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0, 일본 3.

한국 축구사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영원한 숙적 일본과의 경기. 질 수도 있고, 진 경기도 많았지만, 이번 경기는 어떠한 변명을 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졸전이었고 완패였다.

지난 10일 적지인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75번째 맞대결은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 축구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혔다. 단순히 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 일본보다 나은 것이 없었던 일방적인 경기였기에, ‘축구 국치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국민들의 실망은 컸다. ▶관련기사 30면

흔히 ‘한ㆍ일전은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지와 정신력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월등한 전력일 때도 패한 적이 있고, 일본이 전성기라고 해도 한국 선수들은 두려움 없이 승리하곤 했다. 하지만 이날은 과연 한ㆍ일전이 맞을까 싶을 만큼 일본에 압도당했다.

박지성이 은퇴했고, 이영표도 없었다. 이청용은 부상으로 빠졌다. 이적을 앞둔 박주영은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다. 분명 이번 조광래호 대표팀은 최고의 전력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0-3 참패를 설명할 순 없다. 일본 공격수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한국 문전을 유린했다. 한국 공격수들은 무리한 돌파와 의미 없는 패스를 연발하다 공을 내주고 역습을 허용하기 일쑤였다. 전력이 약하면 전술로, 전술도 밀리면 체력으로, 체력도 안 되면 정신력으로 일본을 괴롭혔던 한국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박지성 이후 유럽 리그에 한국 선수들이 줄줄이 진출하고, 월드컵 본선에 7회 연속 오르면서 우리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일본도 많은 선수들이 독일,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등에 진출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해왔다. 더군다나 일본은 이번 한ㆍ일전을 앞두고 훈련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전 국가대표 마쓰다의 영전에 승리를 바치자며 정신력도 강하게 무장했다. 결국 한국은 전력, 전술, 정신력 모두 일본에 뒤졌다. 승리를 기대할 만한 밑천(?)이 없었던 셈이다.

최근 국내 프로축구를 강타한 전대미문의 승부조작 파문으로 축구계가 휘청거리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이때 나온 패배라 더욱 뼈아팠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