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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희의 B레이더] 92914, 일상의 일부가 되는 신기루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막상 다가서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가수였는데 그들에게 다가설수록 오히려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B레이더]는 놓치기 아까운 이들과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갑니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47. 금주의 가수는 9291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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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2914 제공)



■ 100m 앞 | 미니앨범으로 자신들을 알린 92914

92914는 권주평, 이준기로 이루어진 듀오다. 팀 이름은 마치 생년월일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첫 작업실의 주소라고. 두 멤버는 모두 작사 작곡 편곡이 가능하다. 대부분 작곡은 함께하고 작사는 이준기가 한다. 또 이준기가 주된 목소리를 맡는다.

이들은 지난해 1월 미니앨범 ‘선셋(Sunset)’을 발매하고 데뷔했다. 싱글을 먼저 내는 요즘 추세와 달리 처음부터 미니앨범을 내 본인들을 알린 방식이 인상 깊다. 이후 92914는 싱글 ‘문라이트(Moonlight)’와 ‘오키나와(Okinawa)’를 발표했다. 아직 세 장의 앨범만 나왔지만 92914는 이미 입소문을 타 알 사람은 다 아는 알앤비 듀오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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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2914 제공)



■ 70m 앞 | 대표곡 ‘Sunset’

‘선셋’은 첫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데뷔곡이다. 92914가 ‘선셋’을 통해 보여주는 해질녘은 기존 뜨거운 이미지와 달리 포근하다. 따뜻한 노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것 같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멜로디는 한 켠에 매달아 놓은 풍경소리마냥 맑고 영롱하다. 가사는 한 단락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소리가 주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92914라는 신인이 지닌 아름다운 무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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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오키나와' 커버(사진=92914 제공)



■ 40m 앞 |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들리는 노래

노래를 재생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스트레스도 없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없다. 오로지 순수하고 평화로운 자연만이 있다. 쨍하고 선명한 색상 대신 말갛고 환한 빛이 시야를 감싸는 풍경이다.

이 세상은 우리 일상에서 비어 있는 부분이다. 하루하루만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 한시라도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다. 92914는 이렇게 한 부분이 텅 비어 공허해진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 온 듯하다. 92914가 데뷔앨범 ‘선셋’ 소개글에 썼던 “일상을 채우는 음악을 좋아합니다”라는 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92914의 음악과 동행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떠한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래는 ‘어렴풋한데 몽환적인 것 같지는 않고, 이 멜로디는 하얀색의 바다를 연상케 하고...’와 같은 분석을 하지 않을 때 빛을 발한다. 이와 같은 감상들은 노래를 다 듣고 난 뒤 떠올려도 충분하며, 또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각자만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92914 역시 가사는 짧은 문장이나 한 문단을 반복하는 식으로 채우고 멜로디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편안한 것들로 구성한다. ‘오키나와’처럼 파도치는 소리가 멜로디가 되기도 한다. 허밍을 사용할 때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92914의 자연스러움은 긴장상태에 있던 마음을 단숨에 무장해제시킨다.

이렇게 들리는 음악에 그저 가만히 집중을 하다보면, 어느새 그 세상은 내 일부가 되어 있다. 어쩌면 92914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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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2914 제공)



■ 드디어 92914, “듣는 이들이 가장 나다운, 자유로운 시간과 함께하고 싶어요”

▲ 일상과 어울릴 때 튀지 않으면서도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음악이 되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걸 이뤄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방향이 있으신 건가요?


“소리와 멜로디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은 없습니다.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가 있다면 그에 맞는 소리를 그때그때 찾거나 작업하면서 좋다고 느끼는 톤을 기억해두는 편입니다”

▲ 짧은 가사가 반복되거나 내용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가사도 눈에 띕니다. 이런 가사를 듣는 이들이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바가 있는 건가요?

“작업할 때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들을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생각을 해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린 이미지가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합니다. 짧은 가사의 반복은 앨범 ‘선셋’에서 해 보고 싶었던 방식이라서 해보았습니다”

▲ 92914도 일상의 한 조각을 보고 노래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많은 생각이나 감수성, 표현 등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면요?

“생각이나 감수성이라고 하기에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주로 자연 속에 머물 때 또는 자연스러운 사람과 함께 할 때 그 순간의 감동이 이미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 92914의 노래를 들으면,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밝은 빛이 떠오릅니다. 팀의 방향으로 보면 될까요? 아니면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에 따라 어둡고 짙은 느낌의 곡도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요

“밝거나 어둡거나 하는 그런 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우리는 그저 하고 싶은 것들 중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 대중이 92914의 노래를 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해본 거 같아요. 다만 듣는 분들이 각자 느끼고 싶은 대로 또는 느껴지는 대로 느낀다면 음악이 더 풍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누군가가 가장 나다운 시간, 그 자유로운 시간에 우리 음악과 함께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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