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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명품 드라이버 이야기

역사적으로 위대한 선수들이 아꼈던 클럽들은 우연히 주인과 만나게 된 경우가 많았다. 골프클럽을 수공업으로 생산하던 시기였으므로 골퍼들은 마음에 드는 클럽을 찾기 위해서 수 많은 클럽들을 시험해야 했다. 골프선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좋은 아내를 고르는 것과 마음에 드는 드라이버를 찾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운 좋게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을 손에 넣은 골퍼들은 그 클럽이 더 이상 못쓰게 될 때까지 아끼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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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니드와 그가 23년 동안 사용했던 드라이버. 그는 이 드라이버를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


샘 스니드의 5.5달러짜리 드라이버


1937년 샘 스니드는 PGA 투어에 막 데뷔한 루키였다. 1937년 LA오픈에 출전한 스니드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선배 헨리 피카드와 만났는데, 자신의 드라이브 샷이 불안정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스니드는 던롭의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샤프트가 휘청거려서 오른쪽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지는 볼이 나왔다. 스니드의 샷을 지켜보던 피카드는 자기 차에 실려있던 이제트(Izett)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쳐 보라고 했다. 그 드라이버를 쳐 본 스니드는 감격했다. 강하게 칠수록 볼이 더 똑바로 나갔다. 43인치 길이와 8도 로프트는 자기의 드라이버와 같았지만 샤프트가 훨씬 더 무겁고 강했다.

이제트 드라이버는 피카드에게는 너무 강한 샤프트이므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지만 스니드의 손에 들어가면서 보물로 변했다. 스니드는 5.5달러에 그 드라이버를 사서 23년 동안 사용하며 최장타자로 군림했다. PGA 82승 중에서 70승이 넘는 우승을 이 드라이버로 만들어냈다. 23년 동안 감나무 헤드를 몇 번이나 수리해서 사용했고 아무도 그 드라이버를 만지지 못하게 했다. 1959년 결국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하게 되자 윌슨에서 복제품을 만들어 주었지만 스니드의 드라이브 샷은 예전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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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호건을 구해준 맥그리거 드라이버.


바이런 넬슨과 벤 호건의 드라이버

바이런 넬슨도 좋은 드라이버를 고르기 위해서 애썼다. 1934년에 결혼 후 짧은 기간 동안 드라이버를 4개나 샀는데 다른 드라이버를 또 사겠다는 남편을 아내 루이지가 말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드라이버를 칠 지 모르든지 아니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모르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넬슨은 다음날 아침에 자기가 쓰던 스팔딩 드라이버를 가지고 프로 샵으로 갔다. 그 당시까지 드라이버의 페이스는 모두 평면으로 만들어졌는데 넬슨은 페이스가 곡면이 되도록 깎아줄 것을 주문했다. 히커리 샤프트가 스틸 샤프트로 바뀐 후 드라이버의 페이스를 곡면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곡선 페이스로 변한 드라이버의 성능은 우수했고 넬슨의 드라이브 샷은 놀랍게 개선되었다.

1940년 넬슨의 골프클럽 스폰서가 스팔딩에서 맥그리거로 교체되자 넬슨은 맥그리거에 페이스가 곡선인 드라이버 2개를 특별 주문하여 그 중 한 개를 벤 호건에게 선물했다. 동갑내기인 스니드와 넬슨이 번갈아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사이에 1930년에 프로가 된 벤 호건은 10년 동안 우승을 못하며 가난과 싸우고 있었다. 1940년 파인허스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대회에서 넬슨으로부터 43인치 길이의 맥그리거 드라이버를 선물 받은 호건은 첫 스윙을 하면서 그것이 특별한 물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첫 라운드 시합의 1번홀에서 호건의 새 드라이버가 장타를 뿜어내며 페어웨이의 가운데에 볼이 떨어졌다. 4라운드 내내 페어웨이를 놓치는 일이 없었던 호건이 드디어 프로 첫 우승을 하더니 3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2라운드 동안 34언더 파, 216홀 동안 그린을 두 번밖에 놓치지 않는 신의 경지와 같은 플레이를 했다. 넬슨이 선물한 드라이버는 호건을 구하는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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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클라우스의 43인치 드라이버. 언뜻 보기에도 짧아 보인다.


잭 니클라우스의 드라이버와 3번 우드


잭 니클라우스는 1976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같은 드라이버를 사용했는데, 그 모델은 맥그리거에서 생산한 43인치 10.5도 로프트의 감나무 헤드 945W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이버는 21년 전인 1955년에 생산된 골동품이었다. 그 동안 어디에 있다가 어떻게 니클라우스의 손에 들어갔는지 상황 설명이 없지만 명인의 눈에 명품이 발견된 것은 틀림없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드라이브 샷의 거리가 줄어들자 니클라우스의 클럽을 제작하던 장인들에게 샤프트의 길이를 늘리라고 제안했다. 여러 가지의 다른 길이를 시험하던 니클라우스는 겨우 0.5인치가 길어진 43.5인치로 늘려서 사용했다.

현재 투어 선수들 중에는 아직도 43인치의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아마추어 골퍼에게 판매되는 대부분의 드라이버 길이는 45.5인치 이상이다. 드라이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헤드 스피드가 빨라져서 거리를 내는 데 유리해 보이지만 헤드의 가운데에 정확히 맞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헤드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볼 스피드도 빨라져야 더 멀리칠 수 있는데 스윗 스팟에 맞지 않으면 볼 스피드는 오히려 더 느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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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클라우스가 15년 동안 사용한 맥그리거 945W 드라이버 헤드.


잭 니클라우스에게는 전설과 같은 3번 우드도 있었다. 니클라우스는 기본적으로퍼터나 클럽들을 바꾸기 싫어했다. 1958년부터 1995년까지 37년 동안 니클라우스의 백을 지켰던 3번 우드는 맥그리거에서 생산한 토미 아무어 693 모델이었다. 니클라우스는 그 3번 우드로 US 아마추어 2승, PGA 투어 73승, 메이저 18승을 이루는 업적을 세웠다.

그립은 가죽으로 되어있었는데 1983년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러워져서 교체해야 했다. 교체 후 느낌이 달라졌지만 계속 사용했다. 페이스 아래의 에지 부분이 닳아 둥그렇게 무뎌지면서 페어웨이 샷 때 공을 띠우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만 티샷을 할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클럽으로 남겨두었다. 1986년 마지막 메이저 우승인 마스터스 때 중요한 고비마다 가장 많은 티 샷을 했던 클럽도 그 3번 우드였다. 이 클럽은 USGA 박물관의 잭 니클라우스 방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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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스텐슨의 3번 우드. 그가 가장 믿고 치는 클럽이다.


스텐슨의 3번 우드


스웨덴의 헨릭 스텐슨이 사용하고 있는 캘러웨이 디아블로 3번 우드는 2008년에 개발된 모델이다. 헤드와 파란색 그라파로이 샤프트가 모두 당시의 제품이다. 기술의 변화가 빠른 현대 골프에서 10년 전 모델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데, 이 우드는 중고 시장에서 20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

이 우드는 스텐슨이 가장 믿고 티샷을 하는 클럽이며 페어웨이에서도 290야드를 칠 수 있다. 캘러웨이에서 새로운 모델을 보내올 때마다 테스트를 해 보지만 결국은 디아블로 모델로 돌아간다. 이 모델은 이베이에서도 중고품을 찾기 어려운 클럽이 되어 가는데, 동료 선수들은 스텐슨이 모조리 사들였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한다.

골프 클럽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오늘날에도 프로들은 마음에 드는 드라이버를 찾기 위해서 같은 모델을 수십 개나 테스트 하기도 한다. 같은 헤드와 같은 샤프트로 조립했어도 샷의 느낌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이버나 우드를 발견하면 평생 동안 그 클럽을 지켜도 좋을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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