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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애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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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채비>의 포스터.


얼마전 개봉한 영화 <채비>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7살 정신연령으로 살아가는 서른 살 아들 인규(김성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아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별 준비를 하는 엄마 애순(고두심). 영화는 혼자서는 평범한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 인규를 위해 애순이 자신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체격만 어른이지 생활이나 하는 행동은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며 집안의 사소한 것까지 메모하고, 표시해주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장애인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다. 장애인체육 관련 일을 하는 당사자로 꼭 추천하고픈 영화다. 장애인이 혼자가 아닌,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장애의 특성에 맞게 하나에서 열까지 반복적으로 챙겨야 하는 모습은 장애인 체육 지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장애인 체육 지도를 하며 많은 학부모를 만나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채비’의 애순과 같은 얘기를 했다. “내가 우리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희망해요”라고 말이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는 대개 긍정적이거나,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자 아픔을 간직한 채 강인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되지 않나 싶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인규는 발달장애를 가졌지만 중증 장애인은 아니다. 복지관을 다니고, 사회성도 있어 의사소통도 된다. 30년 간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이 느껴진다. ‘프로 잔소리꾼’ 엄마 애순의 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지적장애인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성인이 되기까지 아주 천천히 성장하고 발전한다. 언어적, 신체적, 체력적으로 성숙해진다. 그것은 애정과 꾸준한 교육을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체육을 통해 구령을 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변화하는 것을 보는 학부모 A 씨는 “그냥 하는 시늉만 할 줄 알았는데, 정확한 동작과 체력적 향상을 보면서 우리 아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조금만 힘들면 포기하고, 절대 하려고 하지 않는데... 목표를 가지고 해내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다른 학부모 B 씨는 “고등교육까지는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만, 성인이 되면 혼자(학부모) 감당하기 어려워서 시설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성인이 되면 복지관이나 부모회 등에서 받는 교육이 전부인데, 학교 다닐 때처럼 계속해서 교육을 받았으면 합니다. 특히 체육은 중요해요. 선생님의 지도를 계속 받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현실적인 걱정을 했다.

장애인 체육 지도를 하면서 알게 됐다. 기관이 실시하는 교육을 받는 장애인들은 일부라는 사실을. 많은 장애인들이 집에서 홀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식이지만 부모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사회가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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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채비>에서 엄마 '애순' 역을 맡은 배우 고두심 씨.


애순의 마음

보통 장애인 체육지도자는 반복적으로 쉽게 설명하며 훈련을 시킨다. 다양한 장애의 유형에 어울리게 맞춤지도를 세부적으로 한다. 이는 장애의 성격에 맞춰 대화하고 훈육하는 지도법을 개발하게 된다. 장애인들은 받아들이는 시간이 조금 느려도 결국 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C 양은 힘든 재활을 자꾸 포기하려고 해 부모의 속을 썩였다. 그런데 체육지도를 받을 때는 늘 즐겁고,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동작을 열심히 한다. 이런 모습을 지도교사는 학부모에게 전달했다. 학부도 D 씨는 믿을 수 없다며 수업을 직접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직접 수업을 받고 있는 C양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움직이는 걸 무서워했는데 풍선을 손으로 때리고, 발차기를 하고, 큰 목소리를 내고... 지도교사에게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는데 눈으로 보니 알겠습니다. 체육을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녀가 행복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경제력이 있는 부모 F 씨는 장애인이 취업하는 주요 직업(화훼, 바리스타, 제빵 등)을 다 배워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체육 프로그램을 추가로 넣겠다고 했다.

“우리 아이가 대학까지 힘들게 들어가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돈을 쓰면서 몇 년간 조금 더 학교에 소속된 것을 연장할 뿐이지, 대학 졸업후에는 다른 장애인들처럼 취업이 어렵습니다. 비장애인들처럼 큰 꿈을 실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죠. 그래서 전 제 아이를 포함하여 장애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 아이가 이 기을 통해서 성인이 되어도 할 일이 있고, 기업이 아이를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끝까지 돌볼 수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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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좋은 사회, 좋은 국가

각자의 방식이 다를 뿐 자녀가 성인이 되고 부모가 없을 경우, 다른 형제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알면 영화 ‘채비’는 더 가슴이 찡하다. 필자도 영화속 엄마 애순처럼 잔소리꾼 스타일이다. 지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훈육이 들어간다. 그래서 지도를 받는 친구들은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무섭지만 그래도 따른다. 진심어린 관심은 그들도 안다.

열 달간 배에서 아이를 품고 출산하면 ‘엄마(혹은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밤낮 할 것 없이 육아에 힘쓴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기 전까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울수록 힘들고 어려운 것을 알게 된다. 부모라는 책임감이 몰려온다. 조금 부족한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면 사회와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 ‘장체야 놀자’ 시즌1을 마치며

필자는 요즘 둘째 아이를 키우며 체력적, 심리적으로 힘들지만 아이를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두 아이의 부모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잠시 ‘장체야 놀자’ 칼럼을 쉬려고 합니다. ‘시즌2’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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