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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축구] '세계 최강' 미국과 무승부, 눈에 띄게 강해진 태극낭자
불과 2년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한 한 판이었다. 한국 여자대표팀(FIFA랭킹 18위)이 31일 미국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미국(FIFA랭킹 2위)과의 평가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경기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예감케 했다.

이 정도로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지소연, 박은선 등 황금세대를 구축하면서 아시아권에서는 강자로 떠오른 여자 대표팀이지만 아직까지 세계와의 격차는 크다는 견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월드컵 우승 2회, 올림픽 우승 4회를 자랑하는 세계최강 미국이었다. 선수들 평균 A매치 횟수가 101경기일 정도로 경험부터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상대전적(이날 경기 전까지 8전 1무 7패)에서도 한국이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태극낭자들은 강해졌다. 2년 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0-5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기억은 온데간데없었다. 짜임새를 잘 갖추면서 팀워크로, 개인 능력이 좋은 미국을 상대했고 하나의 팀으로 개개인의 차이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월드컵 직전 좋은 성과를 거둔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분석했다.

■ 완벽한 수비 조직력, '그 어떤 팀과 붙어도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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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연은 '수비의 핵'으로서 완벽한 활약을 펼쳤다.

‘공격은 팬을 부르고 수비는 우승 트로피를 가져온다’. 독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우어(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의 명언이다. 그만큼 월드컵과 같은 토너먼트 단기전에서는 수비조직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다. 하나의 실수가 탈락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수비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의 전력을 살펴보면 강력한 화력과 더불어 탄탄한 수비력을 갖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뒤쳐지는 한국의 경우 수비의 짜임새는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윤덕여 감독도 잘 인지한 듯 보인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90분 내내 안정적인 수비짜임새를 자랑했다. 여자축구의 3대 천황이라 불리는 에비 웜바크를 상대로 제대로 된 슈팅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윤덕여 호는 전반에 기존의 포백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중앙의 심서연-김도연을 중심으로 좌우 측면에 김혜리와 김수연이 서는 형태였다. 시드니 루르의 스피드와 칼리 로이드의 패싱력이 위협적인 미국의 공격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라인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국은 정상적인 수비라인을 가동했다. 보다 공격적인 수비를 펼치겠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는 완벽히 효과를 봤다. 수비라인을 순간적으로 올리면서 3선 라인과의 간격을 좁힐 수 있었고 2선의 칼리 로이드를 강력히 압박했다. 전방으로 찔러주는 킬패스가 장점인 로이드를 그대로 놔둘 경우 최전방의 웜바크와 루르에게 위협적인 찬스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원의 조소현과 권하늘은 전후좌우를 가릴 것 없이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면서 포백라인을 보호했다.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로이드도 태극낭자들의 강력한 중원압박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후반에는 능곡고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보였던 3백을 실전테스트했다. 변화를 준 직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홀딩 미드필더였던 권하늘을 빼고 중앙 수비수인 황보람을 투입시켰는데 중원에서의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 압박이 느슨해졌다. 또한 측면수비가 느슨해지며 루르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위협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신체조건 상 한국이 미국의 빠른 측면 돌파를 막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 위기를 겪은 뒤 안정세를 찾았다. 심서연이 활약이 눈부셨다. 오른쪽 스토퍼로 보직을 바꾼 심서연은 루르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미리 예측하며 잘 차단했다. 스피드에서의 열세를 적절한 수비위치로 잘 메웠다. 제공권 싸움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더 이상의 위기를 예방했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상대가 ‘전통의 강호’ 브라질이라는 점에서 3백 전환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옵션이라는 윤덕여 감독의 판단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 에이스의 품격, ‘지소연-조소현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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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 조소현(좌)-지소연(우).

현대축구에서 팀워크가 중요시되면서 개개인의 역할이 많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팀의 경기력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에이스의 존재감은 필수적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에이스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지메시’ 지소연은 한 차원 다른 클래스를 보여주며 경기를 주도했다.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훈련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며 공격을 이끌었다.

기본적으로 세컨 스트라이커의 역할로 출전했지만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았다. 주로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오며 중원 숫자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했고,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며 점유율 싸움에서 한국이 크게 밀리지 않는 데 공헌했다. 무엇보다도 유영아, 조소현 등과 펼치는 2대1 플레이는 단연 압권이었다. 탁월한 볼 소유 능력을 통해 수비진들을 유인하고, 수비들이 달려들 때 다른 선수들과의 패스 플레이를 통해 벗겨내는 모습을 통해 ‘왜 이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뽑혔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캡틴’ 조소현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포백 바로 앞에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출전한 조소현은 안정적인 조율을 통해 공격의 시발점 노릇을 했다.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템포조절은 물론 과감한 횡패스와 롱패스까지 ‘여자 기성용’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역습상황에서는 수비적인 부분을 권하늘에게 과감히 맡기고 지소연과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2선으로 치고 올라가면서 미국의 미드필더진을 힘들게 했다.

수비적인 역할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중원압박의 극치를 보여줬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날 한국은 포백라인을 가동했을 시에 수비라인을 전체적으로 올리면서 중원을 강화했는데 여기서 핵심이 조소현이었다. 로이드와의 맞대결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태극낭자의 투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동안 주장완장을 달고도 지소연, 박은선, 전가을 등에 비해 큰 부각을 받지 못했던 조소현이지만 이날 경기에서 만큼은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숨은 에이스’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 아직 남은 과제: 측면공격과 3백에서의 중원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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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전가을을 비롯한 측면자원들의 부활이 필요하다.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태극낭자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도 있다. 우선 대표팀이 자랑하던 측면공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덕여 호의 최대 장점은 지소연-박은선 투톱과 더불어 이들을 살려줄 수 있는 전가을, 박희영 등의 측면공격이었다. 전가을, 박희영의 화려한 테크닉과 스피드를 통한 측면돌파는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한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대표팀이 지소연-박은선 없이도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데에는 이 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일까. 강력한 측면공격을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윤덕여 감독은 4명의 측면자원(박희영, 강유미, 정설빈, 전가을)을 시험해봤지만 어느 누구 하나 만족스런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신체조건에서 확연히 밀리는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10cm 정도 큰 상대를 상대로 몸싸움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았고, 스피드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아직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는지 수비를 현혹시킬 개인기도 선보이지 못했다. 좌우 풀백이 과감히 오버래핑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너무 투박했다.

측면공격이 막히면서 최전방 공격수가 고립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이날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유영아에게 볼이 가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모두 조소현-지소연 등 중앙 라인이 2대1 패스로 연결해준 볼이었다. 좋은 경기력 속에서도 이렇다 할 슈팅기회를 갖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루트였지만 한 가지 방법으로는 세계무대에 도전하기 힘들다.

이와 더불어 3백으로 전환 이후의 중원조합도 풀어야 될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 후반들어 홀딩 미드필더였던 권하늘을 빼고 황보람을 투입함으로써 중원의 숫자가 하나 줄어든 상태로 3백을 치러야 했다. 중앙 수비진이 한 명 늘어남으로써 수비상황에서의 제공권과 단단함은 커졌을지 모르나 중원압박과 공격전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3백 전환 이후 조소현 만이 중원에 남게 되었는데 최대 4~5명의 미드필더와 홀로 싸우는 격이 되고 말았다. 지소연이 지속적으로 내려왔지만 체력적인 문제가 가중됐다.

윤덕여 감독은 후반 막판 중원 테크니션 자원인 이소담을 투입하며 이를 만회하려 했지만 제 역할을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3백에서의 공격전술의 핵심은 윙백들의 측면으로 벌려주고 윙 포워드들은 중앙으로 좁혀주면서 숫자싸움에 가담해줘야 하는데 이러한 점이 잘 되지 않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윤덕여 호의 3백은 충분히 통할만 한 전술이다. 특히 공격력이 강한 브라질과 같은 팀을 상대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수비를 위해 공격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내느냐가 윤덕여 식 3백의 최대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헤럴드스포츠=임재원 기자 @jaewon7280]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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