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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훈의 빌드업] (34) ‘연세대 15학번’의 이근호, “포항에 살어리랏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연세대 15학번’의 소문은 자자했다. 각 고교에서 ‘에이스’를 담당한 선수들이 연세대로 모였다. 김민재(현 전북현대), 한승규(현 울산현대), 황기욱(현 AFC투비즈)을 비롯해 전주현, 전종혁, 유정완 등이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수비, 미드필더 자리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제46회 추계연맹전 준우승, 제52회 춘계연맹전 우승, 2016 U리그 왕중왕전 4강 진출 등 전국대회에서 큼직한 성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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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이근호(10번)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대학 생활을 보냈다. [사진=정종훈]


# 부상과 함께 한 대학생활

그중 이근호(21)는 대학 무대에서 빛을 다소 늦게 봤다. 그는 언남고 시절 등번호 10번을 달고고 권역리그에서 2년 연속 득점왕을 기록했고, 황희찬(21 잘츠부르크), 안은산(21 고려대) 등과 함께 전국대회에서 득점왕 경쟁을 하며며 특급 공격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동기들과는 달리 대학 피치를 자주 밟지 못했다. 고교 시절 당한 부상이 대학 와서까지 발목을 잡은 것이다. 고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던 허리디스크가 무리한 경기 출전으로 인해서 악화되고 말았다.

“고3 때 왕중왕전을 나갔는데, 다리에 감각이 없더라고요. 진통제를 먹고 뛰었는데, 금호고를 상대로 2골, 현대고전에서는 1골을 넣었어요(웃음). 그래도 축구 인생 중 가장 골감각이 좋았을 때 같아요. 때리면 들어갔거든요. 대학 입학 전에 시술을 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어요. 3월에 학교를 들어가서 축구화를 신었는데 몸이 완전 저 세상으로 갔어요.”

그럼에도 연세대 신재흠 감독은 이근호에게 신뢰를 보냈다. U리그 성균관대와의 경기에서 들어간 지 2분 만에 결승골을 넣었다. 이후 교체 출전으로 매 경기 약 20분 정도를 소화했다. 그러던 중 동국대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부상. 추계연맹전에서 복귀 후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운동 중 족저근막염으로 다시 쓰러졌다. 그렇게 1학년 내내 부상을 달고 살았다.

“2학년 시즌 시작하기 전에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옆에서 엄마가 진지하게 아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올해까지만 해보고, 만약에 또 그렇게 다치면 그만 두는 쪽까지 생각했어요. 남들이 보기엔 잘 모를 수도 있었지만, 저 진짜 죽어라 열심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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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는 지난해 춘계연맹전에서 연세대가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사진=정종훈]


“축구를 하면서 또 다시 이렇게 내려갈 시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밑바닥을 쳐봤으니까 나중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20대 액땜했다고 생각해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잖아요(웃음).”

대학 무대 2년차 때는 주전 공격수로 연세대를 이끌었다. 춘계연맹전 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왕중왕전 4강 진출까지, 굵직한 기록을 남겼다. 그 결과 김민재, 황기욱, 한승규 등 동기들이 프로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이근호는 1년 더 학교에 남았다.

“(프로진출에 대해) 아쉽진 않았아요. 사람마다 다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할 수 있는 상태가 만들어지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1년 더 먼저 간다고 꼭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연세대가 학점 미달 제한 규정에 따라 올 시즌 U리그에 불참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근호는 간헐적으로 개최되는 춘·추계연맹전, FA컵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그나마 대학 선발 대표팀에 발탁되어 덴소컵과 2017 타이페이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다녀오면서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올 시즌 이근호는 유독 강한 승부욕을 그라운드 내에서 보였다. 상대 수비수와의 거친 몸싸움은 물론이고, 이전보다는 더 과감한 모습으로 상대를 위협했다. 이근호는 “제가 승부욕에 강해요.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있는 편이고요. 특히 축구로 지는 건 더 싫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에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강한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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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22번)가 지난해 왕중왕전 4강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정종훈]


# 자신감 넘치는 프로 도전

리그 불참으로 남들보다 시즌을 일찍 끝낸 이근호는 벌써 내년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올 3월,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일찌감치 취업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다가오는 2018시즌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게 됐다. 계약금까지 두둑이 받으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미 클럽 하우스에 합류해 프로 적응이 한창이다.

그가 포항을 선택한 이유는 포항 최순호 감독 때문이었다. 2016 베트남 BTV CUP 대학 선발팀, 올 시즌 덴소컵 대학 선발팀에 소속되어 포항과의 연습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최순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최순호 감독님께서 고등학교 때부터 좋게 봐주셨어요. 포항이랑 연습경기를 할 때 괜찮게 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본 스카우트에게도 전화가 왔는데, 안 간다고 거절했어요. 최순호 감독님이 저희 신재흠 감독님에게 전화해서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셨어요.”

이근호는 프로 무대 도전에 자신감이 넘친다. 연세대 시절 프로와의 연습경기에서 직접 부딪히며 경쟁력을 키웠다. 지난 FA컵 32강 광주FC를 만나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덧붙여 친구들이 프로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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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는 올해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골을 넣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사진=정종훈]


“1, 2학년 때는 프로를 보면 벽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엔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김)민재만 아니면요(웃음). 여러 (프로)팀과 해봤는데, 크게 압도적이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형들이 연습경기라 힘 빼고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힘에서는 자신 있어요. 유일하게 가장 자신 있는 것이 힘입니다. 템포가 빠르니까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거 같아요. 실력적인 문제보다는 전술, 소통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커요.”

포항을 살펴보면 정통 공격수가 부족하다. 게다가 주전 공격수 양동현은 내년 시즌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둥지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이근호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감독님께서 공격만 할 줄 아는 반쪽 자리 선수는 되지 말라고 하셨어요. 골을 넣을 때 저는 (기회를) 찾아서 넣는 스타일을 추구하거든요. 움직임을 많이 하려고 해요. 받아먹는 것보단 찾아서 골을 넣는 게 더 좋아요.”

이근호의 신장과 몸무게는 185cm, 85kg. 겉에서 보기엔 체격이나 탱크처럼 뛰는 폼이 다소 투박해 보인다. 하지만 동료를 이용하는 폭 넓은 움직임이나 본인이 직접 마무리 짓는 능력을 보면 ‘투박하다’라는 이미지가 싹 벗겨진다. 관건은 골 결정력이다.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한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뿐더러 팀은 승리와 멀어진다. 2년 연속 하위스플릿으로 시즌을 마감한 ‘축구명가’ 포항은 내년 시즌 자존심 회복을 위해 은근히 이근호에게 기대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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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22번)는 벌써 포항에서의 내년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사진=김유미]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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