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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신태용 감독의 차별적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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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은 자신의 월드컵 계획에 이청용은 있지만, 이동국은 없음을 명확히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준호 기자] “소속팀 경기 출전이 선수 선발의 기준은 아니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해도 신태용 축구에 필요하면 뽑을 것이다.”

지난해 7월 신태용 감독(48)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에 오르며 했던 말이다. 부임 초기에 세운 선수 선발 원칙을 스스로 깨며 실패를 맞이했던 전임 감독들의 사례를 교훈 삼은 것이었다. 신 감독은 ‘(소속팀 경기 출전과 관계없이) 내 축구와 맞으면 뽑고, 맞지 않으면 뽑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을 내세우며 후에 자신을 옭아맬지도 모르는 ‘원칙’의 덫을 사전 차단했다.

당시 신태용 감독의 발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전임 감독들의 ‘일구이언(一口二言)’으로 분노가 쌓인 탓이었다. “그래, 필요하면 누구든 뽑아라. 대신 결과로 증명해라.” 당시의 여론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 명단 발표를 2주 앞둔 5월 2일. 신태용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청용(30 크리스탈팰리스)의 발탁과 이동국(39 전북현대)의 제외 의사를 밝혔다. 최근 소속팀에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하는 이청용의 발탁 가능성은 긍정적이지만, 맹활약 중인 이동국의 발탁은 어려울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에 팬들은 “경기 감각이 최고조인 선수를 선발하기는커녕 경기 감각이 떨어진 선수를 선발한다”며 신태용 감독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신태용 감독을 비판할 수는 없다. 신 감독은 애초에 선수 선발 원칙을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선수’로 내걸었다. 신 감독은 이청용의 프리미어리그, 월드컵 경험은 대표팀에 꼭 필요하지만, 이동국의 존재는 꼭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따라서 신 감독의 선수 선발에 대한 비판은 월드컵 이후로 유보하는 것이 맞다.

이렇듯 신태용 감독은 선수선발의 원칙을 지켰다. 애초에 원칙이라 내세운 게 특별히 없었기에, 깰 게 없던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 감독은 이 과정에서 ‘배려’의 기본을 깨고 말았다. 대표팀 감독이라면 월드컵에 대한 모든 선수의 간절함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이 이청용과 이동국에게 베푼 배려심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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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은 최근 소속팀 크리스탈팰리스에서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신태용 감독에게는 여전히 신뢰를 받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절대 월드컵을 포기하지 말고 몸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지난 4월 신태용 감독이 소속팀에서 방황하던 이청용과의 전화 통화에서 건넨 말이다. 당시 이청용은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거의 뛰지 못했다. 교체 선수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출전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크리스탈팰리스의 로이 호지슨 감독(71)은 물론 이청용에게도 직접 전화를 해 선수의 사기를 높여줬다.

결국 이청용은 지난 4월 28일(한국시각) 레스터시티 전에서 오랜만에 실전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출전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후반 41분 교체 투입되어 약 4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3월 11일 첼시 전 이후 6경기 만의 4분 출전이었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2일 기자회견에서 “이청용은 최근 경기에 나서고 있다. 발탁 가능성은 50:50이다”며 이청용의 최근 기량을 높이 샀고, 그의 발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청용에 대한 신 감독의 배려와 믿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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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의 제외 의사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은 자신이 먼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사진=전북현대]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이청용에게 베푼 배려심을 이동국는 베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제는 이동국을 놓아줄 때”라며 이동국의 월드컵행 희망을 사전에 차단한 것에 이어,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맹활약하던 이동국의 제외 이유를 솔직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으로 젊은 선수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유지해 온 이동국의 노력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했다.

신태용 감독은 2일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다”며 이동국의 제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동국은 지난 수년간 대표팀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고수해 온 선수다. 대표팀은 자신이 먼저 은퇴를 선언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며, 선수로 뛰는 동안에는 언제나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을 꿈꾼다는 게 그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지난해 8월, 신태용 감독은 K리그1에서 맹활약하던 양동현(32 당시 포항스틸러스)을 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좋은 선수지만 내가 원하는 타깃형 스트라이커의 움직임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던 바 있다. 현재 이동국을 러시아 월드컵 구상에 포함하지 않은 신 감독의 의중 역시 당시와 같다. 신태용 축구와 이동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동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의식한 신태용 감독은 ‘이동국이 스스로 대표팀에서 물러나서’라는 다른 이유로 진짜 이유를 숨겼다. 양동현의 경우처럼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감독으로서 더 적절한 선택이었을 텐데 말이다.

대표팀에 발탁되는 건 모든 축구 선수의 꿈이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누구보다도 월드컵이 간절했던 이동국의 꿈을, 아니 꿈꿀 기회마저 차단했다. 소속팀에서의 미진한 활약으로 월드컵행 가능성이 희박했던 이청용에게는 힘을 실어준 것과 비교하면 공평하지 못하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선발해 대회에 나서고, 그 결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이전에 월드컵을 꿈꾸는 모든 선수에게 동등한 배려심을 베풀어야 했지 않았을까. 신태용 감독의 배려심에 아쉬움이 남는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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