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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디오 판독 1년, MLB는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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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확대 시행된 비디오판독 (사진=OSEN)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장면 1: 2012년 디트로이트와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 8회 2사까지 11탈삼진 1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펼친 구로다는, 2사 1루 상황에서 잭슨에게 우전 안타를 내줬다. 하지만 1루 주자 인판테가 무리하게 3루를 노리며 오버런을 범했고, 2루로 돌아가는 사이 공은 양키스 2루수 카노의 글러브로 먼저 향했다. 인판테는 태그를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양키스타디움의 모두는 이닝 교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2루심 제프 넬슨은 확신에 찬 듯 2루 베이스를 가리키며 연신 세이프 콜을 외쳤다. 현지 중계진의 느린 화면은 아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팬들의 야유와 지라디 감독의 항의에도 판정이 번복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로건이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며 구로다의 실점은 3실점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양키스는 오심이 개입하며 디트로이트로 넘어간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0-3으로 패했다.

#장면 2: 2014년 월드시리즈 7차전. 2-2로 맞선 3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 2루수 조 패닉은 호스머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 후 글러브 토스로 1루 주자를 잡아냈다. 이어 패닉의 토스를 받은 크로포드의 1루 송구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가 선언. 하지만 브루스 보치 감독은 챌린지를 신청했고, 3분 가까이 진행된 비디오 판독 끝에 판정은 아웃으로 번복됐다. 1사 주자 1루는 2사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당시 마운드에 있던 제레미 아펠트는 비디오 판독 덕분에 범가너로 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8월, 홈런 타구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작된 비디오 판독 리플레이는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 판정을 제외한 포스 아웃, 태그 플레이 등 총 13개 부분으로 확대 시행됐다. 야구와 기계와의 만남. 일각에서는 야구의 자연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속출하는 오심 속에 ‘오심도 야구의 일부다’라는 논쟁이 당연시되는 풍토에 반기를 드는 여론이 형성됐고, 야구 고유의 가치 이전에 스포츠 자체의 공정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비디오판독 확대 시행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2시즌을 앞두고 홈런 이외에 외야수들의 원바운드 처리와 파울 여부 그리고 팬의 경기 방해 등 3가지 조항을 추가 하자는 의견이 개진됐으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결정을 1년 보류하기로 했다. 자신들의 권위가 추락할 것을 염려한 심판진의 반대가 극심했으며, 극소수이긴 하나 중계가 되지 않는 경기와의 형평성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오심 논란은 심판들이 지키고자 했던 권위의 명분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또한 사무국은 300억 이상을 투입해 메이저리그 30개 전 구장에 각각 12대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으로 공정함에 대한 논란을 지워버렸으며, 중계 카메라에서 독립된 그들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는데도 성공했다.(이는 중계 화면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 프로야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비디오판독 확대 논의는 지난 시즌 중반 재개됐으며, 세부 규칙을 정리한 뒤 올 1월 확대 시행이 최종 확정됐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올 시즌 비디오판독 요청은 포스트시즌 포함 총 1276차례 나왔다.(정규시즌 1268차례, 포스트시즌 8차례) 이 중 판정이 유지된 경우가 668차례(47.65%)로, 번복된 경우(608번, 47.65%)보다 근소하게 많았다. 상황별로는 포스 아웃 플레이 과정이 490차례(38.4%)로 가장 많았고, 태그 플레이에 관한 요청이 그 뒤를 이었다.(430차례,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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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으로 번복! (사진=OSEN)


비디오판독 확대의 가장 큰 성과는 ‘공정함’이라는 단어가 그라운드에 발을 디딘 것이다. 판정에 대한 불만은 고성이 오고 가는 격렬한 항의 대신 본인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당연히 경기 후의 오심 논란도 크게 줄어들었다. 무분별함을 막기 위해 최초 신청 횟수는 1회로 제한(성공시 1회 추가)됐지만, 챌린지 타이밍이 감독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뒷맛이 개운치 않은 승리와 억울한 패배 모두 상당 부분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비디오판독 확대는 선수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플레이를 요구했다. 지난 6월, 콜로라도 원정경기에 나선 맷 켐프는 7회 선두타자로 나서 담장을 직격하는 장타성 타구를 때려낸 뒤 비교적 여유 있게 2루에 안착했다. 그런데 잠시 후 콜로라도 벤치에서 챌린지를 신청했다. 이유모를 챌린지 신청에 모두가 당황하는 상황. 당시 현지 중계진에서는 홈런을 확신한 켐프가 1루 코치와 하이파이브하는 상황을 문제 삼았으나, 콜로라도 벤치의 챌린지 요청은 2루 세이프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비디오판독 결과 켐프가 슬라이딩 과정에서 무난히 2루 베이스에 안착한 뒤, 베이스 위의 발을 오른발에서 왼발로 옮겨가는 순간의 찰나에 유격수 툴로위츠키의 글러브가 켐프의 허벅지를 태그하고 있었다. 판정은 아웃으로 번복됐고, 켐프는 허탈한 미소와 함께 덕아웃으로 향해야 했다.

심판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1루 견제에 선 채로 들어가는 상황에서의 세이프 판정, 포스 아웃 판정이 송구를 받기 전에 발이 미리 베이스에서 떨어졌다는 이유로 판정이 번복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비디오판독 확대 시행 전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상황으로, 선수들의 안일할 플레이와 유사시 당연시돼 온 심판들의 판정에 새로운 경종을 울리는 장면들이었다.

비디오판독 확대는 직, 간접적으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시즌 전 병살타 과정에서의 부상 방지를 위해 2루수가 미리 베이스에서 발을 떼는 ‘네이버후드 플레이’는 비디오판독의 요청 대상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포스 아웃 과정에서 송구의 방향과 2루 포구시 주자와의 거리 등 애매한 기준에 대해 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했다. 실제 4월 3일 컵스와 피츠버그의 경기에서 2루수 앞 병살타가 유격수의 발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포스 아웃이 세이프로 번복되는 판정이 나왔다. 이 판정은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판례와 같은 역할로 작용하게 되면서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시즌 중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네이버후드 플레이’에 대한 비디오판독을 전면 금지한다고 못 박으면서 논란이 사그라들었지만, 향후 부상 방지를 위한 플레이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이냐에 대한 정확한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올 시즌 처음 도입된 트랜스퍼 룰과 홈 충돌 방지법 역시 비디오판독으로 판정이 뒤집히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디오판독 확대는 성공적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앞서 언급한 공정함은 물론 선수, 감독과 심판 사이의 불신의 여지를 없앨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또한 비디오판독이 경기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면서, 야구 고유의 흐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추가됐다는 평가가 시즌 내내 상존했다. 당초 경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으나, 평균 2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판독이 마무리되면서 항의로 시간을 지체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되레 승부처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디오판독은 팬들의 재미를 한껏 드높이는 효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챌린지 신청 횟수를 제한하고, 비디오판독으로도 분간이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기존의 판정을 고수하기로 하는 등 심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판독 여부의 결정을 위해 감독들이 시간을 끄는 모습 등과 같이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으며, 여전히 기계의 힘을 빌린다는 점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비디오판독은 정확하고 정당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으며, 야구라는 스포츠를 보다 완벽한 드라마로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느덧 1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지만, 비디오판독은 그렇게 경기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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