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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5) 중국 축구와 승부 조작 - 파우(波牛)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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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우리 나라에서 개봉했을 당시의 <파우> 포스터.


<소림축구> 20년 전, <파우>가 있었다.

중국 혹은 홍콩의 축구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주성치의 <소림축구>입니다. 시즌1에서도 다룬 바 있지만, <소림축구>는 컴퓨터 그래픽의 적절한 사용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그리고 주성치 사단으로 대표되는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죠. .

그렇다면 홍콩 영화 중에 축구를 다룬 작품이 <소림축구>밖에 없을까요? 아닙니다. 비록 1980년에 제작되긴 했지만, 오늘날 봐도 큰 손색이 없는 <파우(波牛)>가 있습니다. 성룡 영화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었던 유명한 배우 원표(元彪)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1980년대 홍콩 축구계를 그린 이 영화에는 <소림축구>와 마찬가지로 쿵푸와 축구가 결합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소림축구>가 디지털 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갖가지 묘기에 가까운 장면들을 구현한데 비해, <파우>는 철저히 배우들의 연기와 적절한 편집을 통해 무술 축구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유쾌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은 돈과 폭력 조직이 얽혀 있는 당시 홍콩 축구 도박과 승부 조작의 모습이 영화에 녹아 있습니다.

시골 청년의 홍콩 리그 도전기

이당은 시골에서 오리 농사를 짓는 순박한 청년입니다. 그러나 다리 힘과 기술만큼은 대단하죠. 두 발로 방아를 찧고, 깨지기 쉬운 오리알을 발로 집어 올릴 정도입니다. 이당의 유일한 가족은 삼촌입니다.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삼촌을 대신해 이당은 열심히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참가한 마을 축제에서, 지주의 3대 독자 아들을 다치게 한 이당은 서둘러 홍콩으로 도피합니다. 삼촌의 친구를 찾아간 이당, 하지만 삼촌의 친구는 죽고 그 아들인 소손을 만나게 됩니다. 이당에게 특유의 발기술이 있음을 알아차린 소손은 그에게 근처 축구팀의 입단 테스트를 받자고 권유합니다.

이당과 소손은 이에 명문 용화 축구팀을 찾아갑니다. 거기에는 “축구왕”이라 불리는 김귀선이 코치 겸 선수로 뛰고 있지요. 하지만 일전에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쫓던 이당과 부딪히면서 과일을 뒤집어쓰는 망신을 당한 적이 있는 김귀선은 사사건건 이당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기회도 주지 않고 이당을 볼보이로만 쓴 것이지요.

한편 축구도박에 거금을 거는 폭력배들은 용화 축구팀에 접근합니다. 다음 경기 신생팀과의 경기 때 일부러 져주기를 부탁하며 김귀선에게 돈을 건네는 용화팀의 구단주. 이에 김귀선은 볼보이인 이당을 경기에 내보냅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이당은 놀라운 기술을 선보이며 용화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화가 난 김귀선과 용화팀은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당을 괴롭히고 내쫓습니다. 하지만 이당의 실력을 유심히 본 신생팀의 구단주는 이당에게 입단을 권유합니다.

이제 신생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 이당과 소손. 과연 그들은 김귀선의 용화팀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축구 도박과 승부 조작에 관여하고 있는 폭력배들은 이당을 가만히 둘까요?


축구 도박, 중국 축구의 영원한 골칫거리

홍콩 뿐 아니라 중국 축구 역시 도박과 승부 조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불법 도박 사이트는 물론, 지하 세계의 사설 도박까지 합치면 중국 축구 도박 산업의 규모는 1조 위안(한화 약 170조원) 규모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한 경기당 1억원 이상의 판돈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우리 나라의 3부 리그 격인 챌린저스 리그에도 중국 도박 조직이 손길을 뻗쳐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적도 있죠.

축구 도박은 당연히 승부 조작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력 조직을 낀 도박단이 선수들에게 접근해서 일부러 패배하는 방식으로 경기 결과를 조작하도록 회유 및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중국 축구 선수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해서, 승부조작의 대가로 받은 돈을, 바로 자기 경기의 도박에 베팅해서 재산을 불린 선수들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이에 중국은 2010년 축구 도박 척결을 위해 공권력을 개입시켰습니다.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죠.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과 심판, 축구 협회 간부까지 승부조작에 대대적으로 관여했던 것이지요.

2002 월드컵 당시, 중국 심판으로는 유일하게 월드컵 심판진에 선정된 바 있는 루쥔(陸俊) 심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구단으로부터 승부 조작의 대가로 약 1억 4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루쥔은 5년 형을 선고받았고,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축구 협회의 간부들 역시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네요.

중국의 승부조작 스캔들은 팬들에 의해 “검은 호루라기 사건”으로 불리며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승부조작에 관여한 사람들이 줄줄이 처벌된 이후, 2010년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동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중국 축구팀이 ‘공한증’을 깨고 3:0으로 우리 대표팀을 격파했다는 점이지요. 당시 중국 축구계는 중국 축구 자정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며 자축을 했고, 당시 중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가오홍보(高洪波) 감독은 ‘축구의 제갈공명’이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2년 1월에 가오홍보 감독 역시 뇌물을 준 혐의로 처벌을 받는 블랙 코미디가 일어났죠. 중국 축구는 여전히 대표팀과 프로팀 모두 부진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승부 조작의 홍역을 한 번 앓은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 <파우>를 통해, 지금 뿐 아니라 1980년대 당시에도 승부 조작 문제가 심각했음을 알 수 있죠. 신생팀으로 적을 옮긴 이당과 소손을 향해 돈다발을 건네던 폭력 조직. 그들은 이당이 제의를 거절하자 흉기를 들고 밤에 그들을 습격하는 대범함을 보입니다. 적어도 돈이 걸린 승부조작에 있어선 깨끗해 보이는 주인공 이당이지만, 영화 마지막, 김귀선과 각자의 다리를 걸고 내기를 하는 장면을 보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죠.

이제는 중국 축구도 경제 성장과 더불어 리그 규모는 물론 실력에서도 많은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국 축구가 더 높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축구 도박의 문제가 철저하게 척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한 영화, <파우>였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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