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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라덴 사후...알-카에다 후계구도는?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사살됨에 따라 후계구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카에다의 2인자로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아이만 알-자와히리(60)가 빈 라덴의 뒤를 이어 알-카에다의 수장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빈 라덴이 알-카에다의 상징적 존재였다면, 자와히리는 각종 테러를 지휘하며 이미 실질적 지도자 역할을 해왔기때문에 빈 라덴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예멘계 미국인 성직자 안와르 알-올라키(40) 또한 빈 라덴의 후계구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올라키는 2009년 텍사스 미군기지 총격사건과 성탄절 미국행 여객기 폭파 기도, 그리고 지난해 예멘발 미국행 화물기 폭파 미수 사건의 핵심 배후로 지목된 인물로, 미 관리들은 올라키를 빈 라덴과 동급의 위험 인물이라고 간주해 왔다.

▶아이만 알-자와히리=이집트 국적의 자와히리는 빈 라덴이 생포되거나 사살될 경우 알-카에다를 이끌 지도자로 일찌감치 거론돼 왔던 인물이다. 알-카에다 조직 내 최고 전략가이자 이론가로 통하는 자와히리는 할아버지가 유명 학자이고 아버지가 명망있는 의사인 카이로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15살의 나이에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조직인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운명을 택하게 된다.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의사로서 수련을 쌓기도 한 자와히리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 암살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다트 암살 이후 과격 이슬람운동가에 대한 검거열풍이 불었을 때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돼 3년간 복역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이슬람 세력의 국제 대변인 격으로 부상했다.

자와히리는 1985년 이집트를 떠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살며 친소련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부상 전사들을 치료하는 활동을 벌이던 중 빈 라덴을 만나 굳건한 유대를 형성했다.

자와히리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1998년 빈 라덴과 함께 사우디에서 미국세력 축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인 축출 등을 목표로 한 ‘세계 반(反) 유대.십자군 이슬람 지하드 전선’을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빈 라덴과 함께 같은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미국의 수배대상에 올랐고, 이집트 정부는 이듬해 궐석재판을 통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자와히리는 2001년 아프간 칸다하르 지역에 머물다 미군의 공습을 받아 부인과 자식들을 잃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와히리는 중동 시위사태와 관련, 각국에 이슬람 통치가 구현되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는 등 최근까지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파키스탄 북와지리스탄 또는 인근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와히리는 지난 달 14일, 18개월 만에 비디오 연설에 등장해 “서방 국가들의 리비아 사태 개입이 침략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아랍권 군부도 카다피 축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했다.

▶안와르 알-올라키=올라키는 2001년 9.11 테러부터 지난해 예멘발 폭탄소포 발송사건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테러 공격의 배후로 빠짐없이 거론돼 온 인물이다. 올라키는 또 최근 전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테러활동을 벌여 온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971년 미국 남부 뉴멕시코주에서 태어난 그는 예멘 농업장관과 대학 총장을 역임한 부친 등 가족을 따라 7살 때 예멘으로 건너갔다. 10대 시절 이슬람 교육을 받은 올라키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그는 1994년 결혼해 미국 덴버와 콜로라도 포트 콜린스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성직자인 이맘이 됐고, 1996년 샌디에이고에서 4년 간 사원을 운영했다. 훗날 9.11 항공기 테러범들이 여기서 그의 설교를 들었고 이곳 성직자들과 오랜회합을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2년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이후 예멘으로 돌아온 올라키는 2006년 8월 미군 무관을 납치하려 한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예멘 당국에 체포돼 18개월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석방 이후 올라키는 미국이 이끄는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 맞서 저항을 선동하는 급진적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웹사이트와 소책자, CD 등을 통해 ‘지하드를 지원하는 44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비롯해 폭력을 선동하는 글을 띠워 젊은 이슬람 교도들의 정신적 지주로 급부상했다.

예멘 샤브와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올라키는 최근에도 “미국 정부와 미국인이 모두 공격의 목표물이 되야 한다”며 미국에 대한 공격을 선동, 미국에 최고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그를 ‘사살 또는 체포할 명단’에 올려 놓은 상태다.

헤럴드 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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