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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프란시스코 가을야구는 헌터 펜스의 리더십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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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강력한 리더십, 헌터 펜스.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2년 전 디비전시리즈 3차전. 샌프란시스코는 신시내티에게 홈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내줬다. 와일드카드 단판승부 도입 첫 해였던 2012년은 일정상의 문제로 상위 시드를 받은 팀이 3,4,5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기형적인 일정으로 디비전시리즈가 치러졌었다. 이에 샌프란시스코는 남은 원정 3연전을 모두 승리해야하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홈 2경기에서 14실점을 하는 사이 단 2득점에 그치면서 참패를 당한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레이트아메리칸 볼파크로 장소를 옮긴 3차전. 경기를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덕아웃에서는 헌터 펜스의 주재 아래 미팅이 열렸다. 메이저리그에서 경기 전 덕아웃 미팅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며, 이를 주도한 이가 불과 2개월 전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팀에 합류한 펜스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FOX’에 따르면 펜스는 당시 미팅에서 어깨동무를 한 동료들에게 서로의 눈을 쳐다보라고 다그친 뒤 “우리는 아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로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은 펜스의 미팅이 팀 분위기 회복에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으며, 실제 신시내티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에 성공하며 디비전시리즈를 통과했다. 펜스가 주도한 미팅은 월드시리즈에서도 이어졌다. 1차전을 앞두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요구하는 펜스의 모습과 이에 동조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샌프란시스코의 팀 케미스트리는 새삼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펜스의 미팅이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로부터 전력의 열세를 평가받았던 샌프란시스코는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의 저스틴 벌랜더를 무너뜨린 데 이어 내리 4연승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지난해 정규시즌 종료를 하루 앞둔 9월 29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경기 시작을 약 2시간 앞두고 펜스와 5년간 9000만 달러의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펜스는 시즌이 끝나면 FA 시장에 나올 수 있었기에 시기상으로 다소 의외의 소식이었다. 펜스와 구단이 일찌감치 연장 계약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펜스의 의중이 다분히 반영된 결과였다. 펜스는 FA 시장에 나가는 대신 홈 디스카운트를 감수하고라도 팀에 남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구단에서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5년간 9000만 달러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였으나, 연봉 인플레 현상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FA 시장에 펜스가 나선다면 1억 달러 이상의 계약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리고 올 시즌. 펜스는 팀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출장에 나서며 팀을 이끌었다. 지난 2년으로 범위를 넓혀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2년 연속 전 경기 출장에 성공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시즌 성적은 .277의 타율과 20홈런 74타점으로, 홈런과 타점에서 포지의 뒤를 이은 팀 내 2위의 성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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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펜스는 언제나 허슬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번 캔자스시티와의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타선의 키는 산도발과 펜스였다. 샌프란시스코는 팀의 리드오프인 파간이 9월 중순 시즌 아웃된 상황으로, 지난 2년간 부상으로 도합 150경기 이상 결장한 그의 존재 유무에 따라 타선의 기복이 대단히 심한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팀의 중심타자인 산도발과 펜스의 배드볼 히터 성향이 한몫을 차지했는데, 공격의 활로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슬럼프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공격 성향은 팀 타선 전체의 침체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앞선 포스트시즌과 같이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가을만 되면 ‘전성기의 게레로’로 빙의하는 산도발은 22일 1회초 1사 1,3루 기회에서 쉴즈의 원 바운드 성으로 낮게 떨어지는 너클 커브를 잡아당겨 1타점 2루타를 때려냈다. 후속타자는 펜스. 샌프란시스코로서는 산도발의 타구 때 1루 주자인 포지가 홈에서 아웃당하며 자칫 묘한 흐름 속에 1회말 수비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쉴즈와 풀 카운트 접전을 펼친 펜스는 7구째 93마일 패스트볼을 정확히 받아쳤고, 타구는 가운데 담장을 넘는 2점 홈런으로 연결됐다. 샌프란시스코의 선발이 메디슨 범가너였음을 감안하면 시작과 함께 경기 흐름을 움켜쥘 수 있었던 값진 홈런이었다.

펜스는 4회초 추가 2득점이 시발점이 된 선두타자 2루타를 터뜨린 뒤, 마이클 모스의 적시타 때 홈까지 밟았다. 이날 기록은 3타수 2안타 2볼넷 2타점 2득점. 이번 가을 들어 첫 멀티 타점을 기록했으며, 월드시리즈 통산 5번째 경기 만에 첫 홈런포까지 쏘아 올렸다. 1차전은 7-1 샌프란시스코의 완승.

샌프란시스코의 2010년 월드시리즈 우승은 뉴욕 자이언츠 시절인 1954년 이후 56년 만에 처음이었다. 올 시즌까지 20번의 월드시리즈 진출 가운데 15차례가 1954년 이전에 이룬 업적이었을 만큼, 샌프란시스코로의 연고지 이전 이후 2010년 이전까지 그들에게 가을 강자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10년 월드시리즈 우승과 2012년 엘리미네이션 경기 6연승에 이어 올 시즌까지, 샌프란시스코는 어느덧 가을 야구의 단골손님이자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벼랑 끝에 몰린 2012년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이었으며, 헌터 펜스의 리더십이 팀 특유의 끈끈함을 형성하는데 있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올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직후, 펜스는 AT&T 파크를 가득 메운 관중을 상대로 선수단을 대표해 포스트시즌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종목을 불문하고 외부에서 영입된 선수가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며, 역설적으로 이 같은 팀의 성향이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퀴벌레’ 군단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헌터 펜스의 리더십은, 어쩌면 29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캔자스시티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일지도 모른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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