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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프장의 발견] 페럼클럽-국제 대회도 치를 퍼블릭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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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럼클럽 서코스 18번홀.


‘한국 골프장의 발견’ 시리즈는 골프 문화를 깊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골프장 탐사 작업입니다. 단순 기사형식을 넘어 한국 골프코스들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 봅니다. 이 컨텐츠는 골프장의 협찬 없이 직접 경험하여 작성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2015년 마지막 날, 안신애 선수가 4번째 연장 끝에 우승하던 장면 기억하시나요? 그 우승 퍼트 장면과 함께 <페럼클럽>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안신애 선수의 자태처럼 고운 모습의 페럼클럽을 좋아하는 분들 또한 많습니다.

짜릿한 반전의 토너먼트 형 코스
그날 안신애 선수의 우승을 결정지은 것은 마지막 파5홀 3온 뒤의 버디 퍼트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마지막 홀이, PGA나 유러피언 투어 등의 남자프로대회 결승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의 한 타 차 마지막 홀 파5 승부였다면, 선수들은 어떤 공략을 선택할까요? 중간의 개울을 넘기는 드라이버 티샷으로 이글을 노리는 승부수를 던질까요, 아니면 안전하게 우드 티샷으로 3온 공략을 선택할까요…… 그리고 대회 주최측은, 마지막 날 18번 홀 세팅을 605야드 최대 길이로 할까요. 아니면 일부러 짧게 할까요……

페럼클럽은 이런 짜릿한 반전 드라마도 만들 수 있는 코스입니다. 코스 자체만으로 보면 PGA 급 국제규모 토너먼트 세팅이 가능하면서, 누구나 플레이 할 수 있는 퍼블릭 코스입니다.

철(鐵) 회사가 만든 ‘고품질 퍼블릭’
페럼클럽은 2014년 ‘프리미엄 골프 클럽’을 선언하며 퍼블릭 골프장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철강으로 유명한 동국제강그룹이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와 브랜드를 함께한 ‘페럼(Ferrum)’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철(鐵)’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골프장이 앉은 땅은 여주 평야가 펼쳐지다가 완만한 구릉이 빚어진 곳입니다. 여주 점동면의 낮은 동산 기슭의 34만평 너른 땅. 동국제강그룹은 이곳에 회원제 골프장 27홀을 앉히려다가, 18홀 고급 퍼블릭 코스로 계획을 변경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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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럼클럽 부근 위성 사진.


이 골프장은 스스로 ‘명품 퍼블릭’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들어 회원제 골프장보다 더 좋은 퍼블릭 골프장을 세우는 골프장 업계의 흐름을 맨 앞에서 이끄는 명실상부한 ‘고품질 퍼블릭 코스’가 페럼클럽입니다.

‘신시아 다이’의 섬세한 설계
이 코스의 설계는 미국 <다이 디자인 그룹(DDG)>이 맡아 ‘신시아 다이 맥그레이(Cynthia Dye Mcgrey)’가 직접 설계했다 합니다. DDG는 근대 골프코스 설계의 ‘3대 거장’으로 칭송되는 ‘피트 다이(Pete Dye)’가 세운 골프코스 설계 전문회사입니다. 피트 다이는 미국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개최장소로 유명한 와 ‘US오픈’이 열린 <휘슬링 스트레이츠> 등 까다롭고 전설적인 코스를 많이 설계했고, 그가 세운 DDG에서 자녀들과 함께 세계의 수많은 코스들을 설계했습니다. ‘한국오픈’이 열리는 천안의 <우정힐스CC>도 그의 아들 ‘페리 다이’가 설계했으며, 이 페럼클럽을 맡은 신시아 다이는 그의 막내딸이라고 합니다.(이 부분은 골프 설계가들에 대한 공부가 깊은 남화영 기자의 '골프상식백과사전'을 참조했습니다.)

신시아 다이는 피트 다이의 까다로운 설계철학을 이어받은 위에 여성적인 섬세함과 우아함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충북 청원의 <이븐데일> 코스도 그녀가 설계했는데 이븐데일이 오밀조밀한 계곡을 넘나드는 산중코스인데 견주어 이 <페럼클럽>은 완만한 구릉의 여유로운 특성을 우아한 감성으로 살려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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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1번홀(페럼클럽 홈페이지 사진).


구력이 깊은 우리나라 골퍼들 가운데는 ‘요즘 만든 코스들은 너무 험악하게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지요. 이 <페럼클럽>은 티잉 그라운드에서부터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들고 세컨샷 지점에서도 답답한 느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린 쪽으로 볼을 보내면서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시각적으로는 우아하지만 변별력에서 까다로운’ 특징을 불어넣은, 설계자의 의도 때문일 듯합니다.

‘안도 다다오’의 인상적인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는 ‘랜드마크 급’입니다. 먼 우주 너머에서 날아와 앉은 외계 문명의 비행체 같은 형태는 포스트 모던 예술품처럼 전위적이고 세련됩니다. ‘철(Ferrum)’이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하여 첨단성과 영원불변성을 드러내려는 모습이라는 설명인데, 강철 재료의 직선감을 부드러운 원형으로 담아내어 코스의 푸른 자연에 원만하게 녹여 박은 모습입니다. 진입로에서 먼저 보이는 건물 뒷면은 외계 우주선 같은 신비로운 모습이고 코스를 향한 앞면은 전면 유리로 열려있어 골프장 전체의 자연을 끌어안고 조망합니다. 퍼블릭 코스의 특성에 맞추어 클럽하우스의 규모가 상당히 큰데도 시각적인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히 조화되어, 빈틈없는 구도로 단아해 보입니다. 드물게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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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페럼클럽 홈페이지 사진).


이 건물은 일본 국적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입니다. 그는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세계 4대 건축가’라 하지요. ‘세계에서 콘크리트를 가장 섹시하게 다루는 건축가’라는 평도 듣는다 합니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건물에서도 많이 보이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과 건축 방식이 그의 작품에서 비롯되어 따른 것입니다. 그가 빚은 작품의 묵상적인 분위기와 ‘빛’과 ‘물’ 등 자연을 받아들이는 생각을 좋아하는 팬들이 전세계에 많지요. 이 건물은 안도 다다오가 유일하게 설계한 골프장 클럽하우스라고 합니다. 겉모습은 물론 내부 공간의 해석과 처리 또한 개성적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파노라마 스타트’ 광장
클럽하우스의 드넓은 창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바라보이는 골프장 모습은 탁월하게 아름답습니다. 풍경을 건축물 안으로 넓고 깊게 끌어들인 모습이지요. 이와 비슷하게 파노라마 느낌이 나는 <아시아나CC> 클럽하우스가 장군처럼 오연하게 내려다보는 요새(要塞) 전망대의 풍경이라면, 페럼클럽의 클럽하우스 조망은 좀더 겸손한 눈높이에서 자연과 드라마틱하게 동화되는 느낌입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를 바라보며 빚어지는 골퍼의 느낌과 생각에서부터 페럼클럽 라운드의 드라마는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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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조망(페럼클럽 홈페이지 캡처).


클럽하우스 앞 광장에 덤덤하게 서 있는 커다란 소나무와 그 주변 몇 그루 팽나무도 인상적입니다. 나무들을 많이 심어 놓은 게 아닌데 이 몇 그루 자태 고운 나무들이 클럽하우스와 골프코스가 만나는 넓은 공간을 꽉 잡아주는 자리에 서있지요. 제주도에서 팽나무를 많이 보았는데 그곳 분들 말로는 새들이 팽나무 열매를 좋아해서 새가 많이 모여든다 하더군요. 이곳에서 팽나무에 날아드는 새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서늘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듭니다.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이 잘 생긴 소나무 팽나무들과 인사를 나눠보는 것도 페럼클럽에서 즐기는 골프의 멋 가운데 하나이겠습니다.

변수 많은 '빅 게임' 코스
<페럼클럽>은 개장하면서부터 ‘회원제 명문골프장 못지 않은 퍼블릭 코스’로 주목 받았습니다. 한국여자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인 <이수그룹 KLPGA챔피언십>이 2015년 이곳에서 열려 ‘메이저 토너먼트 개최 코스’의 이름을 빠르게 거머쥐었고 골프다이제스트 잡지가 선정한 ‘2016~2017 베스트 뉴코스’ 2군데 중 하나로, 서울경제골프매거진이 선정한 ‘2016-2017 뉴코스’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도 KLPGA에서 주최하는 대회 2개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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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럼클럽 제원.


전체 길이가 7,235야드이니 여자 프로대회는 물론, 남자 PGA급 토너먼트 세팅도 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길이뿐 아니라 코스 안에 깃든 게임 구성의 드라마가 흥미롭습니다. 라운드를 시작해서 코스 모양에 따른 도전과 선택의 변화와 난이도의 강중약을 거듭하다가 후반에 들어가 승부를 결정짓는 몇 개 홀의 드라마가 토너먼트 형으로 적합해 보입니다. 특히 16번 홀(서코스 7번) 아일랜드 그린은 미국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의 17번 홀처럼 재미있는 변수가 발생하도록 세팅할 수도 있고, 18번 홀은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 핀 위치 세팅에 따라 두세 타 차 승부가 뒤집힐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달걀봉 아래, 완만하고 평화로우나…
이 코스는 눈으로 보기에는 완만하고 평화롭습니다. 여주의 넓은 평야와 높이 차이가 별로 없는 완만한 구릉에 펼쳐진 코스는 넓고 편안해 보입니다. 가장 낮은 곳이 해발 70미터이고 가장 높은 곳이 135미터이며 그 사이가 멀고 완만하여 급한 고저 차가 없습니다. 뒷산인 ‘달걀봉’은 높이가 해발 200미터이고 마주 바라보이는 산 봉우리들도 낮고 그윽해서 골프장이 들어서기는 최적이라 할 자리입니다. 전체 홀을 남북방향으로 배치해서 햇볕이 많이 들고 아침 저녁 햇볕 방향으로 인한 플레이 지장이 없도록 한 것도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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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4번 홀.


전체적으로 티샷 위치에서의 시야가 넓고 편안합니다. 고요한 연못과 이국적인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져 눈이 시원하지요. 후반 홀의 서코스는 그린이 물위에 떠 있는 아일랜드 홀과 페어웨이가 좁은 홀 등을 배치해서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나는 한편, 눈으로 보는 흐름은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우아합니다.

들어가 쳐 보면 평화롭지 않다
반면에 대개의 홀이 샷의 비거리와 정확성, 그리고 전략에 따라 공이 떨어질 위치를 선택해야 하는 도전을 부릅니다. 언뜻 보면 편안하지만 자세히 보면 도전의 욕구가 샘솟아 일어나는 거지요. 그린으로 가는 어프로치 샷에 있어서도 도전과 선택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안전한 쪽으로 갈 것인가 장애 요소를 감수하고 핀을 직접 노릴 것인가…… 안전한 쪽으로 가면 섬세한 그린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린이 결코 쉽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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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코스 6번 홀.


이 코스에는 긴 홀과 짧은 홀, 핀이 보이는 홀과 도그렉 형 블라인드 홀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옆으로 긴 그린과 세로로 긴 그린 등 매 홀마다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서 한 홀 한 홀의 개성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코스의 겉모습은 평화로워서 위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벙커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잘 빠지게 되고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페널티 구역으로도 공이 빠지게 되더군요. 유혹의 함정을 절묘하게 파 놓은 것이겠습니다. 물론 함정을 넘는 도전적인 샷이 성공하면 확실하게 상을 받지만 실수를 하면 스코어가 올라가고 거기서 다시 만용을 부리면 더욱 참혹한 결과가 빚어지기 쉽습니다.

18개의 ‘유혹적 주관식’
이 코스 설계자인 ‘신시아 다이’는 ‘피트 다이’ 가문의 설계철학대로 코스 곳곳에 유혹과 함정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파를 지키기 어렵다’는 게 다이 가문 코스의 특징이라지요. 이곳에서의 골프는 18개의 까다로운 주관식 문제를 풀어나가는 셈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매 홀 출제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플레이에 들어가는 것이 재미 있겠습니다. 다섯 단계의 티잉 그라운드가 있어서 플레이어의 실력이 어떻든 14개의 클럽을 사용하여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내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 무난하게 라운드 할 수 있는 ‘B플랜’의 답안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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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0번 홀.


그린 위의 핀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티잉 그라운드 위치를 어디로 조정하느냐에 따라, 날마다 전혀 다른 표정으로 변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코스가 편안하게 보이는데도 스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신시아 다이의 함정에 이미 빠진 것입니다. 도전하여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을 상상하게 하며 번번히 유혹하는 - 페럼클럽은 샷 밸류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코스입니다.

착시인가 미묘한 것인가
페어웨이가 평탄한 것 같지만 물결치듯 미묘한 굴곡이 있는 곳이 있고 티잉 그라운드에서의 방향을 잡는 데 혼동이 생기는 곳도 있습니다. 그린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어서 생각과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더군요.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페럼클럽에 대한 경험 평가가 일부 골퍼들 사이에서 극단적이기도 합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의 착시는 설계자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고 페어웨이의 언듈레이션이 빚는 착시는 티샷을 잘 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런 한편 그린에서의 미묘한 변화는 플레이어를 끝까지 시험에 들게 합니다. 크기도 모양도 적당하고 아름다운 그린의 우아한 곡선에서 많은 사연이 빚어집니다.

그것이 ‘착시’인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할 고차원의 의도적인 브레이크인지는 저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곳에서는 그린에서 많은 승부가 결정되고, 그것이 게임의 일부로서 매우 재미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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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코스 5번 홀 그린(페럼클럽 홈페이지 사진).


‘회원제 명문’ 버금가는 잔디 관리
퍼블릭 코스인 이곳의 그린은 웬만한 회원제 골프장보다 빠릅니다. 스팀프미터 계측 기준으로3.0미터 이상일 때가 많으며 관리상의 목표 스피드는 3.7미터(PGA 메이저 대회 수준이죠)라고 알려집니다. 안양CC, 트리니티클럽 등 초명문 골프장에나 설치된 ‘서브에어 시스템’을 갖추어, 그린 하부 공기 통풍 제습을 제어하고 있다 합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에도 스피드만 약간 떨어졌을 뿐 나무랄 데 없는 상태를 유지하더군요.

페어웨이와 러프의 관리도 회원제 골프장에 견주어 뒤지지 않습니다. 일부 ‘초명문’ 코스에 비해서는 약간 덜할 수 있으나 크게 빠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페어웨이 잔디는 흔히들 ‘조선잔디’라고 부르는 ‘안양중지’ 종인데 촘촘하고 짧게 관리되어 있어서 양잔디 같은 느낌이 듭니다. 늦가을에도 착색제를 살짝 뿌려 관리하니 정말 양잔디 같더군요.

러프는 ‘켄터키 블루그래스’인데 평소에도 길게 유지하는 편이지만 토너먼트가 열릴 때는 7~8mm 이상으로 길게 관리해서 잘 친 샷과 못 친 샷의 변별성을 높인다고 합니다. 만약에 남자 대회가 이곳에서 열릴 경우, A,B,C 러프를 분명히 해서 페어웨이를 더 좁혀 세팅하면, (그린을 좀더 딱딱하게 하고 파5홀 하나 정도는 파4로 해서 파71로 세팅할 수도 있겠죠. 국제 대회를 치르려면 지원시설 등도 보완해야 하겠지만) 코스 자체로만 보면, 국제적인 메이저급 남자 프로대회도 흥미롭게 치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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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5번 홀.


한국 자연을 살린 이국적 조경
산을 깎아서 코스를 만드는 우리나라의 골프장들은 태생적으로 ‘환경 훼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자연의 흐름을 덜 손상시키고, 원래의 자연 상태 못지 않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흐르게 하는 것이 좋은 골프장이 실천해야 할 덕목이겠지요. 설계자인 신시아 다이는 "자연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 시냇물, 바위, 숲 등을 원래 그 자리에 살려 남겼다고 합니다.

코스 안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은근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자작나무 숲이 있고, 이팝나무 군락도 있으며, 이따금 계수나무가 귀족적인 모습으로 서 있군요. 곧고 높게 자란 리기다소나무 숲이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내기도 하고 느티나무 숲과 억새 밭도 은근하게 숨어 있습니다. 원래의 자연 숲에 조경수 수천 그루를 보완해서 심었다고 하는데, 여주 땅의 너그러운 한국 자연에 펼쳐놓은 다소 이국적인 조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고아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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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3번 홀 주변 억새밭.


친환경, 친고객의 높은 값어치
또한 이 골프장은 ‘친환경’으로 관리한다는군요. 주변 지역 주민의 물 사용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물을 별도로 끌어다 쓰며 물에 약품 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퍼블릭 골프장들이 흔히 팀과 팀 사이 7분 간격으로 티오프 하는 것과 달리 <페럼클럽>은 8분 간격으로 운영됩니다. 낮이 긴 성수기에도 하루 최대 72팀까지만 예약을 받는다 합니다. 그러므로 팀간 진행 정체로 플레이가 지연되는 일 없이 여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당연히 이용 요금이 퍼블릭 코스 중에서는 비싼 편인데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지하 주차장도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플레이어의 차량을 지하 주차장에 세우게 되어 있어서 특히 한여름에 플레이를 마치고 나올 때 만족스럽습니다. 주차 공간의 차간 간격도 넓어서 편리하더군요.

덧붙임 - 스토리는 비로소 시작된 것
이처럼 완성도 높은 골프장이 대중제 퍼블릭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입니다. 퍼블릭 코스이면서도 높은 가치 기준을 지켜나가는 것도 높이 살 만합니다. 그런 한편 이 골프장은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가진 ‘미완의 명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코스는 많은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홀들은 극적인 승부를 불러 일으키고 어떤 나무와 숲은 기억에 오래 남을 듯 인상적입니다. 온화하면서도 유혹적이고 완만하면서도 굽이치는 모습과 구성이 드라마틱한 ‘평화로운듯한 전쟁터’ 코스이지요.

“토너먼트 코스로서 전설을 쌓아 갈 수 있는” 코스라 할까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정규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니 코스의 토너먼트 역사가 점점 더 깊어지겠습니다만, 남자 프로의 국내 메이저 급 대회도 이곳에서 열린다면 코스의 진정한 가치가 더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한 역사와 스토리가 쌓여 가며 진정하게 ‘명품코스’가 될만한 곳이라 기대해 봅니다.

몇 가지 소소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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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6번 홀.


16번 홀의 ‘야심’과 가능성
16번 홀은 설계자의 야심이 한껏 드러난 곳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파3홀로 대각선 방향 타원의 아일랜드 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긴 홀은 아니지만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면 그린이 실제 크기보다 좁아 보여서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린 왼편 뒤쪽으로, 이 골프장이 자랑하는 클럽하우스가 웅장한 전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시각적으로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이라 할 수 있고, 게임의 드라마로 치면 마지막 3개 홀의 승부수가 시작되는 곳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핀 위치와 그린 주변 등의 세팅을 까다롭게 해서 잘못 친 샷에 대한 변별력을 강화하면 미국 PGA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의 17번 홀처럼 승부의 다양한 변수가 나올 수도 있는 홀이라 할까요. 다만 갤러리들의 시선 높이에서 그린이 잘 보이지 않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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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코스 17번 홀 '얼굴바위'.


17번 ‘얼굴바위’
17번 홀을 플레이 할 때는 골퍼들의 심리상태가 저마다 극명하게 다를 것입니다. 득의양양한 사람, 실의에 빠진 사람, 마지막 반전의 복수를 노리는 사람……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17번 홀 페어웨이 왼편에 있는 자연 바위를 ‘얼굴바위’라고 부른다 합니다. ‘상대방 얼굴 모습으로 보이는 바위’라는 것이니 상대방에게는 나 자신의 얼굴로 보이는 거겠죠. 가만히 보니 그런 것도 같고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어 붙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플레이 할 때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비교해 보시죠. 웃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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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존 장애인 합창단 공연(브리지스톤골프 자선행사).


클럽하우스 연회장에 대한 기우.
‘브리지스톤골프(석교상사)’에서 매년 여는 자선기금 마련 골프대회가 2018년 가을 이곳에서 열려 참석했었습니다. 골프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 대식당에서 자선 연회가 진행되었는데 행사 시작 공연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행사에 매년 큰 자선 기부를 하고 있는 <골프존>이 창단한 장애인합창단이 노래를 했는데 화음이 고울뿐더러 합창단 한명 한명의 너무나 진지한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좀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리는 뒤편이라 잘 보이지 않더군요. 대식당 배치가 좁고 길게 되어 있어서 뒷자리에서 무대까지가 너무 멀었습니다.

클럽하우스를 설계한 안도 다다오가 ‘집단’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두는 건축가이기 때문인지, 이 클럽하우스의 대식당은 소규모 모임을 염두에 둔 구조인 듯합니다. 코스는 프로골프 토너먼트에 적합한 모습인데 프로암 행사를 치를만한 장소인 대식당은 길고 좁은 구조임을 염려하는 것은 비약적인 ‘기우(杞憂)’이겠지요? (위에서 자선을 행하는 회사들을 실명으로 밝히는 이유는 이들이 실천하는 ‘자선’과 ‘기부’의 문화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글과 사진 류석무
글쓴이는 '스토리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하는 일이 골프에도 다소 관계를 맺고 있어서 골프 상식에 밝고, 업무상 골프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좀더 생각과 목적이 있는 골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도화도주’라는 필명으로 골프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컨텐츠는 계절마다 업데이트하여 재발행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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