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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새신랑 ‘빅 벤’을 축하해야 하는 숨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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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임진한 프로의 '터닝포인트' 표지.


# 어떤 회고
‘안병훈은 지금보다 어렸을 때 한 번 큰 미스샷이 나오면 아예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탁구스타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근성이 강했던 것이다. 근성이 없으면 화도 안 낸다. 최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골프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어느 정도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이상은 한국에서 최고의 교습가로 평가받는 임진한 프로가 자신의 책 ‘임진한의 터닝포인트’에서 한때 자신이 가르쳤던 안병훈(27)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놀라운 것은 안병훈이 2009년 US아마 우승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러니까 많은 전문가들이 안병훈이 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던 시절에도 임 프로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내가 가르친 선수 중 재능은 최고였다.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 반드시 재기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국 골프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가 안병훈이니 이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 안병훈의 골프입문
안병훈이 1991년생이니 1990년대 중반쯤이었을 게다. 화제의 한중탁구커플로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된 안재형-자오즈민의 결혼 후 자오즈민은 한국에서 살았다. 아이도 낳아 기르면서 속이 좀 상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유명한 탁구스타였는데, 자신은 말도 잘 안 통하는 한국에서 아이한테만 매달려 있어야 하니 말이다. 실업팀 지도자였던 남편은 평일에는 노상 바빴는데, 마침 막 배우기 시작한 골프 때문에 주말에도 자주 집을 비웠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이와 씨름하는데 최소한 주말에는 아빠가 아들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젊은 아빠 안재형은 할 수 없이 골프연습장을 갈 때마다 안병훈을 데리고 갔다. 이것이 세계적인 탁구커플에서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 미국을 놀래킨 고등학생
한국 초등학교에서 골프를 할 때 안병훈은 또래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다. 인상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탁구로 세계적인 선수가 된 안재형-자오즈민 부부는 성공의 비결을 알았다. “탁구도 마찬가지지만, 골프도 어차피 성인이 됐을 때 잘 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주니어 때 눈앞의 성적보다는 스스로 골프를 즐기고, 또 또래 평범한 아이들처럼 공부도 좀 해야 합니다. 한국은 그런 여건이 안 됐지요.” 안재형은 한국탁구계의 좋은 자리를 박차고,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7년간의 골프대디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안병훈(영어이름이 'Ben', 별명은 덩치가 커서 '빅 벤')은 잘 하기는 했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안병훈보다 성적이 좋은 미국이나 한국계 선수는 많았다. 그러다 2009년 US아마에서 역대 최연소로 깜짝 우승을 달성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보다 빨랐으니,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놀랐다. 지금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저스틴 토마스가 US아마 우승자 자격으로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안병훈에게 “나한테 캐디를 맡겨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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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안병훈이 한국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안재형, 안병훈, 자오즈민. 안재형 감독은 지금도 이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 중요한 것은 ‘빅 벤은 우상향 타입’이라는 사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후 US버클리로 진학한 안병훈은 슬럼프에 빠졌다. 대학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야말로 ‘원 히트 원더’로 끝나는 듯했다. 1학년을 마친 안병훈은 ‘어차피 프로에서 승부를 봐야한다’며 턴프로를 선언했고, 유럽2부투어로 향했다. US아마를 제패한 기대주가 미국도 아닌 유럽의 2부투어에서 프로로 첫 발을 내디디니 꽤 초라했다. 한국이나 미국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가 보는 유럽의 시골마을을 '안씨부자'가 함께 다니며 힘겨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겨냈다. 마치 주니어시절처럼 서서히, 시간과 비례해 성적을 끌어올렸다. 2012, 13년 유럽 2부투어 적응을 마쳤고, 2014년 첫 승을 거두며 1부투어로 올라섰다. 그리고 2015년 유러피언투어의 메이저대회인 BMW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을 달성했다. ‘빅 벤은 살아있고, 이제 시작이다’는 듯이. 이후 안병훈은 간간히 출전하는 미PGA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미국 2부투어를 거치지 않고 미PGA 1부로 진출했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고전하는 듯싶었지만 최근 3시즌 동안 계속해서 매년 개인최고성적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두 번이나 준우승을 차지하며 우승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예고했다.

# 결혼은 새로운 출발
24살까지 안병훈에게 안재형은 아버지이자, 매니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치이기도 했다. 똑똑하고, 체격조건이 좋고, 골프재능도 뛰어났지만 멘탈이 흔들릴 때가 많았는데 이를 아버지와 함께 이겨내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3년 전 독립한 후에는 여자친구가 투어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줬다. 아빠는 한국탁구로 돌아가 국가대표 감독 등 지도자생활을 했고, 엄마는 중국에서 사업으로 제법 성공했다. 그리고 손자를 위해 미국집에 머물던 친할머니도 최근 한국으로 돌아갔다. 안병훈의 결혼 때문이다. 지난 12월 8일 안병훈은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여자인 최희재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부에 따르면 “병훈 씨는 다른 한국선수들과 달리 골프를 하는 걸, 투어를 다니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앞에 나와 있다. 안병훈의 골프가 탄탄한 이유이기도 하다. 안병훈은 결혼식장에서 정말이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하객들에게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쯤이면 정말이지 큰 축하를 보내고 싶어지는 신랑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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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8일 결혼식 사진 신부 최희재 씨는 안병훈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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