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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을 봤네
그가 맞되 예전 그가 아니다. 2년 전 UCC 동영상 속 ‘루저들의 우상’은 허물로 벗겨져 있다. 적어도 인디발(發) 일회성 신드롬의 주인공은 거기 없었다는 얘기다. 라이브 밴드로서의 정공(正攻)이 앞장섰다. 공연장을 달군 새 ‘땔감’은 미미시스터즈의 춤사위 대신 연주자들의 정교한 합(合)이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린 장기하와 얼굴들 2집 발매 기념 콘서트 마지막날 공연. 장기하와 얼굴들은 새 앨범 첫 곡 ‘뭘 그렇게 놀래’를 연주하며 6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 등장했다.

마이크를 잡은 장기하를 중심으로 이민기(기타), 정중엽(베이스), 김현호(드럼), 이종민(건반) 등 얼굴들이 늘어섰다. 김창완밴드에서 활동하며 장기하와 얼굴들 2집 프로듀스를 도운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도 함께였다.

정교한 합주와 풍성한 음향, 일사불란한 조명이 맞아떨어지며 라이브 밴드로서의 매력이 극대화된 게 눈에 띄었다. 2년 전 1집 발매 기념 공연 때와는 ‘클래스’가 달랐다. 예전 공연이 춤과 코러스를 담당했던 별난 비주얼의 미미시스터즈와 장기하가 펼치는 코믹 음악극에 가까웠다면, 이번 공연은 정색하고 객석의 귀를 강하게 틀어잡는 ‘본격 콘서트’였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펼쳐진 공연 중반부(‘정말 없었는지’ ‘그 때 그 노래’ ‘마냥 걷는다’)에 이르러 장기하는 “이곳(이대 삼성홀)에서 열린 다른 뮤지션들 콘서트를 보고 여기서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곡들이 거기 잘 들어맞는 노래들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의 큰 흐름은 60~70년대식 사이키델릭 록의 대폭발이었다. 산울림, 송골매 등의 영향이 엿보이는 장기하 특유의 한국적이고 털털한 보컬은, 오르간과 무그 신서사이저 등이 주도하며 드리운 자욱한 소리의 안개와 만나 기묘한 조합을 찾은 듯했다. 그 안개는 LP로 듣던 70년대 해외 사이키델릭 록밴드의 기억을 불러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펼쳐낸 무대는, 그런 옛 해외 밴드들의 음악에서 장황하게 이어지는 기타나 오르간 솔로 파트를 덜어낸 대신 강력한 후크(hook)의 한국어 보컬을 탑재한 형국이었다. 요즘 시대에 이런 식의 복고적 연주에 환호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면…,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낸 게 어떤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하세가와 요헤이의 합류는 이런 콘셉트에 더없이 맞아떨어졌다. 산울림과 신중현의 음악에 빠져 한국에 건너온 기타리스트. 그는 펜타토닉(전통 음악이나 블루스의 기본이 되는 5음계) 악절과 한국식 보컬을 필살기로 장착한 장기하 안에서 그가 투신할 만한 21세기식 한국 음악을 발견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됐는데, 그걸 이번 무대에서 십분 보여줬다. 기타와 음향 장비를 오가며 환각적인 음향을 덧입힌 그는 “미미시스터즈 대신 비주얼을 맡으라며 이런 옷(붉은 색의 화려한 상ㆍ하의)을 입혔다”고 너스레 떨었지만 의상 대신 눈에 보일 듯 다채로운 사운드로 콘서트에 아우라를 채색해 넣었다.

음악이 잘 들렸다고 해서 장기하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무대 매너가 안 보인 건 아니었다. 되려 음악과 시너지를 내며 공연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탈진할 정도는 돼야 저희가 헤어질 때 어색하지 않고” “어떻게…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등 예의 바른 관중 선동 멘트는 격하거나 절제된 춤사위(어깨 춤, 손가락 춤 등)로 이어지며 관중들을 쥐락펴락했다. 그는 1집 히트곡 ‘싸구려 커피’를 소개하며 “2집에서 (이보다) 더 칙칙한 곡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도 했다.

객석의 반응은 ‘나를 받아주오’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 ‘TV를 봤네’(신곡) ‘아무 것도 없잖어’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신곡) ‘우리 지금 만나’ 등에서 끓어올라 ‘별일없이 산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비등점을 찍었다.

장기하는 “감사하다. 10집까지 내게 해달라”고 했다. 그 꿈을 이룰지 미지수지만 당장 벌써 3집이 궁금해진다. 성사될지 모를 아레나급 콘서트도. ‘인디식 이승환’의 환영을 본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ㆍ사진 제공=프라이빗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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