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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리뷰] ‘버티고’, 뛰어난 영상미와 섬세한 연기로 구현한 현대인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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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버티고' 스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장수정 기자] ‘버티고’가 현대인들의 답답하고 불안한 심리를 미학적으로 구현했다. 한 인물의 심리 하나만으로 2시간을 끌고 가는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지만, 섬세한 표현만으로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천우희의 연기가 눈 뗄 수 없게 만든다.

17일 개봉하는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 분)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영화는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직장인 서영의 일상을 찬찬히 따라간다. 계약직 디자이너, 매일 밤 전화해 푸념을 늘어놓는 엄마, 유일하게 기대던 연인의 차가운 외면 등 둘러싼 현실은 녹록하지 않은 서영의 인물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짊어진 짐이 무겁기는 하지만, 서영의 꿋꿋함 때문에 그의 초반 일상을 보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다. 직장 동료를 대하는 어려움과 계약직 직원으로서 봐야하는 눈치가 힘들어도 마음 맞는 동료와 가끔 수다를 떠는 서영의 소소한 행복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맞장구 칠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라 공감대가 높다.

그러나 서영의 엄마가 그를 압박하고, 연인이었던 진수(유태오 분)까지 그를 외면하면서 드러나는 불안함과 흔들림은 보는 이들마저 우울하게 만든다. 서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작은 감정의 변화까지 놓치지 않는 집요한 연출도 보는 이들이 서영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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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버티고' 스틸



때문에 서영이 갑자기 이명과 현기증을 느끼며 쉴 곳을 찾아 넓고 답답한 빌딩 안을 헤맬 때는 함께 숨이 막히기도 한다. 특히 서영의 시점숏으로 진행된 이 시퀀스는 화면의 흔들림마저 고스란히 느껴져 답답함을 배가시킨다.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영상화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쌓아둔 감정들 때문에 느끼는 압박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감정의 고저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선 서영의 사소한 감정 변화도 포착해 섬세하게 표현하는 천우희의 탁월한 연기력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특별한 서사 없이 서영의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내는 것만으로는 2시간을 지탱하는 것은 무리다. 중반을 넘어서면 답답하고, 지루함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래서 서영이 일하는 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관우(정재광 분)의 존재가 더욱 반갑다. 우연히 서영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관우는 그의 뒤를 눈으로 조용히 쫓아가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이 될 지 호기심을 불어넣으며 호기심을 붙잡아 둔다. 관우 역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극복하는지 지켜보는 흥미도 있다.

다만 잘 쌓아가던 감정이 후반부 판타지적 결말로 인해 가볍게 휘발된다는 점은 아쉽다. 서영의 감정 변화가 갑작스러워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결말의 의도까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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