 큰 변화다. 물론, 역사적 자료가 거의 없는 시대(선덕여왕ㆍ계백)와 기록은 존재하나 그 실체가 불분명한 인물(대장금)들이 주인공이다보니, MBC의 사극들은 스토리보다는 캐릭터 자체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기존 정통 사극에 식상한 시청자에게 소설적 재미를 부여하고, 작가진은 틀에 박힌 갈등 전개가 아닌,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해 갈등을 만들어낸다.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개성 강한 명품 조연도 이러한 흐름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성 강한 캐릭터 중심의 퓨전 사극도 이제 한계인 듯하다. 이서진 등 화려한 캐스팅과 웅장한 스케일로 야심차게 출발한 ‘계백’은 SBS ‘무사 백동수’ 에 치여 고전하고 있다. ‘주몽’ ‘선덕여왕’ 에 이어 비슷비슷한 캐릭터가 연이어 등장하다보니 식상하다. 대표적 예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과 ‘계백’의 사택비(오연수 분)다. ‘계백’ 초기부터 비슷한 화장과 복장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근본적 문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정치인에 대한 기시감이다.

캐릭터에만 치우치다보니 극 전개의 개연성도 떨어졌다. 배경 탓에 ‘사료가 미비하다’는 것이 면죄부지만, 상상력에 근거한 소설적 이야기가 더이상 신선하지도 않다는 게 흠이다. 흥행엔 성공했지만, ‘선덕여왕’의 경우도 극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스토리가 엉성해졌다. 주인공에 대한 역사적 의견은 분분했지만 ‘대장금’의 경우 음식과 의학이라는 소재의 참신성과 밀도있는 이야기 전개로 최고의 ‘한류 사극’으로 선전한 것과 대조적이다.

‘짝패’ 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MBC가 ‘계백’ 으로 다시 ‘사극 제국’ 의 신화를 이어가려면 ‘캐릭터의 덫’ 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박동미 기자@Michan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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