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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자는 축구하면 안돼요? - 이준석의 킥 더 무비<가이스 앤 볼스>
스포츠계의 암묵적 금기, 동성애

여러분은 좋아하는 축구선수 중에 동성애자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습니까? 사실 저도 20여 년 가량 축구를 봐왔지만 여태껏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요즘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밝히고 사회 전면에 나서는 경향과 아울러 사회 전반적으로도 동성애에 대해 관대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포츠, 그 중에서도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로 여겨지는 축구계에서는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 축구선수 중에 과연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coming out)을 한 사람이 있을까요? 찾아보니 잉글랜드 프로리그에서는 단 한 명이 그런 용기를 냈었군요. 바로 저스틴 파샤누(Justin Fashanu)입니다.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이 선수는 이후 동성애자로서 여러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의 문제로 봐야겠지요. 아무튼 편견에 시달리던 파샤누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남자 청소년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죠. 재판 과정 내내 무죄를 주장하던 파샤누는 안타깝게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스포츠계, 특히 축구계에서 동성애자는 설 자리가 좁은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신체 접촉이 빈번한 축구의 특성상 선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동
성애자 동료와 같이 뛴다는 게 좀 꺼림칙할 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이란에서는 국가대표 수비수가 경기 도중 동료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이유로 태형을 당했다고 하고, 독일 대표선수인 람(Philipp Lahm)은 “축구와 같은 전투적인 종목에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선수가 6만 관중 앞에서 경기를 펼치긴 어렵다”는 말을 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동성애자 축구선수에 대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독일 영화가 있어 흥미롭습니다. <가이스 앤 볼스(Guys and Balls)>, 독일어로는 ‘Manner wie wir’ 즉, ‘우리 같은 남자들’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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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골키퍼, 동성애자 축구팀을 만들다


에키(Ecki)는 독일 도르트문트 근처의 한 작은 마을의 축구팀의 골키퍼입니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동성애자라는 것이지요.

에키가 뛰던 팀은 상위 리그로 올라갈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페널티킥을 에키가 놓쳐 그 꿈은 물거품이 되지요. 설상가상으로, 평소 좋아하던 우도(Udo)라는 팀 동료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들킨 이후 팀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동성애자에게 호감을 샀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우도
는 앞장서서 에키를 비난합니다. 동성애자는 축구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요.

멸시를 당해 화가 난 에키는 동성애자도 축구를 할 수 있으며 자신이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말합니다. 코웃음 치는 동료들. 에키는 한달 안에 동성애자 축구팀을 데려올 테니 시합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한편 에키의 가족들은 에키가 커밍아웃을 하자 충격에 휩싸입니다. 특히 책임감 강한 전형적인 독일 남자인 아버지의 실망감은 극에 달하지요. 보수적인 마을 주민들은 에키 네 가족에게 동성애자 아들을 뒀다며 놀립니다. 결국 에키는 고향에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동성애자 축구팀을 만들기 위해 대도시인 도르트문트로 떠납니다.

도르트문트에서 에키는 동성애자 클럽을 돌면서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읍니다. 에키 자신도 동성애자이긴 하지만 대도시에서 만난 다른 동성애자들은 에키에게 문화적 충격을 선사합니다.

마을에서 에키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동성애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보통 사람이라 여기면서 이성애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밤마다 동성애자 클럽에 모이는 오토바이족들, 터키 음식점을 하며 베컴도 분명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믿는 청년, 결혼 후 동성애자임을 자각하여 이혼당한 후 아들과 만나지 못하는 아빠, 그리고 간호사들에게 인기가 좋지만 정작 자신은 동성애자임을 담담히 말하는 스벤(Sven)이라는 젊은 의사까지.

에키는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당당히 내보이며 사는 도시의 동성애자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함께 축구팀을 구성하지요. 그리고 스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 분데스리가 스타였지만 지금은 퇴물이 되어 버린 어느 술집의 주인이 연습장소를 내어주고 코치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다가 그들은 주말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팀의 경기를 보러 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도의 패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에키에게 시비를 거는 우도. 그 과정에서 동성애자 축구 클럽의 사람들은 에키가 우도에 대한 개인적 원한 때문에 경기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합니다. 하나 둘 팀을 떠나는 동료들. 에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 스벤마저도 자신을 연인으로 남들에게 당당히 소개하지 못하는 에키의 태도에 실망해 그를 떠납니다.

혼자 남겨진 에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역시나 안 된다면서 에키를 조롱하는 사람들. 과연 에키는 다시 팀 동료들을 모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독일 최초의 동성애자 축구 클럽을 이끌고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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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도 서서히 나타나는 인식의 변화

영화 속에서 에키는 결국 동성애자라는 편견의 벽을 깨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아직 현실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당당히 인정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변화의 바람은 조금씩 부는 것 같습니다. 앞서 독일 선수 람이 동성애자 축구선수의 능력에 의심을 제기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독일 축구협회장은 동성애자가 베를린 시장도 하는 세상이며, 독일의 동성애자 축구선수들이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파샤누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낳은 잉글랜드 축구계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계의 악동인 조이 바튼(Joey Barton)은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음을 밝히면서 잉글랜드 축구계가 동성애자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프리미어리그의 경기 감독관들이 동성애자 선수들의 커밍아웃을 방해하고 있다는 폭로를 했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국 축구선수협회(PFA)는 최근 축구장 내의 동성애자 혐오는 인종차별과 마찬가지의 차별행위라고 주장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동성애 문제는 그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국민 여론 등 복잡한 사정을 고려하여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여기저기서 동성애자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소수자로서의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동성애자들끼리의 사랑을 인정해주려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죠. <가이스 앤 볼스>는 이 조심스러운 주제를 용기 있게 다룬 영화입니다. 과연 사회의 이런 변화가 축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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