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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저스의 든든한 보험, 저스틴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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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누군가는 FA 대박을 맞고, 다른 누군가는 새 둥지를 찾아가는 오프시즌. 저스틴 터너는 지난해 12월 초 발표된 뉴욕 메츠의 논텐더 명단에 포함됐다. 논텐더는 구단이 연봉조정 신청자격을 갖춘 선수들에 대해 다음 시즌 재계약을 포기하는 것을 통보하는 것으로 사실상 방출의 성격을 띠고 있다.

터너의 논텐더는 다소 의외였다. 주로 백업으로 출전했으나 86경기에 나서 기록한 .280의 타율은 데뷔 후 가장 높은 성적이었으며, 유틸리티 맨으로서 내야의 전 포지션을 백방으로 뛰어다닌 그는 분명 팀에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메츠는 그의 땅볼 타구 처리 능력을 문제 삼으며, 터너가 1루까지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논텐더 방출을 결정했다. 터너는 지난 5월 메츠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방문한 시티필드에서 논텐더 방출 당시 감정을 ‘쇼킹했다’라는 말로 정리하기도 했다.

스프링캠프가 임박한 1월 말. 터너는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터너는 미네소타와 보스턴으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터너는 아메리칸리그가 아닌 투수가 타석에 들어섬으로서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내셔널리그 행을 원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마이클 영이 은퇴를 고려하고 있으며, 슈마커와 푼토가 팀을 떠남으로서 백업 멤버가 약화된 다저스의 상황을 인지하고 내심 고향팀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터너는 LA의 위성도시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출신이다.

그런데 터너의 고민을 덜어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1월 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풀러턴 캠퍼스 졸업생들 간의 이벤트 경기에 나선 터너는 그 곳에서 우연히 다저스의 벤치 코치인 팀 월락을 만나게 된다. 터너는 대학 선배인 월락에게 본인의 현 상황을 전달했고, 월락은 매팅리와 콜레티 단장에게 터너의 뜻을 전했다. 물론 터너의 진로가 바로 결정될 수는 없었다. 당시 다저스의 최대 현안은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마이클 영과의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월의 마지막 날 영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은퇴를 선언했고, 터너는 며칠 후 다저스로부터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터너는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신분으로 다저스의 부름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대학시절까지 자란 그로서는 고향으로의 복귀인 셈이었다. 터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된다’며 설레는 감정을 안고 스프링캠프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의 다저스 입단이 금의환향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다저스가 터너를 영입한 것은 쿠바에서 영입한 알렉스 게레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레로가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위한 수업을 받는 동안 터너를 디 고든과 2루 자리를 두고 플래툰 시스템으로 활용하는 것이 터너 영입의 주된 목적이었다. 또한 지난해 닉 푼토와 스킵 슈마커가 담당했던 유틸리티 맨으로 후안 유리베 등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챙겨주기 위한 대비책의 성격도 강했다. 다저스의 터너 영입 케이스는 스프링캠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정규시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장치였던 셈이다.

터너가 다저스와 맺은 계약은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인 마이너리그 계약이었다. 미구엘 로하스, 숀 피긴스 등 본인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질 최소한의 임무나마 수행하기 위해서는 스프링캠프에서의 성적이 대단히 중요했다. 그가 시범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19경기에 출전해 타율 .389. 단 두 타석에만 들어선 2007년을 제외하고 자신의 개인 통산 스프링캠프 최고 성적이었다. 매팅리 감독은 공수에서 그의 활약에 만족감을 표했고, 터너는 개막 25인 로스터에 진입하게 된다.

터너는 호주 개막전에 2번 타자겸 2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볼티모어 시절인 2009년 데뷔 이후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것은 올 시즌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5회 웨이드 마일리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때려내는 것으로 올 시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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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한 터너는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1일(한국시간)까지 .325의 타율과 4홈런 31타점을 기록하며 다저스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특히 올 시즌 두 차례나 부상자명단에 등재된 후안 유리베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주고 있으며, 되려 그의 부상 이탈을 기회로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초반 출전 기회가 드문드문했던 터너는 유리베가 5월 말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한 후 주로 선발로 나서며 28경기에서 .349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이전 .230에 불과했던 터너의 시즌 타율은 .293까지 치솟았다. 터너가 주로 선발로 나선 6월은 다저스가 본격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맹추격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유리베가 복귀하자마자 부상으로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있었던 터너는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 돌아왔다. 그리고 유리베가 햄스트링 부상 재발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8월 중순 이후에도 터너는 31일까지 11경기 중 10경기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425의 타율을 기록했다. 규정타석에는 미치지 못하나 어느덧 .325까지 오른 타율은 팀 내 1위 기록임과 동시에 유일한 3할 타율이며, 유리베에게는 다소 미치지 못하나 무난한 3루 수비도 선보이고 있다. 당초 다저스의 계획대로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위해 내야의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부지런함도 잊지 않고 있다.

역시 터너의 진가는 공격력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그가 현재 기록하고 있는 .325의 타율은 데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394의 출루율과 .449의 장타율, 그리고 .843의 OPS까지 모두 데뷔 후 처음 경험하는 숫자들이다. 공격력에서 만큼은 유리베(타율 .294, 출루율 .321, 장타율 .414, OPS .735)에게 결코 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좌완(.301)과 우완(.335), 홈(.319)과 원정(.331), 밤(.328)과 낮(.315)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상대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득점권 타율이다. 그의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412으로 득점권 상황에서 50타석 이상 들어선 메이저리그 전체 318명의 타자 가운데 유일하게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1위에 올라있다. 특히 60타석에 들어선 득점권 상황에서 가장 적은 단 3개의 삼진만을 당하며 빼어난 집중력도 선보이고 있다.

현재 터너의 fwar 2.4는 팀 내 야수들 가운데 푸이그(4.3), 고든(3.1), 곤잘레스(2.6) 다음으로 높은 숫자다. 라미레즈(2.3), 유리베(2.3)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 시즌 각각 2000만 달러대의 연봉을 수령하고 있는 켐프(0.4), 크로포드(0.6)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다. 올 시즌 연봉조정신청 자격 1년차를 맞이한 터너의 연봉은 불과 100만 달러. 그의 엄청난 가성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즌 내내 계속된 터너의 맹활약은 팀의 선두 질주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리고 터너는 1일 류현진과 함께 로스터에 등록된 유리베의 복귀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게 됐다. 다시금 팀의 전면이 아닌 후방 지원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터너의 진짜 존재감은 지금부터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시즌 막판, 더군다나 치열한 순위 싸움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팀의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터너는 다저스에 더 없이 든든한 보험과 같은 존재다. 특히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터너와 같은 유틸리티맨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부각되기 마련이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으로서 완성하고 있는 저스틴 터너의 금의환향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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