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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L현장르포] KOP의 박수와 응원가, 그리고 안필드(Anfield)
그날은, 도시가 아침부터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붉은색 머플러와 옷을 입은 채 버스에 오르고, 식당에 들어갔으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정오가 다가오자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한 장소로 모여 들고 있었다. 그날은, 3월 1일 리버풀 FC의 매치데이(Match Day)였다.

“훈련은커녕 회복조차 쉽지 않다”
리버풀은 26일 오후까지만 해도 베식타스 JK와의 유로파리그 32강전을 치르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있었다. 그런데 리버풀은 이스탄불 원정이 끝난 후 3일 만에 또다시 리그일정을 치르게 됐다. 리버풀과 이스탄불까지 거리는 2,000km가 넘고, 비행기로만 약 4시간이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연착돼 27일인 금요일 아침에서야 리버풀에 도착했다. 화요일에 홈에서 챔피언스 리그경기를 치른 맨시티에 비해 빡빡한 일정이다. 현지 언론은 리버풀이 힘든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랜든 로저스 리버풀 감독은 경기 전 “훈련은 물론이고 회복조차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들은 지금 없다”
리버풀은 3월 1일 일요일 정오에 2014-2015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PL) 27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이틀 전인 2월 27일 오전 리버풀 동북쪽에 위치한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Melwood Training Centre)는 여느 때와 다르게 한산했다. 경기 이틀 전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스포츠카로 인산인해를 이뤄야 할 주차장도 텅텅 비어 있었다. 그곳의 출입문 관리자는 “오늘 선수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며 돌아가라는 손동작을 취했다. 실제로 센터에서 재활훈련중인 주장 제라드를 제외한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스탄불 원정을 치른 후 그날 오전 5시경에 리버풀로 입국했다고 했다. 그들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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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 이틀 전, 리버풀의 트레이닝 센터 멜우드(Melwood Training Centre)는 여느 때와 다르게 한산했다.



피곤에도 불구하고 승리
3월 1일 리버풀 팬들로 가득 찬 안필드(Anfield)에 종료휘슬이 울렸다. 전광판은 2-1 리버풀의 승리를 알렸다. 팬들은 기립박수로 선수들을 맞았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팬들 때문에 진행요원들은 목이 쉬었다.

경기 전 살인적인 일정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던 로저스 감독은 “오늘 경기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의 말대로 도전을 즐긴 것일까? 선수들은 시작 휘슬과 동시에 피치 위를 저돌적으로 뛰어다녔다. 라힘 스털링(21), 필리페 쿠티뉴(23), 아담 랄라나(27)로 이어진 공격진은 피곤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다. 시티는 당황했고, 팬들은 환호했다.

실제로 본 헨더슨의 영향력
리버풀은 전진 압박을 통해 상대 수비의 실책을 유도했고 곧 결실을 맺었다. 전반 10분, 맨시티의 주장 벵상 콤파니가 페널티박스 중앙으로 날아오는 공을 걷어내지 못하고 헛발질했다. 공은 뒤로 흘렀고 곧바로 이어진 리버풀의 역습 찬스에서 조던 헨더슨(25)이 중거리 골을 터뜨렸다. 시티 수비진의 잘못도 있지만, 순전히 그의 역량으로 일궈낸 골이었다. 안필드는 헨더슨에 대한 응원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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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장 헨더슨은 오른쪽 코너킥 전담키커였다. 킥의 날카로움 등 여러모로 주장 제라드와 닮은 헨더슨은 이날 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경기 내내 운동장 전체를 누비며 공수에서 활약했다. 특히 한 번에 찔러주는 패스는 시티 수비진을 허물었다. 선더랜드에 있던 2010-2011시즌부터 헨더슨은 차세대 잉글랜드 미드필더진을 이끌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그는 리버풀에 온 후 줄곧 ‘제 2의 제라드’로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뛰어난 활동량을 자랑하고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전천후 미드필더다. 이날도 헨더슨은 11.4km를 뛰며 팀에 헌신했다.

헨더슨은 현재 팀에서 부주장을 맡고 있다. 제라드를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찬 그의 리더십에 힘입어 리버풀은 최근 9경기에서 8승 1무(승률 88.8%)로 무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헨더슨은 심판에게 거친 항의를 하다가 주의를 받았다. 그때마다 홈 팬들은 박수쳤다. 이는 아마 ‘정신적 지주’ 주장 제라드를 떠나보내야 하는 리버풀 팬들이, 팀을 위해 싸우고 헌신하는 차기 주장 헨더슨에게 보내는 응원의 박수가 아닐까(헨더슨은 3월 5일에 펼쳐진 번리와의 프리미어리그 28라운드에서도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했다).

호흡을 맞춰가고 있는 수비진
이날 리버풀 수비는 이번 시즌 총 57골로 경기당 2.11골을 기록 중인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진을 맞아 좋은 활약을 펼쳤다. 선수들이 최근 재미를 보고 있는 3백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날 선발로 나온 데얀 로브렌(26)은 유로파리그 페널티킥 실축을 보상하듯 결정적인 커팅을 몇 차례 보여주며 활약했다. 그에 대한 경기 초반의 비웃음은 환호로 바뀌었다.

로브렌과 함께 3백의 중앙을 맡았던 마틴 스크르텔(31)은 2008년 이적 후 벌써 7시즌 째 리버풀의 뒷문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디펜스뿐만 아니라 경기 내내 수비라인을 조정하며 베테랑 수비수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역시 3백을 책임졌던 엠레 칸(21)은 이적 초반 부상으로 시달렸으나, 최근 제 컨디션을 찾으며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박수를 아끼지 않는 콥(KOP)들의 열기, 그리고 안필드
헨더슨의 골로 앞서간 리버풀은 곧 맨시티에게 일격을 당했다. 전반 25분 에딘 제코가 동점골로 추격의 불씨를 살린 것이다. 홈 서포터스 석(The Kop stand) 맞은 편의 원정 서포터스 석(Anfield Road stand)이 한 차례 들썩였다. 반면 그 구역을 제외한 안필드는 조용했다. 하지만 팽팽하게 진행되던 후반 30분에 리버풀의 쿠티뉴가 스털링의 패스를 받아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하자 다시 시끄러워 졌다. 팬들은 골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 내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리버풀 선수들에게, 심판에게, 심지어 실수한 상대 선수에게도 박수쳤다. 뿐만 아니라 안필드는 환호, 응원가와 욕설이 난무해 정신이 없었다. 특이한 점은 홈 서포터 석뿐 아니라 나머지 모든 자리에서 응원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안필드는 서포터스와 가족 팬들 간의 경계가 뚜렷하게 없었다. 모두가 서포터스였고, 모두가 KOP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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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 데이(Match Day) 당일의 안필드. 할아버지 손잡고 온 어린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남녀노소가 주말 오전에 경기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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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떠나는 제라드의 머플러.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 미국 LA갤럭시로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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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탄 리버풀 경찰들이 안필드(Anfield)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매 경기 당일, 경기장에는 엄청난 병력의 경찰이 배치된다.



리버풀 팬을 지칭하는 콥(KOP)은 관람석 이름에서 유래됐다. 1906년 당시 경기장 한 쪽 스탠드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스피온 콥(Spion Kop)으로 바뀌었다. 이 스피온 콥은 원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지역 명칭이기도 한데,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스피온 콥 전투에서 랭커셔 연대소속 약 300여 명의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중에 많은 수가 리버풀 출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리자는 의미로 스탠드의 이름을 스피온 콥으로 붙였다. 이후 스피온 콥에 코파이트(Kopites)라는 별명이 생겨났고, 이 코파이트는 리버풀 팬들의 별칭이 됐다. 콥은 이 코파이트의 준말이다.

지역 라이벌 에버튼FC의 팬들 대다수가 리버풀 지역 주민인데 반해, 리버풀FC의 팬은 전 세계적으로 많고 다양하다. 리버풀의 홈 구장 안필드(Anfield)의 스타디움 투어(Stadium Tour)는 전 세계 팬들로 매일 줄을 서고, 거의 모든 홈 경기가 매진이 된다. 1884년 첫 개장한 안필드는 규모가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원정 선수들은 좁은 경기장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홈 팬들에게 주눅이 든다. 안필드에서는 경기 전 항상 리버풀FC의 주 응원가(anthem) 'You'll Never Walk Alone'이 울려 퍼진다. 뮤지컬 커로젤에서 따온 이 곡은 리버풀 출신의 가수 게리와 더 페이스메이커스가 함께 불렀다. 이 곡은 1960년대부터 줄곧 리버풀 축구 클럽의 주 응원가로 불리고 있다. 이 응원가는 다른 축구단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리버풀의 엠블럼에도 새겨져 있다.


(종료 휘슬 전후의 안필드 분위기를 촬영 한 동영상. 이 곳에서는 박수와 응원가가 끊이질 않는다.)

‘디펜딩 챔피언’ 맨시티를 잡은 리버풀은 하루 종일 축제분위기였다. 경기 후 안필드 안에 위치한 메가스토어(팬들을 위한 샵)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근처 펍(Pub)에서는 응원가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리버풀 시내에서는 하루종일 빨간 머플러와 옷을 걸친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그들의 주말은 축구로 시작해 축구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낸 리버풀은 3일 뒤 연달아 펼쳐진 번리와의 경기에서도 2-0으로 승리했다. 3월 초부터 승점 6점을 챙긴 리버풀은 승점 51점으로 5위에 올랐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와 승점 차는 불과 2점이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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