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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 불편한 세상을 향한…도발적‘무지개똥’세례
안창홍

1년여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그렸던 작품들이 전시장으로 실려나가 작업실이 휑하다. 그간의 스트레스와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걸 보니 전시 준비가 끝나긴 끝난 모양이다. 스물일곱번째 치르는 개인전이건만 고달픈 준비과정과 개막을 기다리는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후배가 묻는다. “이번 개인전에 자화상은 안 내세요?”라고. 그제서야 나는 “아뿔사, 자화상!”하고 탄식했다. 자화상을 빠뜨린 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개인전 때마다 자화상을 발표했으니 후배가 물어온 건 지극히 당연하다. 돌이켜 보면 이번 전시 준비과정에선 자화상을 그려야 할 만큼 자아가 부대끼거나, 곤경에 처한 일이 별반 없었다.

미술사 속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남겼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리고 있다. 나 또한 자화상을 심심찮게 그리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화가들마다 자화상을 그리는 의미가 다르겠으나 나는 정신적으로 힘겨울 때, 마음이 흔들릴 때, 분노가 차오를 때, 고독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자화상을 그린다. 거울 속에서 이 쪽을 응시하는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보며 동공 속에 어른거리는 희미한 촛불 같은 영혼의 모습을 읽어내려 애쓴다. 

돌산 꼭대기에 한 마리 승냥이처럼 웅크린 채 똥을 누는 스스로를 그린 안창홍의 자화상 ‘화가의 똥’. 도발적인 착상과 돌산에 뿌려지고 있는 똥이 무지갯빛인 것이 흥미롭다. 인간의 위선을 역설적으로 비웃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그려가는 과정의 몰입을 통해 마음의 흔들림을 추스르고, 극복하고, 위안받고, 스스로 구원받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 자화상은 대부분 비장하고 고독하고 우울하다. 그런데 지면에 소개한 자화상 ‘화가의 똥’(1999년작)은 예외다. 수정 유리알같이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돌산 꼭대기에 앉아 똥을 싸는 내 모습을 그렸다.

한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승냥이처럼 웅크린 채 쾌변을 즐기는데 항문에서 쏟아지는 똥은 무지개색이다. 다시 말해 무지개똥을 싸고 있는 것이다. 이 괴이한 자화상은 몇 년에 걸쳐 여러 평론가들이 분석했다. 그 중 평론가 박신의(경희대 교수) 씨는 “그가 돌산의 정상에 올라가 똥을 싼다. 표독스럽고 기묘한 표정을 하곤, 물감 같은 똥을 짜낸다. 

안창홍의 신작 ‘무례한 복돌이’. 감추고자 하는 속내와 욕망을 유머러스하게 낚아챈 발상이 돋보인다.                                                                                                             [사진제공=가나아트]

‘화가의 똥’은 물감이고, 무지갯빛 환상이며, 향기 없는 떡이다. 예술은 화가의 똥으로 빚은 떡시루이며, 청결의 위선이며, 탐욕의 보호구역이다. 똥은 모순과 역설의 의미체이며, 안창홍이 던지는 예의 화려한 비웃음의 물체라 할 것이다.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재빠르고 경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내려붓는 똥이다. 예술이여, 아름다운 똥의 세례를 받을지어다”라고 썼다.

암튼, 이 자화상이 완성됐을 쯤 나는 아랫도리에 가래톳이 서서 며칠을 어기적어기적 걸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라! 거울 앞에서 발가벗은 채 그림 속의 모습처럼 웅크린 포즈로 발가락에 온 힘을 주고 몇 분이나 버틸 수 있겠는가? 아, 고달픈 화가의 길이여!  <글ㆍ그림=안창홍(화가)>



▶안창홍(58)은 강렬하고 날 선 ‘마이너리티 감성’으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거침없이 비판해온 화가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국내 제도권 미술계와는 아랑곳 없이, 또 유행에도 편승하지 않은 채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와 오히려 화단과 애호가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그의 그림은 불편하고 엽기적이다. 그런데도 묘한 흡인력을 지닌다. 슬프고 절망적이지만 한편으론 아름답다.

평범한 이들의 벗은 몸을 그리고 있는 작가는 ‘불편한 진실’이란 타이틀로 갖는 개인전(평창동 가나아트센터 3월 6일까지)에 화려함과 비참함, 숭고함으로 뒤엉킨 잿빛 누드와 원색의 누드를 다양하게 출품했다. 전통적 코드를 거부한 누드 연작은 개인 삶의 체취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진짜 모습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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