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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이 장면] ‘복수돌’ 곽동연, 내면의 상처와 마주친 순간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장면이 모여 드라마를 만든다.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상황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대사도 모두 장면에 담긴다. 이에 작품 속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면을 포착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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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화면 캡처)



■ 장면 읽기

동준: 세호야.
세호: 호칭 명확히 하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박동준 선생님.
동준: 아니, 나는 지금 내 제자 오세호한테 말하는 거다. 그때 많이 보듬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세호: 이제 와서 겨우...
동준: (세호의 말을 끊고) 그때는 넌 마냥 순수하고 착한 아이처럼 보여서 그 안에 어떤 비명소리가 들어 있었는지 듣지 못했어. 그런데 지금, 네 속을 터뜨린 지금, 이제야 겨우 조금 들린다. 세호야. 나한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세호: 가세요.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지죠.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데.
동준: 옛날 일 후회하는 거냐.
세호: (망설이다가) 아니요. 절대요.
동준: 과거는 바꿀 수 있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어. 내가 너에게 좋은 선생이 못 돼서 미안하지만 난 앞으로도 노력할 거다. 지금의 넌 틀렸어.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나는 계속 싸울 거다.

동준, 이사장실 밖으로 나간다

세호: (흔들리는 눈빛을 보인다. 이내 나가는 동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린다)

■ 오늘의 장면

작품 제목: SBS 월화드라마 ‘복수가 돌아왔다’
방송 일자: 2019년 1월 15일 (21회)
상황 설명: 설송고의 특별반 폐지를 위한 시위를 비롯해 각종 비리를 폭로하려는 선생 박동준(천호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박동준의 제자이자 설송고 이사장인 오세호(곽동연)는 박동준을 해고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내면의 상처를 본 박동준은 다시 한 번 오세호를 제자로서 보듬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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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제공)



■ 그래, 이 장면

박동준과 그의 제자인 오세호, 강복수(유승호)는 ‘그 날’의 일로 얽혀있다. 9년 전 제자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자신을 몰아붙이고 차갑게 밀어내는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세호는 화목한 가정에서 지내는 복수에 열등감을 느꼈다. 짝사랑 손수정(조보아)마저 복수에게 마음을 줬다. 이에 세호는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복수를 범인으로 지목해 그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세호는 복수에게 열등감과 동시에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앞서 옥상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던 세호는 깨자마자 복수를 찾았고, 엄마는 그런 세호에게 “복수가 밀었냐”고 거듭 물으며 복수가 범인이라고 세뇌시켰다. 이에 세호는 마지못해 답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진실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동준이 나타나 “복수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세호의 열등감을 부추겼다.

상처받은 세호는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던 죄책감을 감춘 채 냉혈한으로 살아왔다. 그가 자신을 채우는 방식은 권력을 갖고 휘두르는 것. 각종 비리를 덮고 동준과 복수를 쫒아내려는 것도 자신이 그 위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로 인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악행이 계속될수록 세호의 마음은 공허해져만 갔다. 이런 세호의 연약함은 동준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동준으로 인해 드러났다. 동준은 세호에게 9년 전 못 다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들은 세호는 여전히 단호한 입장을 보였지만 흔들리는 눈동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동준은 이를 알아채고 “옛날 일 후회하는 거냐”고 물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시작하는 동준으로 인해 결국 세호의 눈물은 터졌다. 극 후반, 동준은 복수에게 피해가 갈까 세호를 찾아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학교를 떠나겠다. 복수는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세호는 “끝까지 강복수 강복수, 사람 서운하게”라며 은연중의 마음을 드러냈다. 또 나가려는 동준을 향해 분을 참지 못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혼내라”면서 “선생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강복수”라고 언급했다. 이는 분노라기보다 아이의 투정처럼 들린다. 세호는 겉으로 악독해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여전히 9년 전에 머무른 채 열등감과 상처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세호의 마음을 이해한 동준은 “너도 많이 다친 것 같다. 어떻게 널 혼낼 수만 있겠냐. 네 마음은 아직 낫지 않은 것 같다”면서 세호를 꼭 안아줬다. 진심어린 포옹에 세호는 다시 한 번 멍하니 섰다. 이번에는 그간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허무함과 설움이 북받친 눈빛이었다. 그렇게 세호는 조용히 눈물을 떨어뜨렸다.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고 네 괴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더 괴로울 뿐이지”라던 동준의 말이 깊숙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세호는 엄마를 경쟁상대로 삼을 만큼 영악한 어른이 됐다. 하지만 마음 속 어린 아이는 아직 자라지 못했다. 사실은 ‘나를 봐달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결핍덩어리이자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복수가 돌아왔다’는 복수의 성장을 그리는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세호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복수가 하려고 하는 ‘복수’의 진정한 목표 또한 세호가 지난날을 딛고 완전한 어른이 되는 일은 아닐까.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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