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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강동희체육관의 농구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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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 대속(代贖, redemption). 한자 뜻 그래도 ‘대신 속죄하다’ 즉, 남의 죄를 대신해서 벌을 받거나 속죄함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종이 주인 대신 벌을 받을 때 쓰였고, 무엇보다 개신교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하며 구원의 길을 열었다’는 것으로 통한다. 문학작품으로는 19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너대니얼 호손(1804∼1864)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가 대속으로 유명하다.

# 호손은 영국 청교도의 후손으로 미국태생 5세대다. 1대 윌리엄 호손(고고조할아버지)은 치안판사로 퀘이커교도 여성을 공개 태형에 처하고, 그의 아들로 역시 판사였던 존 호손(고조할아버지)은 1962년 마녀사냥 소동이 발생했을 때 19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한 여성은 형장으로 끌려가며 “신이 너희 가문에 저주를 내릴 것이다”라고 울부짖었다. 이를 알게 된 보스턴의 세관원 너대니얼 호손은 조상의 죄악을 고백하고, 대속하는 마음으로 주홍글씨를 쓴 것이다.

# 속죄든 대속이든 철저한 반성이 시작점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이에 부합하는 의미있는 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구인 강동희의 경우는 그냥 속죄다. 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지은 죄를 감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애써 의미를 부여한다면 프로농구에서 범한 잘못을 유소년, 생활체육에서 대속하고 싶은 것이다. 강동희는 법적으로는 죗값을 치렀지만, 팬들의 사랑을 저버렸다는 도덕적 형벌을 삶으로 받아들인다. 3년이 넘도록 숨어살다시피 했지만, ‘숨어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설득에 2016년 8월 프로스포츠협회가 실시하는 부정방지교육의 강사로 나섰다. 해당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 무슨 교육이냐는 일부 비난도 있었지만, 이것이 진짜반성이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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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kt 위즈 프로야구 선수단을 상대로 프로구단 부정방지 강연을 하고 있는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 [사진=오센]


# 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동희는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벽촌까지 찾아가 어린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쳤다. “결국 농구였어요. 농구가 없다면 그냥 숨어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농구로 성공했고, 농구로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두 아들도 농구를 하고,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어린이농구교실도 제 이름으로 돼 있어요. 농구로 속죄하고, 농구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죠.” 강동희는 지금 고민하고 있다. 부정방지교육의 강사를 다니면서 받은 강사료가 어느덧 1,0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도무지 이 돈은 개인적으로 쓸 수 없어 별도의 통장에 모으고 있다. “좋은 곳에 쓰고 싶은데, 괜히 구설에 오르는 것도 부담되고, 어디에 전달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 최근 강동희는 고향 인천에 체육관을 하나 인수했다. 아이스링크를 개조해 실내체육관으로 만들었는데 제법 규모가 있다. 처음에는 강동희농구교실에 쓰기 위해 임대하려고 했는데, 월세를 내느니 아예 매입해 다른 좋은 용도로도 사용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크게 화제가 될 뉴스다. 농구선수가 수십 억 원을 들여 농구체육관을 산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강동희가 무슨 돈이 그렇게 많냐?’, ‘승부조작으로 챙긴 것이 아니냐?’는 못된 추측은 접어두자. 그는 농구계에서 원래 재테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듯이 승부조작으로는 실제 돈을 벌지는 못했다.

# “체육관에서 뭐 하냐고요? 뭐 하긴요, 농구해야죠. 오픈한 지 며칠 안 됐어요. 강동희농구교실을 하는 것은 기본인데, 앞으로 어떻게 이 체육관을 활용해 농구에 도움이 되도록 할지는 연구해봐야죠. 일단 한 번 놀러오세요.” 모처럼 강동희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직 강동희체육관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홍글씨>의 주인공(헤프너 프린)이 가슴에 A(Adultery 간음)가 새겨진 옷을 항상 입고 다녀야한 것처럼, 강동희 이름 석 자에는 보이지 않는 ‘승부조작’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판단의 문제다. 그리고 그건 개개인의 자유의사다. 계속 욕을 하든, 아니면 그의 대속을 조금은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든.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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