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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위, 노장은 살아있다
수십년을 무대 위에서 살았다. 세월은 연기와 생활의 경계를 지웠다. 덕분에 대본 속 글들은 연기가 아닌 삶의 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관객과 함께 숨쉬는 연극 무대 위에서 노장의 존재감이 여전한 이유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도 볼 수 있는 얼굴이지만 연극 무대와 다른 것은 그들이 선 위치. 비중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는 그들이지만 60대든 80대든 그들은 연극 무대의 중심에 있다. 무대란 공간에 떨어져 있지만 가깝고,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감동을 준다.

80대 배우, 백성희, 장민호는 다음달 7일부터 자신들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3월의 눈’ 앵콜 공연을 갖는다. 두 배우의 첫인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는 배삼식 작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충만한 느낌으로 가득 찼기에, 지난달 열흘 간이라는 짧은 공연에 대한 아쉬움은 짙었다. 반전이 없는 담담한 이야기,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호흡이지만 이 배우들은 침묵으로도 무대를 가득 채운다. “난 외우지 않는다”며 “그저 극중 배역을 분석하고 매일 연습하다 보면 나 자신은 없어지고, 그 인물이 돼 있다”는 장민호의 말이 왜 ‘그들’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다음달 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응시’의 주역 이호재와 전무송은 올해로 70대로 접어들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이순재와 호흡을 맞춘 배우 윤소정 역시 어느덧 60대 후반이다. ‘응시’는 ‘지원의 얼굴’ 등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권진규의 삶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지만 세 배우는 지난해 6월 이호재의 칠순 기념 헌정 연극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한 무대에 서며 우정과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성녀는 소설에서 연극으로, 연극에서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나는 ‘엄마를 부탁해’(5월 5일~6월 19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말없이 희생으로 존재하던 엄마를 연기한다. 마당놀이, 연극, 뮤지컬에서 두루 활약을 해온 김성녀는 이번 무대에서 김형석 작곡의 노래로도 감동을 선사한다. 최근 공개된 타이틀곡 ‘미안하다’는 장녀 역을 맡은 배우 차지연과 함께 부르는 노래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 못난 엄마라서 미안하구나’ ‘이제 나는 너희를 두고 다시는 못 돌아올 길을 떠난다’라는 가사를 통해 애절함을 더한다.

올해 일흔을 맞는 강부자는 차범석의 ‘산불’(6월5일~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양 씨 역을 맡는다. 조민기, 장영남, 서은경 등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차범석 5주기의 기념 공연인 만큼 ‘친정엄마와 2박3일’ ‘오구’ 등으로 꾸준히 연극에 출연해온 그의 힘을 빌렸다. 6.25 이후 두메산골 과부마을에 한 남자가 내려오면서 일어나는 여인들의 심리와 욕망을 세밀하게 연기한다.

배우 백성희는 ‘3월의 눈’ 공연을 앞두고 “배우는 두 가지 경우일 때 은퇴한다”고 했다. “기동력이 떨어졌거나 기억력이 감퇴했을 경우”다. 시간은 젊음을 가져갔지만 배우의 연기엔 세월의 무게가 실렸다. 그런 그들에게 은퇴란 없을 것 같다.

윤정현 기자/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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