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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후크송’의 조용한 반란
아이돌, 걸그룹들이 애지중지하던 후크송이 약화되면서 감성이 부활하고 있다. 빅뱅의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후크송은 지난해 중반까지도 기세를 이어가는 듯했다. 노래의 기-승-전-결 구조의 ‘전(轉)’에 해당하는 부분, 즉 후크 파트만을 압축반복해 들려줘 효과를 극대화하는 후크송은 노래를 담는 환경, 즉 인터넷과 모바일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동안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는 거의 후크송이 지배했다.

하지만 후크송의 쏠림 현상은 지겨움을 야기했다. ‘삐리빠빠’ ‘수파 두파 디바’ ‘삐리뽐 빼리뽐’ 등 의미도 알기 힘든 외계어 같은 단어를 나열하는 이런 노래들은 최근 갑자기 힘이 줄어든 듯하다.

후크송에 대한 반작용은 멜로디 라인이 살아있고 내러티브가 살아있는 노랫말을 갖춘 반(反)후크송으로 나타났다. 후크송이 전자음이 가미된 디지털 음악이 주류였다면 반후크송은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아날로그 정서가 큰 흐름이다.

주류무대에서 이런 조짐은 이미 지난해 아이유의 ‘좋은 날’에서 감지됐다. 아이유는 멜로디 라인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후쿠송과 달리 기승전결의 노래 구조를 갖추고 멜로디 라인이 탄탄하면서도 기계음도 들어있지 않은 ‘좋은 날’을 크게 히트시켰다. 이때 걸그룹과 후크송의 인기에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후크송이 한창 먹힐 때는 멜로디 라인을 갖춘 노래들이 촌스럽게 들렸지만 후크송이 범람하면서 오히려 이런 노래들이 차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발표되자마자 정상에 오른 아이유의 후속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 역시 멜로디 라인이 살아있는 아날로그성 발라드다. 윤상이 작곡한 이 노래는 노스텔지아 발라드로 불린다.

인디밴드 사이에서도 담백하고 어쿠스틱한 음악들이 호조다. 요즘 홍대앞에서 ‘제2의 장기하’로 불리며 가장 ‘핫(hot)’한 밴드로 부상한 10㎝(십센치)가 내놓은 첫 정규앨범 ‘1.0’은 초도 물량 1만장이 벌써 매진됐다. 권정열 윤철종 2인 밴드인 10㎝의 음반에는 어쿠스틱 포크계열의 노래들이 대거 수록돼 있다.

수록곡 ‘그게 아니고’는 음원이 오픈되자마자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우정 그 씁쓸함에 대하여’와 함께 3곡이 동시에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인디밴드가 온라인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건 처음이다.

‘그게 아니고’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면서 가사의 디테일까지 그대로 전달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내가 눈물이 난 게 아니고/이부자리를 치우다 너의 양말 한짝이 나와서 갈아신던 그 모습이 내가 그리워져 운게 아니고/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라고 말했지만 결국 ‘어두운 밤 골목길을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우네’로 속마음을 보이면서 끝나는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후크송의 반작용은 세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고(故) 김광석 다시 부르기의 열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고백조의 김광석의 노래는 진솔한 가사가 가진 진정성의 힘 외에도 감성이 부족한 전자음 일색의 후크송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담담하고 애잔한 아날로그형 감성을 선사한다. 아이돌 그룹이 평정했던 가요계에 박혜경, 플라워, 에이트 이현 등 감성을 대거 탑재한 기성가수들이 한명씩 컴백하는 것도 후크송과는 다른 음악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후크송의 향후 수명은 후크송 포문을 열었던 빅뱅이 오는 24일 발표하는 새 미니앨범의 노래가 어떤 스타일인지, 또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보면 더 확실하게 파악될 것 같다. 빅뱅의 이번 미니앨범은 리더 지드래곤이 6곡 모두를 작사 작곡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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