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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는 대로 해라" 양동근을 진화시킨 유재학의 '가드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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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최고 가드로 우뚝선 양동근은 매 시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울산 모비스 양동근은 지난 27일 SK전 직후 "나는 패스를 잘하는 가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시즌 30경기에 모두 나서 어시스트 부문 리그 1위(경기당 평균 5.7개)를 달리고 있는 선수치고는 겸손한 수사다. 특히 이날 양동근은 적재적소에 알토란 같은 패스로 무려 11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SK 수비를 무력화시켰다. "(11개의 어시스트는)선수들이 내 볼을 잘 받아 넣어준 덕분"이라는 양동근의 말에 오죽하면 팀 동료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본인이 왜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을까.

사실 양동근은 한양대 재학 시절만 해도 '정통 포인트가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애매한 점이 많았다. 무게감 있는 돌파로 득점력이 준수해 이름을 떨쳤으나 포인트가드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리딩 능력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당시 양동근을 지도했던 고 김춘수 감독도 "(양)동근이의 돌파는 프로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지만 경기를 보는 시야를 더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한 뒤에도 양동근은 강동희-이상민-김승현으로 이어지는 포인트가드 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 감독의 말처럼 나무랄 데 없는 공격력은 태평양 건너 길버트 아레나스(전 워싱턴 위저즈)와 함께 떠오른 '듀얼 가드'라는 개념 속에 양동근을 포함시켜줬지만, KBL을 대표하는 '1번' 타이틀까지 갖다주진 못했다. 그리고 3년 뒤, 한국농구 포인트가드 계보는 '6년 주기설'과 함께 김태술(현 전주 KCC)이 이어받았다.

하지만 지금, 양동근은 당당히 우리나라 최고의 가드로 우뚝 서있다. 김승현의 그늘에 가려 프로 초년기를 보냈지만 매 시즌마다 성장을 멈추지 않은 결과다. 게다가 한국나이로 서른다섯이 되어가는 올시즌에도 계속 진화하는 느낌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양동근의 진화는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의 포지션 간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공격형 가드가 대세로 떠오른 현대 농구의 흐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뒤에는 '만수' 유재학 감독이 있었다. 양동근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프로 인생의 전부를 유 감독과 함께 했다. 성실함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양동근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 감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양동근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1998-1999시즌, 만 34세의 나이에 프로팀 감독(인천 대우)으로 데뷔한 유 감독은 현역 KBL 최장수 감독이다. '만수'라는 별명 역시 1991년 연세대 코치 생활부터 20년 이상의 풍부한 지도자 경험에서 우러나왔을 터. 하지만 그 이전에 유 감독은 연세대와 기아농구단을 대표하는 명가드였다. 경복고 시절부터 유 감독의 리딩 능력은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컴퓨터 가드'로 명성을 떨치던 이상민 서울 삼성 감독 역시 현역 시절 "유재학 감독님 같은 가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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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천재 가드'로 이름을 떨쳤던 유재학 감독.

양동근은 "플레이를 할 때 '어떻게 해야 겠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지 않는다"며 "농구를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께서 항상 '보이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상대가 떨어지면 쏘고, 붙으면 제끼고, 찬스가 나면 (패스를)주라는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택한 유 감독이 생각하는 가드의 역할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현주엽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실소와 함께 "그것만 잘해도 아무도 못 막는다"고 거들었다.

양동근은 스승의 조언을 성실함과 노력으로 흡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쯤되면 유 감독이 선수 시절에 못다피운 꽃을 양동근이 대신 피워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유 감독은 소속팀의 190cm 장신 가드 이대성을 정통 포인트가드로 키우겠다는 복안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팀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국 농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장신 가드를 키워야 한다"는 유 감독의 비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인천AG 우승 이후 한국 농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조언을 던지는 유 감독이다. 가드로서 경기를 보는 눈, 나아가 한국 농구계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까지. 유 감독은 농구계가 오래도록 품어야할 귀중한 자산이다.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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