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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택 관전평] 구력은 무시 못한다…동부 '짠물농구' 이끈 박지현
24일 경기 결과 : 원주 동부(25승 13패) 69-63 부산 KT(19승 20패)

양팀 모두 썩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한판이었습니다. 경기 초반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사이먼과 김주성을 앞세운 동부에 KT가 빠른 농구로 맞섰고, 여기에 김승원이 힘을 보태는 구도가 볼만했습니다. 하지만 2쿼터부터 전반적으로 양팀 외국 선수들이 처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템포가 루스해지고 말았습니다. 동부는 3쿼터 초반 벌어진 점수차를 유지했다면 경기를 더 쉽게 풀 수 있었을 텐데, 좀체 득점이 더 터지지 않으면서 막판까지 힘든 싸움을 했습니다.

이는 매 경기가 중요한 시즌 막판에, 체력적 부담이 심해지며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특히 KT는 이날이 어웨이 경기였던 데다 요즘 6강 경쟁에 대한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고, 동부 역시 혹 중위권 싸움에 휘말릴까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입니다.

누가 누가 더 짰나
양팀의 경기력이 모두 저조한 상황에서, 결국 ‘짠물농구’가 승리의 관건이 됐습니다. 누가 더 짜게 농구를 해서, 안 그래도 저조한 서로의 경기력을 말려버렸는가, 이것이 승부를 갈랐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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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산성을 뚫고.' 24일 경기에서 조성민이 김주성(왼쪽)과 사이먼(오른쪽 이상 동부) 사이에서 빠져나갈 곳을 찾고 있다.

동부는 이날 조성민 봉쇄에 성공했습니다. 농구팬들이 ‘동부산성’이라는 말을 흔히 하시는데, 동부 수비의 강점은 결국 다년간 숙성된 선수들 간의 호흡에 있습니다. 동부는 한 번의 수비 상황에서도 존 디펜스를 서다 갑자기 대인방어로 변형을 주는 등 조직력 없이는 구현할 수 없는 수비를 보여주는 팀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지역방어를 잘 서는 팀인데요, 동부 지역방어는 맨투맨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매치업 존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대인방어 시에도 동부는 다른 팀들과는 달리 스위치 맨투맨을 잘 사용합니다. 스위치 맨투맨은 보통 미스매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 따르는데, 동부는 이를 빠른 로테이션으로 극복해냅니다. 역시 선수들 간 호흡이 맞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전술입니다.

사실 KT는 그간 이러한 동부의 수비에 비교적 잘 대처해온 팀입니다. 경기당 평균 34.5개로 리그 8위에 불과한 리바운드 개수가 동부만 만나면 37개로 증가하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높이에서 약세를 보이던 KT가 비교적 박스아웃에 취약한 동부 지역방어의 맹점을 잘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동부는 이점도 잘 보완해낸 듯 이날 KT에게 29개의 리바운드밖에 내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었지만 김창모, 김종범 등이 조성민을 아주 타이트하게 수비하면서 KT 공격의 한 축을 막아놓은 게 749일 만의 대 KT전 홈경기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짬밥은 무시 못한다
경미한 다리 부상이 있었다던 동부의 리처드슨이 이날 무득점, KT 찰스 로드도 4쿼터를 제외하면 6득점으로 침묵한 사이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2쿼터에는 동부 김종범(10득점), KT 윤여권(13득점) 등이 힘을 냈고 오용준(9득점) 역시 3쿼터 3점슛 두 방으로 KT 추격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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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팀 내 최다 19득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끈 박지현(동부).

특히 이날 경기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끈 동부 박지현(19득점)은 역시 ‘짬밥은 무시 못한다’는 시쳇말을 새삼 일깨웠습니다. 득점뿐만 아니라 막판 승부처에서 박지현이 보여준 경기 운영 능력의 노련함은 결국 구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돌파와 리딩 능력이 뛰어난 박지현의 존재는 ‘높이’로 대표되는 동부의 팀 컬러가 결코 가드진의 무게감을 지울 수 없도록 만듭니다.

반면 부상에서 돌아온 'KT 대표 짬밥' 송영진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져보입니다. 송영진 같은 선수는 특히 감독들이 사랑하는 선수입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플레이스타일이 감독들로 하여금 전술 운용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더구나 나이도 많은 선수가 그렇게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고 몸을 날려주면 감독 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KCC 코치로 가 있는 추승균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지도자 입장에서는 이런 선수들이 더욱 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KT가 에반 브락의 일시 대체선수로 야심차게 데려온 레지 오코사 역시 KBL 짬밥이 세 시즌 정도 되는 선수인데요, 지켜본 바로는 전성기가 지난 데다 몸상태도 100%는 아닌 것 같아 적응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외국리그에 비해 KBL은 빠르고 섬세한 농구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예전에 뛰어본 적이 있더라도 다른 리그에서 뛰다 오랜만에 돌아오면 적응기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용호상박’ KT와 전자랜드
7연승의 창원 LG가 6강권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KT와 인천 전자랜드가 남은 6강 한 자리를 두고 다툴 거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두 팀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많이 뛰는 농구를 하는 팀입니다. 선수들 간 면면을 비교해보면 1대1능력에 있어서는 전자랜드가 좀 더 낫다고 보는데, 시즌 개막 전만 해도 약체로 평가받던 KT가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조직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용호상박’ 두 팀에다 오세근을 앞세워 치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는 안양 KGC인삼공사까지, 6강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참으로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팬 여러분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되겠네요. 이럴 때일수록 희비는 작은 것에서 갈리기 마련입니다. 결국 집중력과 근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팀이 웃게 될 것입니다.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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