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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정지우 감독 “최민식-박해일 배우와 다시 하고픈 이유는…”
‘유열의 음악앨범’, 새로운 멜로영화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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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홍종선 기자]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정지우 감독을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만났다. 연일 이어지는 홍보에 체력이 고갈돼 있을 때였고 인터뷰 일정의 끝을 향해 달리던 때였다. 시집보내는 딸처럼 영화에 온 힘을 쏟은 것으로도 모자라 요청이 오는 곳이라면 채널과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관객을 만나기 직전까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 10분의 쪽잠을 달게 자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번 영화의 첫 인터뷰마냥 성심을 다해 ‘유열의 음악앨범’에 관해 얘기하는 모습, 어딘가 숙연했다.

▲ 저녁 시사로 관객들과 봤는데 무대인사 온 배우들 표정이 밝더라고요. 미수 역의 김고은, 현우 역의 정해인도요.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보였어요. 배우들로부터 들은 얘기 있나요?

“되게 좋아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후시녹음 해야 하니까 편집 완료본 일 때 초대해 보여 줬어요. 조마조마한 얼굴로 같이 영화 봤는데. (그 다음) 저녁 먹는데 너무 좋았던 게, 둘이 서로가 보인다는 얘기를 한참 하더라고요. 원래 처음엔 자기만 보이기 마련인데, 영화 자체 줄거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게 사실일 텐데. 상대가 어떻게 좋았는지 좋게 얘기해 주니까 다행이다, 잘 견뎌내고 잘 버텨준 것 같아 다행이다 했네요.”

▲ 클래식의 힘, 정통멜로의 맛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나요, 무엇에 주안을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음…. 이게 상대하고의 관계, 사랑 영화인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연예-사랑 이전에 세상-상황과 관계 맺는 제 안의 어떤 요소가, 그 기질이 제일 중요할 수 있구나! 뭐가 잘 안 되거나 사이가 나빠지는 과정에 있어 상대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반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는 기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거친 말이지만 ‘기질’. 저 스스로 그런 면이 있어요, 인정하고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시기도 있어요. 그 비슷한 시기, 그 감정 상태에 왔을 때 내가 잘 못하는 과목의 시험을 볼 때처럼 그 시기가 되면 좀 더 조심하려는 저를 발견하는 거죠. 매번 되는 건 아닌데 (조심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면 (둘의 관계가) 조금 나은 거예요.”

“이 영화를 만드는 핵심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문제가 어떻게 변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가의 관점을 중시했어요. 상대의 힘든 상황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와 상황의 문제이지, 상대를 토로하고 비난한 얘기가 없어요. 이례적인 멜로영화의 작업인 셈이니까 저로서는 그 관점을 잊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사귀기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말자는 영화가 아니라 세월이 지나 요만큼, 요만큼 달라지고 있고 서로에 대한 좋은 영향이 서로 잘 작동해서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 상태로 끝나는 영화잖아요. (영화 시작할 때) 모든 계획을 완전히 가지고 있지는 못했죠. ‘기질이 사랑의 가장 큰 장해물일지 몰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야’. (조형래) 촬영감독에게 시나리오 주며 한 얘기예요. 헛발질 않고 큰 그림에서는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아요.”

▲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랑의 진행과 소멸에 대한 관점이네요. 이 새롭고 이례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용기를 내게 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기질) 그게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좌절’스럽잖아요. 왜, 알면 그만큼 해낼 수 있긴 한데 아는 거랑 되는 거는 다른 문제구나! 왜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릴까? 나한테 화가 나고 똑같은 실수를 한다는 것에 대한 좌절들, 똑같은 게 반복된다는 걸 인정하는 데만도 오래 걸리고요. 새로운 멜로드라마를 만들고 싶은데, 인공지능 AI와의 사랑도 새롭지만 저한텐 그게 굉장히 새로웠어요. 기질과 사랑을 이어 붙여 사랑영화를 만드는 게요.”

“그런 내적 싸움을 오래 했죠. 그리고 기질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게 결론일거야, 생각하게 됐고요. 그렇잖아도 멜로가 낯선 장르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사랑은 기질을 이길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끝내는 것에 대해선 또 다른 오랜 고민이 있었어요.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완전히 비극으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영화 마지막에 보면 선명하게 두 사람의 미래를 보여 주진 않지만, 자신의 삶과 사랑에 자신이 붙은 그런 모습이잖아요. 그런 두 사람, 진짜로 보기가 좋았어요.”

▲ ‘사랑의 생성과 소멸, 그 현재와 미래성’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온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물음표’가 흐려지는 느낌이에요. 해답의 열쇠가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쉽지 않은 도전, 멜로의 영역을 확장한 부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새록새록합니다.
이어서 질문 드리자면, 영화 속의 연도들 1994, 1997, 2000, 2005년. 기막힌 선택이에요. 덕분에 한국경제의 위기, 밀레니엄의 불안을 맨몸으로 관통해야 했던 젊은이들의 애환까지도 담겼습니다. 의도했던 부분이겠지요?


“제게 제일 중요했던 연도는 1997년과 98년이에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세대에 묶여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오래전 착안입니다. 군대 다녀와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는 때, 그땐 체감을 못 해요. (IMF) 그게 어떤 화학작용이 있는지. 시간 지나 보니 한국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이 있었구나! 학교 다니며 무슨 짓을 하건 ‘아유,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지’ 하면 직장, 집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전혀 안 되는 시기가 왔죠. 처음엔 (그 화학작용에 대해) 못 알아들었고 ‘아. 이제 정말 불가능하구나’ 모두가 느꼈잖아요. 일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하는 게 아니고, 일을 하다가 그 다음을 다 알고 맞이한 게 아니라 ‘어, 어, 어’ 하다가 맞닥뜨렸죠. 극복이 된 과거, 그러지 못했던 그때.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그 순간을 계속 맞닥뜨려요. 그런데 그것이 사회적 상황에 맞물리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죠.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는 시대적 시기가 중요했어요.”

“2000년대 초기 기름집이 편의점으로, 빵집이 부동산으로 바뀌는… 우리가 살던 골목들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잖아요. 사는 게 겉은 세려되어 보이는데 삶은 더 어려워진 시기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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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암울한 시기, 그 속의 청춘들이라 해피엔딩이 중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 역시 영화의 해피엔딩에서 희망을 보았고요.


“어떤 게 오랫동안 계획되었느냐 하면요. KBS가 30주년을 맞아 홈커밍데이를 했는데, ‘전설의 디제이들이 돌아온다’는 거였어요. 24시간 동안, 길게 디제이를 하셨던 분들이 자기 프로그램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유열 님이 다시 한 거예요. 다시 했을 때 영상과 사연을 들어보니, ‘라디오 사연 덕에 결혼했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아요, 여기에 또 뭐를 보낼 수 있다니!’. 팩트예요. 그 분들 역사의 띠엄, 띠엄, 띠엄에 한 번의 ‘띠엄’을 또 만들고 싶었어요. 그 띠엄 사이의 중간 부분도 충분한 분량으로 이야기하고요. 마찬가지로 지금 형태의 엔딩은 어쨌거나 고민이 있었지만 굳이 헤어지는 상태로, 그 감정으로 마무리하는 멜로드라마로 하지는 않으려 했던 거죠.”

▲ 관객 분들 중에는 왜 ‘유열의 음악앨범’인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아니고. 시나리오 작가 분이 당시 해당 라디오프로그램 작가라서만은 아닐 테고. 혹시 촬영시간, 영화 속 시간대의 햇빛을 고려했나요?

“동의합니다, 100% 동의합니다. 제게도 가까운 거는 ‘별밤’인데, 밤은 현실이라는 영역보다 더 다른 영역의 것이 무럭무럭 크는 시간대잖아요, 더 풍성하고 감성적이고. 이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 시간은 일하기 시작하고, 다른 조건의 일과 묶여 있는 시간이잖아요. 미수를 보면 (책 인쇄) 공장에서의 사무실 위치가 갖는 어려움이 있잖아요,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스폰지 귀마개(이어플러그)를 끼면 음악을 못 듣고 빼면 음악이 들리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유열의 음악앨범’이어야 하는 가치가 있죠.”

▲ ‘해피엔드’ ‘사랑니’ ‘은교’ 그리고 ‘유열의 음악앨범’. 파격부터 서정까지 다양한 색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정지우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으로 사는 이유, 무엇을 누구를 어떤 세상을 영화를 통해 보여 주고 싶은가요?

“일단 굉장히 이기적으로 버티는 이유는 재미있어서인데요.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고 재미 이상의 이유가 없는데. 가면 갈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앞의 영화가 나쁘다거나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조금 더 좋은 상태의 사람이 되고 좀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묶여서 가면 좋겠다’. 그런 과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그게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아요. 뭔가 해를 끼치면 돌아서 오잖아요. 살면서 해 끼치는 일이 무수히 있을 것인데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플러스가 돼야 잘살지…라는 그런 기분인 거죠. 좋은 일, 잘된 일만 할 수 없잖아요, 다만 해보다는 많이 하려 합니다.”

▲ 비슷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정지우 감독이니까 묻고 싶어요.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대명사 같은 수식어를 생각해 주세요.

“이런 거 좋을 것 같은데요. 속마음을 그릴 수 있는 감독.”

▲ 차기작, 금세 보여 주실 거죠?

“아직. 이제 고민을 막 시작했는데요. 다만 이거는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제작사 ‘무비락’의 김재중 대표가 큰 힘이 됐어요. 이 제작자와 처음 해 본 거니까 한 번 더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어요.”

▲ 김재중 대표, 영화사 이름을 감당하는 분인 것 같던데요. 감독님은 재미있어서 영화하시고, 제작사 대표는 영화 즐거워서(무비 락) 하시고, 좋은데요.

“서로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서로 고민해서 얼른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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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마음에 담아둔 배우는 있는 건가요?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의 방증 같아 두렵긴 한데, 진짠데. 박해일 배우, 최민식 선배랑 다시 하고픈 유혹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기분이 드는, 허허롭지만 쓸데없는 수다 떨며 영화의 핵심에 다다르고 싶어서. 나란히 섰을 때의 기분이 너무 좋기 때문이에요….”

▲ 저의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이것입니다. 묻지 않았으나 말하고 싶은 게 있나요?

“(이럴 수가!)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네요. 김고은 양의 옷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요. 제 친구인데 ‘쟈뎅 드 슈에뜨’라는 여성복 브랜드를 만든 김재현이라는 디자이너인데, 되게 큰 디자이너예요. 그런 대단한 친구가 있는 걸 이상하게 보지만(웃음), 어렸을 때 무리지어 만나던 사람 중 하나인데. 프린트까지 새로 해서 천부터 만든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 보고. 이, 이, 이런 제가 지금 정신이 없으니까 감사함을 얘기 못 했네요.”

김재현 디자이너는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하고 의류회사 한섬을 거쳐 지난 2001년 ‘제인 에 알리스’, 2005년 ‘자뎅 드 슈에뜨’를 런칭했다. 2012년 ‘자뎅 드 슈에뜨’가 코오롱에 인수된 후 당사에서 ‘럭키 슈에뜨’까지 선보였다. 2017년 기업을 떠나 패션계로 복귀, 올해 ‘주르 드 자주’ ‘에몽’을 런칭했다. 일하는 여성들이 매일 입을 수 있는 옷, 더 필요한 옷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남성복에 대한 계획도 구상 중이다.

진심은 통한다는 걸 믿고 싶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보여 주고자 했던 새로운 멜로, 기질과 사랑의 역학관계가 관객의 가슴에 가닿기를. 정지우 감독에게서 시작된 기질 고민이 우리의 사랑을 깊게 하여 보다 많은 현실의 해피엔딩을 만들길. 정지우 감독 곁에 나란히 선 배우 최민식과 박해일을 보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해피엔드’일 것이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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