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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준 칼럼] 폴 고이도스..가을에 피는 꽃이 더 기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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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타를 친 몇 안되는 골퍼중 한명인 폴 고이도스. [사진=PGA투어]


지난 2008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두 사내가 파3 17번홀에 섰다.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대회 우승을 놓고 플레이 오프(연장전)를 치르는 중이다. 한 선수는 가르시아다. 그렇다. 바로 그 ‘버르장머리 없는’ 세르히오 가르시아. 다른 한 선수는? 별로 이름 없는 선수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저 선수가 가르시아 콧대를 꺾어줬으면 좋겠다.

동전을 던져 순서를 정한다. 가르시아가 아닌 그가 먼저 티 샷을 한다. 그가 친 볼이 멋지게 날아서 홀 바로 옆에 꽂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의 볼은 패널티 구역(당시로는 해저드)으로 ‘퐁당’ 한다. 그렇게 2008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컵은 악당 품에 들어간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못 외우면 한 대 맞던 시절에 외운 시라 그런지 한 자도 안 틀리고 생각난다. 누구 시인지 기어코 물어보는 독자가 있다면 나쁜 독자다. 설마 뱁새 김용준 프로가 그걸 모르랴! 흠흠! 원숙한 아름다움을 국화 꽃에 비유한 시라는 것을 그 때는 듣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실은 몰랐다. 가슴으로는 말이다. 30년도 더 지나 이 구절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딱 들어맞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바로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뛰고 있는 폴 고이도스(Paul Goydos)다. 가르시아에게 아깝게 패한 그가 바로 고이도스다. 참, 뱁새 김용준 프로가 골프 방송 해설위원이 된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그래도 ‘골프채널코리아(IB스포츠)’에서 해설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다시 하는 것은 결코 혼자 좋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진짜 도움이 된다. PGA 시니어 프로 스윙을 보는 것 말이다. 보고만 있어도 골프가 느는 느낌이다. 젊은 엘리트 골퍼의 폭발적 샷을 볼 때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장담한다. 앗! 얘기가 어쩌다 그쪽으로 흘러 갔지? 고이도스 얘기로 돌아가자. 해설을 하면서 유난히 묵묵히 플레이하는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파3 홀에서 기가 막힌 티샷으로 핀에 바싹 붙여도 좋다는 내색도 별로 안 한다. 반대로 대여섯 발짝짜리 퍼팅이 살짝 빗나가도 마찬가지다. 탄식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매번 리더 보드 상단에 이름은 올라온다. 저 선수는 도대체 누구야? 궁금해졌다. 이름을 모른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고 싶어졌다는 얘기다. 기록을 찾아보다가 눈이 커졌다. 그가 챔피언스투어에서 매년 1승 이상씩 거두고 있는 것 아닌가? 고이도스가 PGA 챔피언스투어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그 해 1승. 2016년 1승 추가. 다시 2017년 1승. 지난해에는 2승을 거뒀다.

이 정도면 젊은 시절 PGA 투어에서도 한 가락 했을 법하지 않은가? 그런데 웬걸? 단 2승 뿐이다. 스물아홉살에 PGA 투어 시드를 처음 받은 뒤 21년간이나 뛰었는데 말이다. 물론 어디 2승은 쉬운가? 스타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덜 화려하다는 얘기다. 이거 얘기거리가 되기엔 약간 부족한데 하고 마음을 접으려는 순간 내 동공은 활짝 열렸다. 그가 59타를 기록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PGA투어에서 59타를 기록한 선수는 지금까지 단 9명. 말이 쉬워서 59타지 68타가 최고 기록인 내게는 꿈 같은 숫자다. ‘제법 잘 치는 척 뻐기더니 겨우 68타가 최고야’라고 비웃지 말기 바란다. 어디까지나 풀 백 티에서 공식 대회 규칙에 따라 친 점수다. 무의미 하지만 화이트 티에서 아마추어 때 친 최고 기록은 훨씬 높다.

그래도 59타에는 발끝에도 못 미친다. 대한민국 대표 ‘촌놈’ ‘늦깎이 골퍼’ ‘뱁새’ 주제에 이만하면 아주 형편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틈만 나면 얘기가 다른 쪽으로 샌다. 다시 고이도스 얘기다. 그는 2010년 존 디어 클래식 1라운드에서 59타를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59타를 기록한 선수는 단 네 명뿐이었다. 그를 포함해서. 그 뒤로 다섯 명이 더 늘었다. 하지만 총 아홉 명 중에 고이도스가 가장 나이가 많다. 마흔 여섯 살 때 59타를 친 것이다.

믿어지는가? 마흔 여섯살에 잭 니클라우스가 마스터스를 우승했을 때 골프 세상은 얼마나 놀랐는지. 노장의 승리라고 말이다. 폴 고이도스가 엘리트 코스로만 걸었다면 국화 꽃을 들먹이지도 않는다. 그가 골프를 일찍 배우기는 했다. 어려서 입문해 고교 시절 지역 대회에서 우승도 한 모양이다. 제법 잘 친 덕에 장학생으로 대학에도 들어가고. 그런데 곧바로 프로로 전향하지 않았다. 내 짐작엔 조금 부족한 기량과 가정 형편 탓이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 전공(금융)을 밑천으로 ‘기간제 교사’로 수 년간 일했다. 그런데 끓는 피를 참을 수 없었을까? ‘끓는 피’라니? 아까는 차분한 그의 경기 스타일을 칭찬하더니. 뱁새 글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 투성이다. 하여간 그는 스물 일곱 살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1991년과 1992년 벤 호건 투어를 뛴 것이다. 웹 닷컴 투어의 전신 말이다.

그러다 이듬해 PGA 큐스쿨(PGA 시드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회로 흔히 지옥 같은 대회라고 한다)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대로 묵묵히 3년을 도전한 끝에 지난 1996년 마침내 첫 우승을 거뒀다.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다. 그런데 다음 우승은 무려 11년을 기다려야 했다. 지난 2007년 소니 오픈까지. 이 무렵 그의 샷 감이 절정이었나 보다. 글을 시작할 때 애기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연장전에 나간 것이 바로 그 다음해다.
너무나 아쉬운 패배 뒤에 폴 고이도스가 권토중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악재가 겹친다. 팔목 수술을 하고 부비강(두개골에서 코와 연결되는 부분) 수술도 하고.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채를 잡았다. 그렇게 만들어 낸 것이 지난 2010년 기적 같은 59타 기록이다. 파71 코스에서 버디 12개에 파 6개.

그는 175cm로 그리 큰 키도 아니다. 드라이버 비거리도 260야드로 대단한 축에 들지도 않고. 그런데도 뚜벅뚜벅 잘도 버디를 만들어 낸다. 낮은 탄도 어프러치를 주로 써서 끈질기게 파도 잘 지켜 내고. 나는 그가 올해도 꼭 한 번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폴 고이도스를 보고 싶다면 어느 방송을 봐야 하는지는 이제 다 알 것으로 믿는다. 특히 누가 해설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도. 김용준 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KPGA 프로 & KPGA 경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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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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