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중겸의 MLB 클립] ‘IF’라는 가정과 시카고 컵스의 2015
이미지중앙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 (사진=OSEN)


사바시아가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면. 벌랜더가 예전의 구속을 회복할 수 있다면. 카곤과 툴로가 건강하기만 한다면. 무엇 무엇 한다면...

IF.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대학 시절 토익 시험 이후 마주칠 일이 없을 것만 같던 이 단어를 접할 수밖에 없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한 시즌, 한 경기 그리고 매 이닝 안에서 IF라는 가정과 마주하게 된다. 타선이 투수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선발 투수가 호투할 수 있다면, 선두 타자가 출루할 수 있다면 등등등..

학창 시절 배운 IF에는 여러 가지 문법적 쓰임새가 있으나, 야구에서 IF는 대부분 바람 섞인 희망을 이야기할 때 쓰이곤 한다. 물론 그 가정은 부질없는 희망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IF가 많다는 것은 그 팀의 전력이 불안하다는 맥락과 일치한다. 당연하다. IF는 그 팀의 전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기에, IF라는 가정은 언제나 많은 팬들과 감독 그리고 선수들의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다.

시카고 컵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가장 예측이 쉽지 않은 팀이었다. 대부분의 팀이 시즌 전망에서 비슷한 평가를 받았던 반면, 컵스는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지구 우승부터 최하위까지 골고루 표를 받았다. 컵스가 이 같은 들쭉날쭉한 평가를 받았던 것은 겨우내 레스터와 해멀을 데려오며 선발 보강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한 팀 내 주축 타자들의 어린 나이 때문이었다. '유망주가 터져준다면.' 이는 야구에서 가장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가정이다.

물론 컵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젊은 유망주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그 질과 양은 쉽게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시범경기에서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며 그 기대치를 더욱 높여 놓았다. 이 밖에도 에디슨 러셀과 호르헤 솔러는 각각 BA 평가 전체 유망주 순위 3위와 12위에 이름을 올린 터였다(브라이언트 1위). 기존에 팀을 이끌던 앤서니 리조와 스탈린 카스트로 역시 올해 25살에 불과한 어린 선수들이다. 컵스를 둘러싼 가정을 선뜻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컵스는 24일(한국시간) 현재 39승 30패의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현재 컵스가 기록하고 있는 .565의 승률은, 동부지구 선두 워싱턴과 서부지구 선두 다저스보다도 높은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전체 3위의 기록이기도 하다. 와일드카드 레이스는 피츠버그에 반 경기 뒤진 2위의 성적. 컵스가 6월 이후 5할 승률을 유지한 것은 2009년 이후 6년 만으로, 그들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은 2008년이었다.

이미지중앙

‘슈퍼 루키’ 크리스 브라이언트 (사진=시카고 컵스 트위터)


크리스 브라이언트, 앤서니 리조 그리고...

'가장 확실한 IF.' IF라는 것은 절대 확신할 수 없기에 이는 분명 모순이고 역설이다. 하지만 컵스에게 브라이언트는 그런 존재였다. 프로 데뷔 이듬해에 마이너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지난해의 활약이 컵스 구단을 고무시켰다면, 시범경기에서의 믿기지 않는 활약은 그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프링캠프 막판 FA 시기를 1년 늦추기 위해 그를 마이너리그 캠프로 내려보낸 컵스 구단의 처사가 논란이 됐던 이유도 그 대상이 브라이언트였기 때문이었다.

4월 중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브라이언트의 성적은 .278의 타율과 10홈런 42타점이다. 현재 23홈런 페이스로 장타력은 아직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404의 득점권 타율은 대단히 인상적이다(99타점 페이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출루율이다. 현재까지 브라이언트의 출루율은 본인의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382로 100타석 이상 들어선 35명의 신인 타자 중 2위 기록이며, 내셔널리그 전체 14위의 성적이다. 높은 출루율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32개의 볼넷은 리그 공동 8위의 성적. 현재까지 브라이언트의 활약은 화려함이 아닌 건실함이라는 단어가 보다 적확한 상황이다.

브라이언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이 지점이다. 대부분의 신인 타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점을 드러내며 급격한 업 앤 다운의 경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브라이언트는 데뷔 이후 꾸준하게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브라이언트는 오늘까지 치른 61경기 중 출루에 성공하지 못한 경기는 단 9경기뿐이며, 두 경기 이상 연속 무안타에 그친 것은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볼넷-삼진 비율 역시 36볼넷-80삼진으로(2.2삼진 당 1볼넷),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인 99볼넷-206삼진(2.1삼진 당 1볼넷)과 거의 흡사한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타석 당 삼진율 역시 마이너리그 시절의 3.8타석 당 1삼진과 큰 차이가 없는 3.4타석 당 1삼진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 많은 거포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 입성 이후 삼진 비율이 폭등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리그 시절과 큰 차이가 없는 삼진 비율. 이는 브라이언트가 아직까지 장타보다 정확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본인 스스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 기간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브라이언트의 장타력이 폭발하는 시점은 온전히 그에게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신인으로서 현재까지 그가 기록하고 있는 .861의 OPS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숫자임에 틀림없다.

이미지중앙

앤서니 리조 (사진=OSEN)


'지난해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다면.' 리조를 향한 가정은 컵스 타선 전체의 키 포인트였다. 올 시즌 25세에 불과하나, 리조는 지난해(.286 32홈런 78타점)의 활약을 발판 삼아 올 시즌 컵스의 타선을 이끌어야 하는 선수였다. 7년 계약 첫 해인 2013시즌(.233 23홈런 80타점)과는 전혀 달랐던 지난해였기에, 올해는 그에게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시즌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리조의 활약은 당초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록한 .286의 타율이 개인 최고 성적이었던 리조는 올 시즌 24일 현재 .309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15개를 기록하고 있는 홈런 개수는 시즌 35홈런 페이스로, 장타력의 손실 없이 정확도에서 한 차원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타율 상승의 연쇄 효과로 출루율(.419)과 장타율(.582) 모두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리조는, 1.001의 OPS로 하퍼와 골드슈미트의 뒤를 이은 메이저리그 전체 3위에 올라 있다.

솔러와 러셀의 탑 유망주들도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 연착륙에 성공하고 있다. 솔러는 현재 발목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등재돼 있지만, 부상 전까지 .265 4홈런 19타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4월 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러셀은 .250 5홈런 20타점으로 신인치곤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 특히 카스트로의 존재로 마이너시절 주 포지션인 유격수 대신 2루수로 나서고 있으나 벌써 런 세이브 +8(2루수 ML 2위)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수비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리조와 함께 팀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카스트로는 뜨거운 4월을 보낸 이후 주춤했으나, 지난 신시내티전에서 두 경기 연속 끝내기 안타 포함 최근 팀이 치른 10경기 중 세 차례나 결승타를 때려내며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이에 지난해 득점 리그 12위에 그친 컵스 타선은 올 시즌 경기 당 4.19점으로 내셔널리그 5위에 올라 있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의 경험이 축적되는 시즌 말미로 갈수록 컵스의 타선은 보다 원활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지중앙

컵스에서의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존 레스터 (사진=OSEN)


레스터가 에이스 역할을 해줄 수만 있다면..

올 시즌의 컵스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분명한 것은 컵스의 어린 선수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불안 요소를 메워 나가며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의 힘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며, 어느 순간 경험 부족이라는 뇌관은 컵스에게 고비로 다가올 것이다.

이에 컵스에겐 베테랑의 지원 사격이 절실한 시점이 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레스터의 활약은 올 시즌 컵스의 운명을 가늠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지분을 차지할 공산이 크다.

사실 레스터는 가정이 아닌 전제조건이 되었어야 할 선수다. 그에게 6년간 1억 5,500만 달러라는 큰 규모의 계약을 안겨준 것은 마운드 보강, 즉 팀 전력의 불안 요소를 없애고자 하는 컵스 구단의 의중 때문이었다. 타선의 리빌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던 컵스는 레스터를 영입하면서 투타 밸런스 조화라는 틀의 중요한 조각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레스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1선발로선 지나치게 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레스터의 시즌 성적은 4승 5패 3.80. 4월 2패 6.2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뒤 5월 4승 1패 1.76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 했으나, 6월 이후 다시 2패 평균자책점 5.16으로 흔들리고 있다. 9이닝 당 피안타 개수 9.6개와 1.336의 WHIP 모두 레스터에겐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이다. 무엇보다 좋은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의 간극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올 시즌 컵스 선발진은 3.62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4위에 올라 있다. 제이크 아리에타가 지난해의 활약을 이어가는 가운데, FA를 통해 다시 데려온 제이슨 해멀도 제 몫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츠요시 와다가 이닝 소화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카일 헨드릭스는 지난해 후반기의 대활약을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레스터의 활약이 중요한 것은 지구 내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와 피츠버그가 지닌 선발 마운드의 힘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두 팀은 메이저리그 전체 선발 평균자책점에서 나란히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 세인트루이스는 웨인라이트의 이탈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피츠버그의 콜-버넷-리리아노의 원-투-스리 펀치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최고 수준이다. 컵스가 현재 지구 3위이자 와일드카드 2위를 달리고 있지만, 벌써 지구 우승을 포기하고 굳이 와일드카드로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레스터는 최근 두 경기에서 승수를 추가하지는 못했으나 13.1이닝 2실점으로 좋았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 상황. 경쟁팀들이 대단히 빡빡한 지구에 속한 컵스가 보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꾸준하면서도 압도적인 모습의 레스터가 필요하다.

이미지중앙

리글리 필드 (사진=OSEN)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만 있다면..

여하튼 컵스는 최근 수년 사이 포스트시즌에 가장 근접한 전력을 갖고 시즌에 임하고 있다. 1908년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 오랜 숙원이라면, 일단 포스트시즌 진출이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선행 과제다.

컵스가 올해 당장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만한 전력을 지녔다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만 나갈 수 있다면 이후의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특히나 최근 수년간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팀의 절대적인 전력이 아닌 기세 싸움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컵스이기에 분위기를 탈 수만 있으면 어떤 사건을 만들어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컵스는 최근 월드시리즈 우승팀의 공통적인 패러다임인 팜 시스템에서 배출된 프랜차이즈 스타가 주축을 이룬 가운데 적절한 FA영입이 조화를 이룬 팀이다. 2013시즌의 보스턴을 제외하고, 2010년 이후의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 모두 이 같은 경향을 보인 팀들이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문턱까지 향했던 캔자스시티 역시 그랬다. 모든 선수가 자신의 프랜차이즈 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으며,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은 그 기반이 단단하기 마련이다. 최근 포스트시즌에서 세인트루이스와 샌프란시스코가 유독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사실 그렇다. 30개 팀 모두는 IF라는 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민을 안고 있듯이,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모두 저마다의 IF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 팀의 희비는 IF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 혹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IF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30개 팀 중 가장 많은 IF를 가지고 시즌을 맞이한 컵스의 2015 시즌은 매우 흥미롭다. 도전이자 기회가 될 그들의 올 시즌을 계속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