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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8)제주도가 낳은 국보급 손목-양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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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은 개인적으로 정말 아끼는, 아니 사제지간을 떠나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다. 그래서 이 [사람人레슨]에서는 좀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쓰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JGTO) 퀄리파잉스쿨을 빼어난 성적(4위)으로 통과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축하 차원에서라도 양용은 얘기를 하기로 했다. 아직 언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하니 향후 기회가 되면 양용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다른 시각에서 2편을 쓸 생각이다.

동양인 최초의 미PGA 메이저 챔프(2009년), 그리고 이어진 끝이 없어 보이는 나락, 40도 훌쩍 넘긴 나이. 이 정도면 웬만한 선수는 이겨 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양용은은 그 추락 속에서 부활의 단초를 마련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중간에 나뭇가지 하나를 잡고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 느낌이다. 처절하고, 감동적이다.

양용은을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일 게다. 그가 프로가 돼서 제주도에서 서울로 막 왔을 때이니 말이다. 당시 필자는 기흥에 있는 골드CC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이곳에서 양용은은 오랫동안 먹고, 자고, 골프를 했다.

첫 인상부터 참 마음에 들었다. 일단 체격이 듬직하고, 얼굴도 순박한 느낌과 함께 강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스윙을 보고는 더 만족스러웠다. 이유는 ‘타고난 손목감각’ 때문이었다. 양용은의 스윙은 엄청나게 부드럽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강하다. 골프에서의 강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이 ‘부드러운 강함’은 바로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정확성을 만들어내는 유연한 손목에서 비롯된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이런 건 좀 타고 나는 구석이 있는 듯 싶다. 이것이 양용은 골프의 첫 번째 강점이다.

이 손목 감각과 관련해서 필자가 경험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줄곧 기흥에서 함께 생활하는데 한때 내 캐디백과 양용은의 것이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우정힐스 골프장(천안)으로 라운드를 나가는데 그만 양용은의 캐디백을 가져간 적이 있다.

뭐 대회도 아니고, 아시는 분들과의 편안한 라운드이니 그냥 그 채로 쳤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한국과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레슨까지 그토록 많이 했는데 필자에게 이런 채는 처음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골프채가 아닌 완전히 해머 같았다. 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프로들은 무슨 의미인지 다 알 것이다. 단순히 강하고,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대체 때릴 때 감이 오지 않았다. 프로는 볼을 치면 스위트 스팟에 맞았는지, 두껍게 때렸는지 뭐 그런 느낌이 탁 온다. 그런데 이 채는 위인지, 아래인지 볼이 도대체 클럽의 어느 부분을 맞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라운드를 마치고 아카데미로 돌아오자 마자 양용은 프로를 불렀다.

“양 프로, 당장 내일 피팅샵 가서 네 클럽 다 손봐라.”

“왜요?”

“나는 네가 그 채로 공을 그렇게 잘 쳤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감이 참 없는 채야. 피팅 받으면 모르긴 몰라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양용은 프로는 이 해머같이 둔한 채로도 제법 골프를 잘 쳤다. 그만큼 감각이 발군인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못한다.

두 번째 양용은 골프의 강점은 ‘무딘(낙천적인) 성격’이다. 도대체가 삶이건 투 어대회이건 프레셔(긴장)를 느끼지 않는다. 맞다. 프로는 좀 무딘 게 있어야 승부에 도움이 되는 법이다. ‘붉은색 공포증(타이거 우즈가 4라운드는 붉은 색 상의를 입고 맹위를 떨친 반면 동반자들이 무너지곤 했던 현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시절, 양용은이 PGA챔피언십에서 되레 우즈에게 역전승을 거둔 것도 이 성격 덕이다.

그날, 그러니까 2009년 8월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필자는 오전에 TV중계를 보다가 일본행 비행기를 타러 나갔다. 일본 시니어투어 대회에 출전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도착하니 한국기자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사적인 사건인 양용은의 메이저 챔프 등극에 대해 스승으로 한 마디 해달라는 것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나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건 모두 양용은의 무딘 성격 덕이다”라고.

양용은은 마음이 참 착하다. 평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안다. 화도 잘 안 내고, 남의 탓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한창 유행했던 ‘의리’도 확실하다. 이것이 경기에 고스란히 녹아난다. 선수는 공을 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있어야 한다. 양용은은 이걸 잘 한다. (3)편에 소개했던 배상문과는 정반대다. 털털함 그 자체인 것이다. 이번 JGTO 시드전도 이런 성격이 없다면 부담감에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무너진 선수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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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의 미소 하나만 봐도 양용은의 사람좋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낙천적이고 털털한 성격은 양용은 골프의 두 가지 장점 중 하나다. 사진제공=와이이스포츠


내친 김에 단점도 하나 지적하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점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스타일인데 양용은의 경우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선수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먼저 연습을 무지하게 하는 타입이다. 한국선수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골프대디, 골프마미 아래서 어려서부터 기계처럼 훈련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하지만 연습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연습량이 줄 수도 있고, 또 연습을 많이 해도 슬럼프가 온다. 이 경우 이겨내기가 참 힘들다. 미리부터 투어생활을 즐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두 번째는 연습은 적지만 감각적으로 볼을 잘 치는 선수가 있다. 여자선수로는 강수연이 그렇다. 정말이지 손감각이 빼어나다. 이런 타입은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감각이 나빠질 수 있다. 적당한 연습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단, 감각만 믿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쉽게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니 주의해야 한다. 양용은은 후자에 속한다. 앞서 손목 감각을 언급했듯이 양용은은 공을 다루는 감각이 정말 빼어나다.

한 번은 일반인과 주니어 들을 상대로 쇼케이스 시범을 한 적이 있다. 1m 나무 위에 볼를 놓고 드라이버로 하늘을 향해 샷을 하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양용은은 이 시범에서 구경꾼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볼이 200m쯤 하늘을 향해 치솟았는데 더 놀라운 것은 낙하지점이 불과 2m 앞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걸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반복해서 보여줬다. 천부적인 감각, 부드러움을 겸비한 손목 파워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범이다.

양용은의 슬럼프에는 여러 가지 곡절이 있는 것으로 안다. 타고난 감각이 빛을 발하도록 만드는 연습이 부족했을 수 있다. 혹은 그 좋은 성격이 어떤 이유에서든 스트레스로 쪼그라 들었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양용은의 골프감각이 정말 뛰어나다. 그리고 인간성도 참 좋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고, 지금은 바닥을 치고 다시 몸을 일으켜야 할 때다. 필자는 양용은의 재기를 믿는다.

끝으로 그의 재기를 위해 한 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 아니 필자보다 더 나은 점이 많은 프로골퍼인 까닭에 선배의 조언이라고 하고 싶다.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다.

골프는 그렇다. 샷이 안 될 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립, 어드레스, 백스윙 등을 다 체크해야 한다. 다른 때는 무딘 것이 장점이겠지만 이럴 때는 좀 세심해야 한다. 처음에 잘 안 되도 꾸준히 그렇게 하다 보면 다시 자신감이 들고 예전의 샷이 나온다. 연습량도 예전보다는 늘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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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이날을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바람의 아들'이 포효하고, 타이거 우즈는 고개를 숙였다.. 다시 이런 날이 올 수 있다. 사진제공=와이이스포츠


양용은의 경우 워낙에 타고난 감각이 좋고,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 있기에 기본으로 돌아가 착실히 준비하면 금새 미국투어를 호령할 찬스가 올 것이다. 타고난 체력도 원체 좋은 까닭에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양용은은 제주도에서 어렵게 골프를 했다. 강한 의지 하나로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 우승자가 됐다. 아직 양용은 골프의 막을 내리기에는 그의 감각이 너무도 아깝다. 그리고 그 사람좋음도. 양용은 프로의 일본 Q스쿨 통과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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