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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는 할머니 같죠. 미래가 여기 있습니다.”
친한파 디자이너 장 뤽 암슬러의 ‘코리언 드림’

“유럽은 너무 늙었죠. 프랑스는 이제 할머니 같은 나랍니다. 감성과 본성에 충실한, 동물 같은 저한테는 한국이 딱이에요.”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호텔. 한눈으로도 초고가로 뵈는 화려한 보석 장신구들이 들어찬 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이가 있다. 바싹 깎은 머리, 검정 수트와 셔츠에 반짝이는 보라색 타이로 포인트를 준 단신의 벽안 남성. 일순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난다. 프랑스 디자이너 장 뤽 암슬러(사진). 입생로랑, 크리스찬 디올, 카르티에 등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뒤 신사복부터 향수에 이르는 다양한 라인을 론칭했다.

실험적인 감각으로 유럽에서 주목받는 그는 최근 유독 한국에서 ‘일’을 많이 벌였다. 기아자동차 쏘울의 내ㆍ외관 디자인에 참여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CJ몰과 손잡고 ‘암슬러 백’도 내놨다. “독특한 디자인의 명품 가방을 높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수만 회의 동영상 조회와 구매를 이끌어내며 한바탕 이슈가 됐다. 파리에서 열린 이영희 한복 패션쇼와 대우 마티즈의 론칭 행사를 연출한 인연도 있는 그는 대표적인 패션 친한파.

이번에는 세계적인 보석 재벌가 상속자를 설득해 서울에 왔다. 카르티에와 쇼메 등에 원석을 공급하는 샤위시 주얼리의 한국 론칭을 위해서다. 스위스 제네바 본사 외에 영국 런던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진출이다. 왜 또 한국일까. 기자와 만난 그는 “서울이 미래의 패션ㆍ문화 허브가 되리라 확신한다”고 단언했다.

▶“파리서 한복 패션쇼에 감명…서울 와 한국인들 심미안에 더 큰 충격”=
그가 ‘코리언 스타일’에 매료된 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당시 신참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의 쇼를 보게 된다. “이건 깊이가 달랐어요. 연금술사처럼 전통과 모던을 녹여낸, 인고와 노력의 결과물임이 느껴졌죠.” 크게 감명 받은 그는 이영희씨를 찾아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암슬러의 감각을 눈여겨본 이씨는 다음해 쇼의 연출을 그에게 맡겼고, 대우자동차 마티즈의 파리 론칭쇼도 디렉팅하게 됐다. 한국을 몇 차례 오가며 한국의 다이내믹함과 한국인들의 패션 센스에 깜짝 놀랐다. 경제와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동시에 사람들의 심미안이 놀라울 정도였다. 거리에 나가 몇 분만 돌아다녀보면 느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10여 차례나 한국을 오갔다.

▶“젊은 차 쏘울에 프랑스 테크노 뮤직을”=그러던 어느 날, 기아차 프랑스 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파리 론칭 행사에 모델들이 입을 의상을 디자인해달라는 것. 미래적인 그의 스타일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독특한 의상이 맘에 들었던 자동차 회사에서 쏘울의 디자인에 참여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의상을 전공했지만 시계와 향수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온 그는 선뜻 수락했다. “콘셉트를 살펴보니 신세대를 위한 차더군요. 그런데 첫 느낌에서 자유분방함이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다 프랑스 테크노 음악이 떠올랐죠. 블링블링한 디스코텍 이미지를 떠올리며 화려한 조명 등을 제안했죠. 젊은이들은 차를 딱딱한 운송 수단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데리고 놀고 싶어하죠.”

▶보석부터 화장품, 물까지…한국은 미래 패션의 중심=그는 이번에 샤위시 주얼리의 상속자인 샤웨시 3세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곳까지 데려왔다. 샤위시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적을 둔 그는 “한국에 안 가봤느냐. 꼭 가봐야한다”며 소매를 끌었다. 제네바 본사, 영국 런던 지사에 이어 세 번째 론칭 장소로 서울을 택하도록 설득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문화 허브이며 가까운 미래에 세계 문화의 중심지가 되리라고 예견했다.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크레이지”하고 의욕적이며 럭셔리와 디테일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유니크와 엘레강스를 알고, 경제와 예술이 잘 섞여 있다고 했다. 일본은 너무 폐쇄적이며 룰이 많고 중국은 경제적 잠재력은 있지만 미적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세계를 향한 도전 파트너로 한국을 잡았다. “한국에서라면 어떤 꿈이라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는 그의 눈은 진지하다. 화장품과 독특한 디자인의 암슬러표 생수까지 한국에 최초로 론칭할 계획이다.

“지금, 유럽은 아주 늙어버렸습니다. 프랑스는 할머니 같죠. 유럽이 잃어버린 모든 게 이곳에 있습니다. 미래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ㆍ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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