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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인간의 창조물인 제품도 마찬가지. 최첨단을 달리는 IT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별 뜻 없어 보이는 제품명도 ‘삼고초려’의 고단함이 담겨 있다. 아이폰으로 빅 히트를 치고 있는 애플은 IT업체로서는 생소한 이름을 걸고 출발했다.

지금이야 국내외 뉴스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니 어색함이 없지만, ‘사과’라는 기업명에서 첨단기술을 떠올리긴 무리가 있다. 애플 사의 이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탄생 과정이 어찌 됐건 이름은 의외의 효과를 거뒀다. 과일 중에서도 흔하디흔한 ‘사과’이다 보니 한번 들으면 기억하기 쉬운 것은 물론, ‘왜 하필 애플일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다.

베어 문 사과 모양의 로고는 ‘뉴튼의 사과’를 떠올리게 해 혁신적인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IT제품에는 나름의 이름 짓기 방식이 있다. ‘애플’처럼 친숙한 이미지에 승부를 거는가 하면,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름만 듣고도 해당 제품을 짐작할 수 있는 ‘직관적인 네이밍(이름 짓기)’이 대세다.

▶‘초콜릿’ ‘망고’는 먹는 거 아닌가요?=3~4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맛있는’ 이름을 가진 일반폰(피처폰)이 전성기를 누렸다. 정확히 말하면 정식 이름이 아닌 ‘펫네임’(애칭)이다. 매끈하고 네모 반듯한 외관과 부드러운 파스텔톤 색상이 각각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연상케 하는 이들 제품은, 개성을 중시하는 10~20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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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바람을 일으킨 ‘블랙베리’도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신선한 제품명과 쿼티 자판을 탑재한 깜찍한 외관으로 호감을 샀다. 제조사인 리서치인모션(RIM)은 자판의 버튼이 과일 씨를 닮은 것에 착안해 스트로베리, 멜론 등의 이름을 떠올린다. 결국 검은색 단말기와 어울리는 ‘블랙베리’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스마트폰의 프로그램을 돌아가게 만드는 모바일 운영체제(OS)야말로 ‘맛있는’ 이름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는 디저트 이름을 따 각 버전의 코드명을 만들었다. 1.5버전 컵케이크(Cupcake), 1.6 도넛(Donut), 2.2 프로요(Froyo), 2.3 진저브레드(Gingerbread) 등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폰7도 ‘망고’라는 이름의 새 버전을 선보였다.

먹을거리를 이름으로 내건 제품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전자제품을 한결 친숙한 이미지로 만든다. 또 안드로이드 OS처럼 시리즈로 이어질 경우, 다음 버전엔 어떤 식품명이 활용될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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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제품명으로 이미지 ‘UP’=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는 그리스어로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SF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과 비슷한 로봇을 뜻한다. 안드로이드는 세련됨이 묻어나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이름으로부터 나온 ‘드로이드’ 로봇 캐릭터도 인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스마트폰 중 하나가 삼성전자의 ‘갤럭시(Galaxy)’ 시리즈. 삼성전자는 ‘애니콜’이라는 노후한 브랜드를 버리고, 새 플랫폼인 ‘안드로이드’와 어울리는 ‘갤럭시’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 ‘은하계’를 뜻하는 ‘갤럭시’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제품에 투영하는 동시에, 광활한 우주처럼 다양한 기능과 넓은 활용도를 강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첨단과학 분야와 관련된 이름은 참신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제품의 고급화 전략에도 일조한다는 평가다.

▶“우린 남들과 달라”…기업 철학을 담다=애플은 ‘아이(i)’ 시리즈로 잇달아 홈런을 치고 있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대명사 격으로 인정받으면서, i 시리즈는 애플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이(i)는 ‘인터넷(internet)’ 외에도 ‘개인(individual)’ ‘지시(instruct)’ ‘알림(inform)’ ‘영감(inspire)’ 등 뜻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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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소비자들은 아이팟과 아이폰의 ‘아이(i)’를 ‘나(I)’, 또는 ‘정체성(identity)’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애플 사의 혁신적인 이미지와 ‘개인’ ‘인간’에 초점을 둔 기업 철학이 제품에 투영돼 소비자들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들에게 ‘아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닌 스마트 시대의 아이콘과도 같다.

대만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HTC도 아이(i) 시리즈처럼 일관성 있는 제품명을 선보여 왔다. ‘디자이어(desire, 열망)’ ‘인크레더블(incredible, 놀라운)’ ‘센세이션(sensation, 돌풍)’을 비롯해 국내 출시를 앞둔 3D폰 ‘이보(evo, 진보)’까지 대체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단어가 제품명으로 선정됐다.

이는 “실패 목표율 95%를 달성하라”는 HTC의 기업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생산한 제품 중 95%가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5%의 성공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느낌이 팍…”=지금은 일반명사가 된 ‘스마트폰’도 특정 휴대전화의 제품명에서 출발했다.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기존의 통화 기능을 넘어 인터넷, 업무 등의 기능을 가진 ‘똑똑한’ 휴대전화를 가리킨다. 1998년 세계 두 번째 스마트폰인 ‘노키아9000’의 상품명 옆에 ‘스마트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던 것을 계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스마트’라는 개념은 최근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스마트 TV’ ‘스마트 패드’ ‘스마트 자동차’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와 비슷한 맥락에서 IT 분야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바로 ‘클라우드’. 웹상에 데이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어디에서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서비스다. 거대한 ‘구름’ 같은 웹 공간에 접속해 일부를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트위터(twitter)’는 IT업계에서 가장 직관적인 서비스명으로 꼽힌다. ‘지저귀다(twitter)’라는 뜻을 담은 140자 단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지저귀듯’ 수다를 떤다.

이혜미 기자/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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