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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6) 1부 리그 승격 작전 - QPR: 4년 계획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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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승강제, 그리고 박지성의 QPR

2012년 11월 28일, K리그에는 색다른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우승팀까지 정해진 상황이었지만 축구팬들의 시선은 하위팀들에게 쏠렸죠. 다음 해인 2013년부터 시작되는 K리그 2부 리그로 과연 어느 팀이 강등될지가 결정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력한 후보는 강원과 대전, 그리고 광주였습니다. 그리고 이 날 강원이 성남을 격파하면서, 광주FC가 K리그 최초의 강등팀이라는 불명예를 쓰게 되었죠. 승강제가 없던 이전까지는 하위팀의 경기는 목적 의식이 없어 지루했는데 이 날은 분명 달랐습니다.

이제는 K리그도 클래식과 챌린지라는 승강제가 순조롭게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을 덜 받는 2부 리그에는 나름의 애환이 녹아 있죠. 바로 그런 2부 리그 팀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QPR, 그러니까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과거 박지성 선수가 뛰기도 했던 팀입니다.

우리가 챔피언이라니!

퀸즈파크 레인저스, 그러니까 QPR은 1882년에 런던 서부에서 창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하부리그로 강등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하위 리그를 왔다 갔다 하며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왔죠.

이 영화는 200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QPR은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 속해 있습니다. 또한 천8백만 파운드(한화 약 312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죠. 파산을 앞둔 이 클럽을 어느 사업가 콤비가 사들입니다. 플라비오(Flavio Briatore)는 원래 F1 레이싱팀을 운영하던 이탈리아인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부구단주에는 인도계 영국인인 아밋(Amit Bhatia)이 부임합니다.

플라비오와 아밋은 구단을 사들이면서 패배에 지친 팬들에게 “4년 계획”을 발표합니다. 4년 내에 1부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습니다. QPR 의 홈구장은 낡아 있고, 관중석의 의자들은 충치로 빠진 이처럼 곳곳에서 망가져 있습니다. “승자만 출입가능(Winners only)”라는 팻말이 붙은 라커룸도 낡긴 매한가지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영광을 나타내는 트로피들은 창고에 아무렇게나 쳐박혀 있던 상황이었죠.

어쨌든 새로운 구단주 콤비의 지휘 아래 QPR 은 2008-2009 시즌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고, 단 15 경기 만에 감독은 해고됩니다. 의욕적으로 뒤를 이은 파울로(Paulo Sousa) 감독 역시 성적 부진 및 이사진과의 대립으로 경질됩니다. 파울로 감독은 경질되면서 이런 말을 남기죠. “이사진은 4년 계획을 말하지만, 실은 4분 계획만 갖고 있다(They talk about the four-year plan, they have a four-minute plan).”


파울로 감독이 경질되고 성적이 바닥을 치자 팬들은 구단주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매경기 홈구장을 찾는 플라비오가 보는 앞에서 팬들은 “우리 레인저스를 돌려달라(We want our Rangers back)!”, “4년 계획 좋아하네(Four-year plan You're having a laugh).”라고 외치며 비난합니다.

결국 플라비오는 이사직을 사퇴합니다. 뒤를 이어 부이사였던 아밋이 경영 전반에 등장합니다. 성적 부진은 몇 년간 이어집니다.

그리고 2010-2011 시즌, QPR 은 새로운 감독 닐 워녹(Neil Warnock)을 영입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죠. QPR 은 시즌 초부터 가공할 득점력을 나타내며 챔피언십 선두로 치고 나갑니다. 선전에 고무된 이사진들은 1부 리그 승격을 대비한 회의를 계속합니다. 사실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수익은2부 리그 팀들의 6배에 달하죠. 1부 승격이야말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사업입니다.

하지만 다시 악몽이 QPR 을 덮칩니다. QPR 은 2년 전인 2009년,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함 혐의로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만일 규정 위반이 확인되면, 최대 15점까지도 승점이 감점될 수 있는 상황이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이미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지은 QPR.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조사는 시작됩니다. 과연 QPR 은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할 수 있을까요?

하부 리그는 하부 리그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

이 영화, 에서 우리는, 강등된 팀이 하부 리그에서 살아 남으려 애쓰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수익은 적지만 지출은 결코 적지 않은 2부 리그 챔피언쉽. QPR 의 경영진들의 입에서는 “돈, 돈, 돈”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선수, 감독 하나를 영입하고 싶어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죠. 게다가 돈이 있어도 선수들은 2부 리그 행을 내켜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QPR 은 지혜롭게 이 난국을 헤쳐나갑니다. 구단 운영에서 절약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되죠. 매일 회의를 하며, 그들은 VIP석을 장식하던 꽃을 없애고, 그들에게 제공되던 식사를 간소화합니다. “이런 것들을 없앰으로서, 우리는 선수를 안 팔아도 되.”라고 말하는 팔짱 낀 아밋의 모습은, 하부 리그 프런트들의 고뇌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패배 의식으로 인해 예민해진 서포터들과의 관계 역시 어렵습니다. 조금만 팀의 성적이 부진해도 이사진을 비난하는 노래가 경기장에 울려펴지죠. 하지만 QPR 의 이사진들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팬들과 이사진이 직접 만나 가족적인 구단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을 비난하는 서포터들과 거리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하죠. 게다가 사실 구단 이사진들도 QPR 의 팬들입니다. 승리하면 관중석의 팬들과 이사가 악수를 하고, 패배할 경우에도 팬들이 축 늘어진 경영진에게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문제를 피하기 보다는, 당장 시끄럽더라도 문제를 공론화해 같이 대화하고 해결책을 찾아 보고자 하는 잉글랜드 축구 경영의 문화가 이 영화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 외국에서도 강등되어 2부 리그로 내려간 팀들이 오히려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나타납니다. 이웃 일본에서 우라와 레즈, 제프 유나이티드, 콘사도레 삿포로 같은 팀들이 2부 강등 후 오히려 지역 연고가 강화되고 관중이 늘어난 사례는 유명하죠. 강등을 실패로 인식하기 보다는, 하부 리그의 여유 있는 일정 속에서 지역민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2부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함으로써 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기 때문이죠.

덧붙여: 2010-2011 시즌 챔피언십 우승으로 QPR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습니다. 하지만 1부 리그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죠. 승격의 영웅, 닐 감독은 결국 성적 부진으로 해임됩니다. QPR 은 현재 다시 2부 리그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동화처럼 영원한 해피 엔딩은 명문팀에게도 없는 법이죠. 하지만 승격과 강등이 반복되며 또 하나의 역사가 쌓인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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