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도승진의 복싱이야기] 유명우가 점찍은 '고교생 프로복서' 강종선
이미지중앙

제1회 휴먼크루즈 배틀 서바이벌 대회에서 MVP 상을 받은 강종선.


intro - 1대회 최우수선수

지난 22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그랜드볼룸에서 제2회 휴먼크루즈 배틀서바이벌 프로복싱이 TNR 프로모션과 버팔로 프로모션의 공동 주최로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난 3월 11일 열린 1회 대회 때 주목을 받았던 관장이 있었습니다.

“전일복싱 관장 누구야? 선수 제대로 키울 줄 아내.” 경기를 지켜보던 복싱인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바로 임홍진 관장(47)입니다.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들이 전일복싱 소속이었고, ‘요즘 같은 복싱 침체기에 저런 훌륭한 선수를 키운 관장이 있네’ 하며 시선을 끈 것입니다.

바로 이 제1회 대회 때 MVP에 오른 선수가 강종선 선수입니다. 17살로 광주금파공고에 재학중인 고등학생이죠. 어쨌든 이런 이유로 22일은 작정하고 이 선수의 경기를 직관했습니다.

복싱을 즐기는 고교 프로복서

흔히들 복싱은 타이밍의 예술이라 하죠. 하나의 펀치를 내기 위해선 완벽한 거리와 밸런스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타이밍을 잡는야 합니다. 그리고 이 타이밍의 예술을 아름답게 보이는 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듬입니다.

아직 어린 선수이지만 강종선의 복싱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순간순간 이동하는 짧고 빠른 스텝이 인상적이고, 특히 무리 없이 진행되는 연타가 부드러웠습니다. 위아래 공격을 이어가는 동작이 일품이었죠. 잽에 이은 원투 공격 그리고 레프트 훅과 어퍼의 정확한 타이밍. 그의 스텝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필요한 만큼 정확했습니다. 상대가 웅크리면 바로 사이드 스텝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해 공격의 타점을 찾습니다.

4라운드 슈퍼 밴텀급 경기. 상대선수는 2016년 라이트급 신왕 출신인 정주훈 선수(29). 프로 4번째 경기에서 강종선은 세 명의 심판으로부터 모두 40-36,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프로통산 4전전승에 1KO.

저는 강종선 선수가 정말 권투를 즐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기 전에 임홍진 관장과 강종선 선수를 만났습니다. 선수에게 “가장 잘하는 게 뭐니?” 하고 물어보니 바로 “사이드 스텝요”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사이드 스텝에 대한 회고

자신의 특기를 펀치가 아닌 스텝이라 말하는 복서는 참으로 이례적입니다. 제 경험상 복싱의 스텝은 일직 배울수록 훌륭합니다. 그리고 사이드 스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바로 전진철 선수입니다.

전진철은 저의 군산체육관과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지요. 저보다 일직 시작한 친구들의 기억에 의하면 전진철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복싱을 시작했지요. 체육관에서 합숙하며 자고 있으면 어린 전진철이 새벽에 아침 운동하러 나와 체육관 문을 두들기며 잠자던 선배들을 깨웠다고 합니다. 잠을 깬 선배들은 어린애를 혼낼 수도 없고 "진철아, 해가 뜨면 운동하러 오너라"하고 다독였죠.

전진철은 스텝이 정말 빠르고 좋았는데, 그리 많이 뛰지도 않으면서 상대 공격을 사이드 스텝으로 이리저리 피하면서 정광석화 같은 원투로 상대를 무너뜨렸죠. 국내 선수들은 그의 스피드를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기술이 그의 제자 국가대표 오연지(28 인천시청)에게 녹아들어 훌륭한 선수가 탄생했습니다.

대부분 복서들은 다혈질이고, 흥분도 잘하고, 상당히 공격적이죠. 그래서 상대가 맞부딪쳐 싸워주길 바라는데, 스텝이 좋고 잘 피하면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다 보면 신경질적으로 가드를 내리며 도발하기도 하죠. 그건 전진철에게는 큰 실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경기를 보고 있는데, 전진철이 계속 도망 다니는 것 같더니 상대선수가 순식간에 다운을 당했습니다. 심판이 슬립다운인지 펀치에 의한 다운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원투 KO 승이었습니다.

전진철을 비롯해 옛날 복서들은 대체로 스텝이 좋았습니다. 때로는 열악한 환경이 그리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35년 전 제가 운동했던 군산체육관은 매우 작은 체육관이었습니다. 샌드백 두 개에 링도 작아 스파링 때 도망갈 곳이 없었죠. 이 작은 곳에 선수들은 아주 많아서 같이 운동하면 샌드백은 치지도 못하고, 다들 쉐도우 복싱을 했습니다. 좁은 곳에서 서로 엉키다 보니 선배들 발을 밟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선배는 여지없이 후배 뒤통수에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좀 심하게 후배들을 괴롭히던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가 있으면 후배들이 다른 시간에 오려고 가방을 싸 들고 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니 선배들의 정글 숲속에서 요리조리 피해 가며 쉐도우 복싱을 했고, 사이드 스텝이 좋아졌죠.

강종선 선수는 복싱을 중3 때 시작해 3년째가 됐습니다. 임홍진 관장의 탁월한 트레이닝 덕분에 짧은 기간에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역시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복싱이라 스텝이 잘 돼있네요.

이미지중앙

전일복싱체육관의 임홍진 관장(왼쪽)과 강종선 선수.


프로모션이 탐내는 강종선

22일 경기 전 유명우 버팔로프로모션 대표에게 앞으로 키울 유망주가 누구냐고 물어봤습니다.
바로 강종선이라고 답하더군요. 강종선은 전설적인 세계챔프의 눈에 띈 것입니다.

대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의 열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도자 및 프로모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유명우 프로모터가 강종선을 낙점한 이유는 바로 스텝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각이 있으면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비가 좋아 안 맞는 권투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스텝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소질이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조기교육이 필요합니다.

복싱은 상대적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온 선수도 어떤 스타일을 만나면 잘 되고, 도 어떤 경우는 안 되곤 합니다. 그런데 스텝이 좋고 발이 빠르면 프로모터는 상대를 골라 전적을 만들며 상품으로 만들기가 용이합니다. 그리고 롱런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리듬감이 좋고 사이드 스텝이 좋은 선수는 김예준 선수 이후 강종선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임홍진 관장은 “강종선 선수의 강점은 승부근성이 강하고, 순발력과 펀치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간순간 이동하는 사이드 스텝이 일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앞으로 6라운드, 10라운드 선수로 성정하기 위해 체력과 펀치력을 키울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임홍진 관장, 왠지 믿음이 갑니다. 앞으로 그들의 경기를 보러 복싱 경기장으로 가는 날이 즐거워질 것 같습니다

* 글쓰이 도승진은 현직 치과의사입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누가치과의 원장이죠. 순천향대학병원 치주과의 외래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하루 한 번 복싱을 수련하는 복싱인입니다. 한국권투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