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과 같은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란 쉽지 않다. 2관왕을 차지하는 건 그보다 몇 배 더 힘들다.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있다. 바로 한국의 유일한 4관왕, 볼링 여자 국가대표 이나영(27)이다.
한국 나이 올해 29살. ‘늦은 나이’라는 타이틀에 익숙한 그는 작년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5년 부천대학에 입학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실력을 쌓은 이나영은 2007년 졸업 후 대전시청에서 실업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전국체육대회 볼링 여자 일반부 5인조 금메달을 시작으로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국가대표의 문턱에서는 번번이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양궁처럼 볼링도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세계대회 입상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계속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채 야속한 세월만 보내는 이나영에게 가장 힘든 것은 부상이었다. 그는 부상을 달고 살다시피했다. 나이를 먹으니 회복도 아주 더뎠다. 작년부터는 무릎 안쪽 근육이 줄곧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무릎 부상이 재발됐다. 또 다시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이나영은 이때 팀 감독과 상의해서 컨디션 관리에만 힘썼다.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어떤 대회도 치르지 않기로 했어요. 완전히 도박을 한 거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4관왕의 시작이었던 사진. 볼링 여자 2인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이나영(왼쪽)이 손연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인천 아시안게임 공식홈페이지
“제 키가 크진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꾸준히 에버리지(10프레임 평균) 200점대를 웃돌았다. 꾸준함의 바탕은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그는 경기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눈을 감거나 바닥을 본다. 그러면서 차고 있는 목걸이와 반지를 더듬는다. 목걸이와 반지는 각각 아버지, 어머니가 사준 선물이다. 그는 목걸이와 반지를 지니고 있으면 든든하고 힘이 난다고 했다.
경기장 밖에서 그가 좋아하는 단어는 ‘노력’이다. 그의 어릴 적 침대 머리맡에는 ‘노력한 만큼 꿈이 이뤄진다’는 목판이 걸려 있었다. 이것도 아버지가 선물해 준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구예요. 최고는 그만큼의 노력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제 자신이 흐트러질 때마다 그 문구를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이나영은 프로로 전향할 생각이 없다. 할 수 있으면 지금처럼 국가대표를 오래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처럼 국민에게 행복을 드리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볼링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금메달 외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 대회도 축구, 수영, 체조 등 인기종목에 밀려 TV중계가 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볼링은 과거에 비해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한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쉽게 보였던 볼링장도 대부분 사라졌다. 소수 동호인의 참여가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과분한 성적을 냈다. 그녀의 꿈은 소박하다.
"이번 대회 4관왕을 계기로 볼링선수들이 좀더 국민의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나영의 싸움은 상대선수, 자기자신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지금 비인기종목이라는 무관심, 편견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천=지원익 기자(A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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